조선패설, 밀애 1
월우 지음 / 아름다운날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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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수'라는 주제를 담은 소설의 내용은 대부분 빤하다. 더군다나 그게 로맨스 소설이라면 다음 내용을 읽기도 전에 미리 예상하기도 한다. 복수를 다루는 대부분의 소설이 복수의 대상과 사랑에 빠지는 등의 내용이 있기 마련인걸 보면 어느 때는 식상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월우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그 모든 복수에 대한 것과 여주인공에 대한 식상함을 버렸다. 연약하기만한 여주인공이 아닌 복수의 길로 향하는 끝이 자신의 죽임이라는 걸 알면서도 복수의 일념에서 벗어나지 않는 주인공이었다. 복수의 대상에서 친구와의 우정같은거 진작에 버릴것 같은데도 끝까지 우정을 중요시했던 새로운 타입의 여자 주인공을 만날수 있어서 즐거웠다. 

 

  월우 작가는 복수를 꿈꾸는 여자주인공이, 패설(민간소설)은 민간에 떠도는 전설, 기담, 연담 등을 말하는데, 패설을 자신의 복수의 도구로 삼았다.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패설을 읽어줄 전기수가 필요한 법, 잘생기고 목소리도 그윽한 남자 주인공을 내세워 소설을 읽는이로 하여금 여러 즐거움을 주었다. 아이들에게 구연동화를 읽어주듯, 전기수는 야밤에 부인들과 처자들을 모아놓고 사랑에 빠지는 연인들의 이야기를 직접 연기하듯 읽어주는 역할을 했다.  

 

  잘생긴 남자가 목소리도 그윽하게 책을 읽어주면 요즘 여자들이 남자 연예인에게 열광하듯 아녀자들로부터 전기수는 커다란 인기를 얻었다. 야밤을 틈타 패설을 읽어주므로 아녀자들이 쓰고 다녔던 쓰개치마를 제비뽑듯이 하나 골라 쓰고 그 여성을 집까지 바래다주기까지 했으니. 전기수에게 애정을 바치는 아녀자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 지언을 혜방은 자신의 복수에 가담시켰다. 자신의 친구인 병판의 딸을 유혹해 달라고 말을 건넨것이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알지 못했던 진실을 소설을 읽고 발견하기도 한다. 오래전에 공지영 소설이 그러했듯, 여러 사람에게 읽히는 패설에 오래전 14년 전에 일어났던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로 써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지게 한 것이다. 패설로 자신의 복수를 꿈꾸면서도 어렸을때부터 함께 해왔던 친구에게 상처는 주기 싫어 친구를 멀리 떠나보내고 싶어하는 혜방. 아울러 자신의 친구를 유혹해 달라고 했으면서도 지언에 대한 연모의 감정을 숨길수 없었던 혜방의 이야기였다.

 

 

  복수를 다루는 연애소설이되 남여 주인공들의 연애만 다루는게 아니었다. 복수의 대상인 패설에 대한 것과 패설을 읽어주는 전기수의 애환을 엿볼 수 있었다. 책을 빌려주고 판매하는 세책점의 역할, 패설을 읽는 여자들을 보며 예전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야기를 참 좋아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녀자들이 패설을 좋아했던 이유도 억눌린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억눌린 삶, 자신의 뜻대로 하지 못했던 시대에 이야기에서만큼은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었던 이들을 부러워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복수를 위해서는 연모했던 남자도 친구와 함께 멀리 보낼 굳은 마음을 갖고 있었던 혜방과 혜방이기전에 만났던 혜방에게는 아버지이자 오라버니이자 친구였던 쾌. 전기수인 지언에 대한 연모의 감정과 쾌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갖고 있는 혜방. 이들을 보며 나는 쾌라는 인물에 호기심이 생겼다. 오래도록 나이를 먹지 않는 쾌라는 인물에 매력을 느꼈다. 혜방을 연모함에도 연모의 감정을 숨길수 밖에 없었던. 혜방이 연모하는 이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고, 복수를 향해 나아가는 이연임에도 연모할 수 없는게 쾌의 연모였다.

 

 

 

  책의 말미에 홍생원이 왜 쾌에게서 이연을 빼앗았느냐며, 쾌와 이연을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이연을 쾌와 이어지게 해달라고 떼쓰는 어린 혜방의 마음에 나도 무척 공감을 했단 말이지. 이연이자 혜방만을 바라보았던 쾌는 어떻게 하느냐고 작가에게 묻고 싶단 말이지. 홍생원이 밉다고 떼쓰는 어린 혜방의 말에 공범이 된듯 슬며시 입가를 늘였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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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세부터 헬로라이프 스토리콜렉터 29
무라카미 류 지음, 윤성원 옮김 / 북로드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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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모든 것이 안정되는 시기가 55세쯤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우고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때. 55세쯤 되면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것도 같았다. 그 시기가 되면 경제적으로도 안정이 될테고, 여행을 좀 한다던지 자신의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기는 시기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이런 내 생각은 그저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상상을 한 것 뿐일까. 만약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지 않다면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도 힘들것이고, 그 전보다 더 힘든 삶을 살게 될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물론 이 책으로 읽으면서부터다.

 

  그토록 읽고 싶었던 무라카미 류의 작품을 읽게 되었다. 무라카미 류는 인생은 50부터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 50대의 주인공들의 삶들을 이야기했다. 55세쯤 되는 주인공들. 그저 별탈없이 살고 있다가 남편의 정년과 함께 더이상 함께할 수 없었던 여성이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고 결혼상담소를 통해 새로운 배우자를 만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던가, 모아 둔 돈도 없이 퇴직을 하고 적은 연금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뭐랄까.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온 사람들로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주인공들의 삶은 정말 우리 주변에서 볼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보통의 사람. 쥐꼬리만한 연금과 고정적인 수입원을 얻기 위한 노력. 몸이 힘들어도 일을 주겠다고 불러주기만 하면 좋은 사람들. 미래의 우리들의 모습을 미리 만났다고 해야 할까. 내가 상상했던 50대의 삶은 그저 나의 상상일 뿐이었구나. 실제로는 아직 자식들의 삶을 도와줘야 하고,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데는 돈이 든다는 것. 모아두었던 저금은 점점 사라지고 얼마남지 않는 은행잔고에 대한 두려움. 얼마후면 나도 그렇게 살아가지 않을까. 문득 두려운 생각도 들었다.

 

  무라카미 류의 『55세부터 헬로라이프』라는 작품은 다섯 편의 중편이 실려있다. 주인공들은 모두 55세 정도되는 사람들로 직장에서 은퇴했거나 은퇴후 어떻게든 경제생활을 하려는 사람들, 혹은 퇴직후 캠핑카를 하나 사 여행하고 싶은 사람. 애완견을 키우며 삶에 위안을 얻었던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 친구들, 즉 여자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새로운 배우자를 만나 살고 싶느냐라는 질문을 하는데,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롭게 맞춰가며 살아야 하느니 차라리 현재 남편과 사는게 더 낫겠다, 라는 말을 한다. 몇십년을 살아왔던 배우자의 장점이나 단점, 습관들을 꿰고 있기에 그러려니 하는 것들이 있게 마련. 만약 배우자의 어떤 면들이 너무 싫어 이혼을 하게 되고, 경제적인 이유때문에라도 새로운 배우자를 만나고 싶다고 할때, 자신의 이상에 맞는 사람을 찾기란 정말 어려운 일일 것이라는 생각을 「결혼상담소」를 읽으며 다시 했다. 아무리 밉고 보기 싫어도 조강지처가 낫다는 말이 있다고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떠나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보고 싶은 것. 이것 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

 

  커피를 좋아해 커피콩을 직접 갈아 커피를 내려마시곤 했던 남자. 그는 조기퇴직을 했다. 그는 조기 퇴직 수당으로 캠핑카를 사 여행을 다니고 싶다는 멋진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생각일뿐. 같이 다니고 싶은 아내는 캠핑카를 사는 걸 꺼려했고 일년내내 여행만 다닐 수는 없다고 했다. 재취업을 하고자 비교적 친하게 지냈던 거래처 등에게 취직 부탁을 하지만 좀처럼 취직하기는 힘들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게 「캠핑카」라는 이야기였다. 

 

  이 작품들 외에도 「펫로스」라는 작품도 있다. 보비라는 강아지를 키우는 요시코. 보비가 병든 것 같아 보비를 위하는 모습을 보고 남편이 한 말때문에 상처받았지만, 나중에서야 남편의 본심은 그게 아니었다는 것. 그저 아내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온 말이었다는 것. 보비의 죽음을 견디며 느낀 것은 개를 통해 자신도 위안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다른 사람에게 용기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 아무리 고통스러운 상황에 몰린다 해도 쉽게 죽음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것. 살고자 하는 자세만으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에게 위로와 힘을 준 이라는 것.

 

  아무리 미물인 존재라도 우리는 그것에서 힘을 얻고 용기도 얻는다. 자신의 은행잔고가 떨어져 힘든 상황에서도 노숙자인 중학교때 친구의 부탁을 들어줄 수 밖에 었었던 「하늘을 나는 꿈을 다시 한 번」이라는 작품을 읽을때도 이런 점을 느꼈다. 돈이 없어 힘들어도 우리는 우리의 삶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 후회하지 않는 삶.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자신의 삶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이게 어디 50세 이상만이 느끼는 것이랴. 30대든 40대든 느낄 수 있는 것. 인생의 새로운 도전은 늘 필요한 것이라는 거.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 그건 내가 무엇을 원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나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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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빌스 스타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5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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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는 내가 처음 읽었던 『스노우 맨』부터 시작해 '추리소설이란 이런 것!' 이라는 확신을 갖게 해준 작가다. 그의 작품이 출간될 때마다 손꼽아 기다리고, 해리 홀레 시리즈를 읽다보면 금새 시간이 가버려 아쉬운 적도 많았다. 한동안 추리소설 읽는 것이 뜸했었는데, 다시 요 네스뵈의 『데블스 스타』를 읽고 났더니 역시, 요 네스뵈!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시도 다른 생각을 품지 못하게 하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이번에 비채에서 나온 『데블스 스타』는 『네메시스』와 『레드 브레스트』와 더불어 요 네스뵈의 '오슬로 3부작'이라고 일컫는 책으로 오슬로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담은 소설이다. 『데블스 스타』에서는 『네메시스』에서 결말을 왜 그렇게 끝냈을까, 의문에 대한 해답을 알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네메시스』에서 해리 홀레는 동료 엘렌을 죽인 프린스의 정체를 개인적으로 조사하고 있었고, 무기 밀매상으로부터 프린스가 오슬로 경찰청에 같이 근무하는 톰 볼레르가 아닌가에 대한 의심을 품고 있었다. 톰 볼레르에 대해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는 결말에 대해 무척 궁금했었다.

 

 

 

  이번 작품은 역시 엘렌을 죽인 프린스가 톰 볼레르 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는 해리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경찰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하겠다는 해리는 역시나 술을 멀리하지 못하고 늘 술에 취해있으면서도 톰 볼레르가 엘렌을 죽인 증거를 찾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휴가철. 모두가 휴가를 떠나고 오슬로가 거의 텅 빈 상태에 있는 때, 사건이 터졌다. 눈두덩에 오각형의 붉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여자 시체가 발견되었다. 죽은지 얼마되지 않았고, 왼손의 두번째 손가락이 잘려 있었다. 휴가철엔 형사들도 예외가 아닌지라 경정 비아르네 묄레르는 누구에게 사건을 맡길까 고심하다가 톰 볼레르에게 전화를 하고, 휴가를 가지 않는 형사 중에서 어쩔수 없이 해리 홀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해리가 말했다. 모든 사건은 동기가 있어야 한다고. 동기를 파악해야 범인을 유추할 수 있다고.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운 살인자가 형사들보다 한 수 위에 있으므로, 범인을 찾아내려면 동기가 알아야 한다고.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또다른 사건이 발생했다. 빌리 발리라는 뮤지컬 무대 감독의 아내 리스베트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비아르네 묄레르에게 우편물이 하나 배달되었는데 빌리의 아내 리스베트의 세번째 손가락이었다.

 

 

 

 

 

 

  오각형의 별모양이 펜타그램, 즉 악마의 별을 일컫는 모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사건이 모두 5층에서 일어났고, 오후 5시, 5일 간격으로 일어났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세번째 사건이 일어났고, 이제 두 명의 피해자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이를 종합해 해리는 이 살인사건의 암호를 풀고자 한다. 암호를 풀어야 한다. 다섯개의 손가락, 오각형, 오층, 5일간격으로 일어나는 살인사건. 오슬로 시가지가 그려져있는 지도를 놓고 오각형을 그려보았다. 묘하게도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와 맞아 떨어졌다.

 

 

 

  추리소설은 복선이 중요하다. 작가가 깔아놓은 여러개의 장치속에서 사건에 관계된 이들을 의심해보지만 그게 맞아떨어질때도 있고, 전혀 생각지 못한 사람이 살인범으로 나타나기도 하다. 물처럼 흐르듯 사건이 해결되는 듯 하다가도 해리는 항상 기발한 생각을 내놓는다.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일반 형사들과는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살인 사건, 즉 연쇄살인사건을 여러 건 해결했던 해리의 경험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술을 한번 마시면 며칠이고 출근도 하지 않는 알콜중독자인 해리에게 사건을 맡길수 밖에 없는 이유인 것도 해리의 경험을 높이 산 이유다. 연쇄살인범을 잡을 수 있는 형사는 해리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가 좋다. 해리 홀레 시리즈를 여전히 기다리고 여전히 읽게 되는 것이다. 해리 홀레만의 특별한 사건 해결능력이 빛을 발하게 하는 요 네스뵈의 글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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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아이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9
나지브 마흐푸즈 지음, 배혜경 옮김 / 민음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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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랍어권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나지브 마흐푸즈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역시 문학을 통해서이다. 살아가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살아가는게 중요하지만, 직접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문학을 통해 대리 경험할수 있다는 것도 큰 축복인것 같다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비록 가상의 이야기인 소설이지만, 소설에서도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신간 서적을 검색하고 그중에 눈에 띄는 새책을 골라 작가를 보았더니 아랍어권 작가의 이름이었다. 나지브 마흐푸즈라는 생소한 이름앞에서 작가의 이름을 검색했다. 아랍어권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라는 수식어가 붙어 반가웠다. 이왕이면 검증된 작가를 알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현실을 통찰력 있게 꿰뚫는 동시에 지난 일을 어렴풋이 떠올리게하는 뉘앙스가 풍부한 작품으로 인류 전체가 공감할 만한 아랍 고유의 서사 예술을 구현했다.'라는 극찬을 받고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제목 마저도 친근하다. 『우리 동네 아이들』이라는 제목. 이 작품에서 우리는 우리가 살았던 동네를 떠올릴만 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을 것이다. 우리 동네에서도 이런 이야기 하나쯤 있었어, 하는 것 같은. 실제로도 최고가 되기 위해, 여러 사람에게 이롭게 하기 위해 이런 사람들은 시대를 거쳐 나타났으므로.

 

  사막 한복판에 자발라위라는 사람이 있다. 아름다운 대저택에서 많은 가족을 이끌고 살아가는 자발라위. 그도 나이가 들어 재산을 관리할 후계자를 고른다. 큰아들인 이드리스를 제치고 막내아들 아드함을 고른 것. 그것이 재앙을 이루는 첫번째 이유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제치고 막내 아들을 재산 관리자로 명하자 반발하는 이드리스는 결국 아버지 자발라위에 의해 집에서 쫓겨난다. 모든 싸움의 시작은 재산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같다. 아버지에게는 특히 사랑하는 자식을 있을 것이고 자신의 재산 관리를 가장 사랑하는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과거 우리나라의 조선시대처럼 적장자에게 가면 별무리없이 받아들이겠지만 장자를 제치고 다른 아들에게 갔을 때는 항상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보통의 짧은 이야기 같으면 집을 나가서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을 하던 이드리스가 새롭게 거듭나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하고 재산 관리를 하던 아드함과 화해하고 잘먹고 잘살았다는 이야기가 끝일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계속 된다. 이드리스의 간계에 의해 아드함마저 자발라위에 의해 쫓겨나고 사막에서 힘든 생활을 하는 아드함. 그는 대저택 안에서의 안락한 삶을 그리워하지만 아버지의 부름은 없었다.  

 

  아내 우마이마와의 사이에 까드리와 후맘이라는 아이들이 태어났고, 아이들은 양치기를 한다. 자발라위가 새롭게 재산 관리인으로 불러들인 후맘을 형 까드리는 실수로 힌드 바위에서 죽이고, 자발라위의 대저택에서의 생활은 물건너갔다. 아드함의 아들 까드리와 이드리스의 딸 힌드가 아이들을 낳았고, 이웃들과도 친해져 우리 동네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두 권의 책 중에서 작가가 다루는 인물은 총 다섯 명의 인물들이 나온다. 첫번째가 아드함, 두번째가 자발, 세번째가 리파아, 네번째가 까심, 다섯번째가 아라파라는 인물들이다. 이 인물들은 모두 자발라위의 후손이며 자발라위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대저택에 살아 숨쉬는 인물로 나온다. 자발라위는 어쩌면 우리 동네의 신 같은 존재다. 영원히 살아 숨쉬며 후손들에게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의 재산은 여전히 후손들이 차지하려고 하고 재산 관리인은 동네 사람들을 관리해주는 수장들을 두었고 재산을 가로채려는 이도 생겼다. 

 

 

 

 

  그처럼 인간이 욕망하는 모든 것중의 으뜸은 재산인것도 같다. 오늘날도 재산 때문에 형제 사이가 틀어지고 소송까지 하는 경우도 많은 것처럼 오래전의 이집트에서도 이런 일들이 허다했던 것 같다. 소설속에서 말한 인물들 중에서도 자신이 재산 관리인이 되고 나면 자기가 누리는 것에 대한 당연함과 더 큰 재산을 가지고 싶은 욕망으로 꿈틀댔던 것이다.

 

 

 

 

 

사람은 힘이 있다고 행복한 게 아니야. 그것만으로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어.  (중략)  무모하게 행복을 꿈꾸는 동네 사람들로 인해 그는 얼마나 가슴이 저렸는지 모른다. 그들이 꿈꾼 행복은 얼마 못 가 쓰레기 더미 속의 지저분한 쓰레기가 되었다. (2권, 59~60페이지)

 

 

 

 

 

  시대를 거슬러 우리 동네를 이끄는 자들을 보며 이슬람의 역사와 종교를 나타냈다. 자발라위를 볼까. 무소불위의 존재 즉 신이다. 아드함과 우마이마는 아담과 이브, 이드리스는 사탄을 나타냈다. 형제인 까드리와 후맘은 카인과 아벨, 자발은 모세, 리파아는 예수, 까심은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를 나타냈다. 여러 종교를 아울러 인물들을 대입했다. 그 인물들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춰볼 수 있었던 것이다.

 

  선과 악의 대립. 어느 시대에서나 선과 악의 대립이 있었고 우리는 선이 승리하기를 바란다. 악을 물리치고 선이 승리했을때의 성취감. 그에 따르는 권력에의 욕망. 이 모든 것을 나타낸 소설이 아닌가 한다. 소설 속에 숨은 의미를 백 퍼센트 이해했다고 볼 수 없겠지만, 내가 느낀 점은 그랬다. 인간은 변하기 마련이고, 인간들속에 있었던 종교가 조금씩 변해왔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에 대한 통찰력이 빛난 소설이었다.

 

 

 

밤이 지나면 낮이 되듯 불의는 반드시 사라져. 우리는 우리 동네에서 압제가 멸하고 기적과도 같은 날이 훤히 밝아 오는 것을 분명 보게 될 거야.  (2권 358페이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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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4-17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약간 제 취향인 것 같아서(제 취향이 어떤 것인지 저도 잘은 모르지만 어쨌든..) 안그래도 눈여겨 보고 있던 책인데, 님 리뷰를 보니 더 읽어싶어진다는...^^
일단 구입부터 해야겠어요. 읽는 것은 그 다음. ㅋㅋㅋㅋ

Breeze 2015-04-26 22:01   좋아요 0 | URL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꼭 그렇죠.
읽겠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갖고 싶다는 생각을 먼저 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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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어드리크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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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안에 맨처음 들어갔을때 사람이 있느냐에 따라 첫 인사말이 달라진다. 불꺼진 집에 들어가기 싫듯, 집에 들어갔을때 있어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을때 맨처음 묻는 말이 '누구 어디 있니?' 일 것이다. 그 중에서 특히 자주하는 말이 '엄마 어디 있니?' 라는 말이 아닐까. 저녁을 해야 할 시간, 엄마가 준비해주는 저녁식사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엄마의 요리하는 모습. 그 모습이 없을때의 허전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특히 별다른 연락도 없었고, 어딘가 특별히 가야 할 이유도 없었을때. 더군다나 저녁식사를 할 시간이 훌쩍 지났다면? 이럴때는 어떻게 해야할까? 

 

  엄마가 갈만한 곳을 찾아가 봐야 할 것이다. 엄마가 차를 가지고 갔다면? 이웃에 살고 있는 이모네 집으로 가 차를 빌려타고 엄마가 있을만한 곳을 찾아봐야 한다. 그러다가 평소와 다르게 얼굴을 파묻고 운전을 하는 엄마가 자신들이 타고 있는 차를 지나쳤다면 그대로 엄마 차의 뒷꽁무니를 따라가야 할 것이다. 엄마에게서는 휘발유 냄새가 났고, 얼굴은 누군가에게 얻어맞아 부어있었고, 옷에도 피가 묻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충격에 빠진 얼굴 표정으로 엄마에게 무슨 일인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엄마는 누군가에게 폭행을 당했던 것이다. 행복했던 가정은 엄마가 겪은 일로 인해 침울해져 버렸다. 누구한테 당했는지 물어도 말을 잃은 엄마. 다른쪽으로 뒤돌아 누웠고, 요리하는 엄마의 모습은 옛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엄마에게 폭행한 자를 찾기 위해서는 엄마의 도움이 필요한데도 엄마는 입을 꾹 다물고만 있었다. 엄마가 누군가에게 강간을 당했고, 그가 기소되기를 바라지만 어디에서 당했는지 알지 못한 엄마때문에 아빠와 조는 애가 타기만 하다. 판사인 아버지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아버지가 판사라면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을까 싶지만, 이곳은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원주민과 백인이 거주하고 있는 곳의 경계였다.  

 

  어떠한 일이 있어났을때 우리가 하는 생각 첫번째가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라고 할 것이다.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하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결국엔 일어난 일이었고 돌이킬 수가 없다. 조의 엄마를 폭행한 사람을 알기만 하다면 그를 죽이고 말거라고, 그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죽였거나 폭행을 가했다면 그 일을 저지른 자를 찾아 그에 합당한 벌을 받는 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지만 법이 그에게 죗값을 묻기에 자신들의 마음을 달래는 것인데, 만약 법이 그것을 해주지 못한다면 자신들이라도 어떻게 해보고 싶은게 사람의 심정일 것이다.

 

 

 

 

 

 

 

정의는 있을 거야. 정의가 도와줄 거야. 지금 당신은 정의는 아무 도움 안 된다고, 당신에게 도움이 될 건 아무것도 없다고, 이 방에 존재하는 어마어마한 사랑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정의가 도와줄 거야.  (235페이지) 

 

 

 

  법에 대한 정의. 정의는 있을 거라고 믿지만, 그 정의가 실현되지 않았을 때의 상대적 박탈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작가는 북미 원주민 보호구역에서의 법적 관할권 문제에 대해 쓰고 싶었고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는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독자로 하여금 물었다. 열세 살의 조가 생각하는 정의는 아버지가 말한 정의와 달랐다. 판사이면서 그 어떤 것도 할수 없는 아버지 보다는 누군가라도, 아니면 직접 자신이 정의를 실현시키고자 했다. 

 

  엄마에 대한 사건으로 어린시절은 사라져 버렸고, 엄마와의 평온했던 감정도 조금쯤은 물러나 있었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나름대로 엄마의 사건을 유추하고 사건이 일어났던 라운드 하우스 주변을 뒤지는 게 하루의 일과였다. 엄마 아빠에게 숨기고 싶었던 일들까지도 인디언 특유의 정령을 보는 것 때문에 숨길 수 없었다. 그럼으로써 조는 성장한다. 조가 성장하는데 많은 것을 이루는 부분이 친구들과의 관계도 있었다. 조에게 친구들이 없었다면 아마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한 캐피가 '스타트렉'을 좋아해 '스타트렉'에서의 내용과 빗대어 사건을 해결하고 생각하고자 하는 십대 특유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었다.

 

  사실 루이스 어드리크의 작품 『그림자 밟기』를 읽었기에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피하고 싶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작품을 만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주민 보호구역에서의 법적 적용에 대한 문제가 이 작품의 배경인 1988년도와 지금과는 많이 다르겠지만, 그때의 역사, 그 시절의 정의에 대한 것을 알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아마 작가는 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작품의 전편 격인 『비둘기 재앙』의 이야기도 그래서 궁금하다. 여전히 세계 어느 곳에서는 인종에 대한 편견이 심하고 그들에게 말살 정책을 펴기도 했었다. 우리는 그것들을 바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내용의 책을 읽으며 우리의 시선이 한 곳에 편향되지 않기를 바라는 작가의 뜻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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