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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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보통 책을 읽으면 아내에게 그 내용을 말하는 편이 아니다.

시집, 철학서, 여행 에세이, 역사서를 주로 읽는 나와

미스테리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아내의 취향은 꽤 다른 편인데,

그래도 공통분모가 있어 내용을 말해주고 의견을 묻는 경우는

내가 소설을 읽을 때다.


저자가 7년 동안 쓴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오직 두 사람'과 '아이를 찾습니다'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는데,

전자는 나의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후자는 아내와 내가 딸을 

기르는 부모라는 '입장의 동일함' 때문이었다.


'오직 두 사람'에서 과연 그 두 사람은 누구일까.

다른 가족을 배제하고 대학시험이 끝난 큰딸만 데리고 한 달 간

유럽여행을 떠난 아버지, 그때 아들은 군대에 있고

딸은 이제 고3이 되며 엄마는 철저히 소외되었다.


죽어가는 아버지와 결국 그 곁을 지키게 된 큰딸, 뉴욕으로 

이주한 엄마한 작은 딸, 그 중에 오직 두 사람은 누구일까?


'아이를 찾습니다'는 마트에서 아이를 유괴당한 부부에 대한 이야기다.

십년이 넘게 아이를 찾아다니다가 어찌어찌 아이는 부부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더 큰 비극이 시작된다.

길러 준 부모가 친부모가 아니었고, 내 엄마가 실은 나를 유괴했다는 사실, 친부모 중 한 명이 조현병에 걸려 정신이 오락가락한다는 사실, 새로운 집, 새로운 학교, 새로운 사람들. 


아이의 부모의 입장과 일련의 사정을 혼자 감당해야할 아이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나라면? 우리라면? 


작가의 말에서 책에 실린 단편의 순서와 실제 발표된 순서가 다른 것을 알았다.

전후 3편의 중심에 '아이를 찾습니다'가 척추처럼 받치고 있는데,

그전에 묵혀 둔 원고를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건 이후에 집필을 시작했다고 했다.

저자처럼, 이 땅에 사는 많은 독자들이 그 사건 이후에 글을 읽을 때

'세월, 침몰, 가라앉다, 안산, 노란 리본, 팽목, 가만히' 이런 단어들을 볼 때 그 사건을 필연적으로 떠올릴 수 밖에 없다.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그 원인에 대해 소가 되새김질을 하듯 얘기하고 기억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아무리 지우고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 상처를 꺼내 윤이 나고 닦고 자주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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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하다 - 이기적이어서 행복한 프랑스 소확행 인문학 관찰 에세이
조승연 지음 / 와이즈베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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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를 보지 않았다면 이 책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기적이어서 행복한 프랑스 소확행 인문학 관찰 에세이'


여기서 핵심은 '행복' '소확행' '에세이'가 아니다.

그렇고 그런 내용의 자기계발서로, 기-승-전-마음 힐링으로 

귀결되는 책이 아니라는 말이다.


키워드는 '이기적' '관찰'이다.

'관찰'은 이 책의 형식인데, 소설의 시점으로 말하면

1인칭 관찰자 시점에 해당한다. 프랑스 파리에서 미술학교를 다니며 

생활하는 가운데 관계를 맺은 사람들에 대해 저자의 체험담이 담겨 있다.


'이기적'은 이 책의 바탕에 깔린 프랑스식 '이기주의'를 뜻한다.

사회계약설과 '자유의지, 자유론'으로 대표되는 루소의 사상에 바탕을 둔 

이기주의는 '편리함 보다는, 오감충족의 편안함', 적정 거리를 중시하는 '차가운 우정' 합법적 동거제도 '팍세', 자녀를 가정의 중심에 두지 않고 부부의 육체적 사랑에 방점을 두는 가족관, 학업 우수가 성공으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성공관, 과시 소비 없는 사회, 성적 억압의 거부 등 사회 전반의 제도와 국민들의 의식에 심연을 이룬다. 


우리 사회가 겪는 출산율 저하와 인구감소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현 세대가 감당할 만한 새로운 가족관을 기성 세대가 이해하고 존중해야한다는 의견에 깊이 공감했고,


나의 자존감을 지키면서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고슴도치'처럼 타인과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내게 짜릿한 고민거리를 안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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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 내 안의 작은 핀란드인 소심한 개인주의자를 위한 소셜 가이드 2
카롤리나 코로넨 지음, 페트리 칼리올라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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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간격에 대한 관념은 문화마다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시내 도로에서 신호등이 빨강이 되면

다닥다닥 붙어서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린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빈 자리가 나면 엉덩이를 들이밀고

어느 정도의 신체접촉도 감수한다



핀란드인 '마티'는 사람들과 함께 길게 줄을 서 있을 때

부러 앞 사람과 널찍이 간격을 둔다.

그 사이를 비집고 다른 이가 새치기를 할 때,

버스에서 네 좌석이 있을 때 징검다리로 두 사람이 앉아있으면

마티는 모든 좌석이 찬 것처럼 느낀다.



마티처럼 너무 가까운 거리와 접촉이 불편한 사람들은

짧은 컷 만화를 보며 크게 공감할 것이다.


지하철에서 휴대전화로 뉴스나 음악을 틀어놓고 드는 사람,

주변 아랑곳 없이 큰 소리로 통화하는 사람,

밀치고 나서도 아무 말 없이 지나가는 사람,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눈을 감고 가다가 재빨리 내리는 사람,



내 안에도 마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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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조금 이상한 문학과지성 시인선 430
강성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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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 쯤이었던 것 같다.

고령에서 합천을 지나 진주로 가는 길

눈이 내려 낮은 고개 하나 넘는 것도 버거웠다

남쪽에서는 약간의 눈도 '기록적'일 수 있다

체인 없이 맨발로 종종 걷던 앞차가 눈앞에서 빙글,

우리와 눈이 마주쳤고 아빠는 교통경찰처럼

팔을 휘저으며 뒷차를 보내고 모르는 사람과 얘기했다

다음날이 월요일이라 학교를 못 가겠구나

그럼 개근상도 못 받겠구나

엄마는 눈이 많이 오면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된단다, 했다

겨울은 짧아도 방학은 길었으면 하던 시절

우리는 누군가 급히 마련해 준 임시숙소에서

하얀 매트를 깔고 하얀 밤을 보냈다

진주를 잊고 살았었다

이십 년이 훨씬 지나 여름휴가로 순천에서 통영으로 향하던 길

고속도로 표지판에 진주와 통영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진주로 핸들을 꺾을까 잠깐 고민했다

진주의 얼굴을 기억나지 않았다

진주에는 진주여고와 국립 경상대학교가 있으며

박경리 작가는 진주여고를,

허수경 시인과 소식이 끊긴 그는 경상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고

그는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에서 잠시 일했고

어쩌면 지금 부산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썼다 지운 꿈인데

그 자리에 다시 글자를 쓰려고 하니 얼룩이 보였다

몇 줄을 띄우고 쓰려다가 그만두었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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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플리마켓 여행 천천히 산책하는 국내.해외 벼룩시장 15
정선영 지음 / 책과나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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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 시장만큼 오감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는 장소는 드물다.


2015년 신혼여행으로 방문한 이탈리아, 


두오모로 유명한 피렌체는 '중앙시장'이 있다.

"메르카토 센트랄레(mercato centrale)"라는 단어 하나로 물어 물어 도착한 곳,


1층에는 정육점이 중심이었고, 2층에는 먹거리 장터가 꽤 넓게 펼쳐져 있었다.

거기서 지인들에게 선물할 조그마한 기념품과 푸딩을 구매하고

일대를 둘러싼 가죽시장을 본격적으로 구경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현지 브랜드 핸드백을 하나 샀고

나는 가죽 북커버를 흥정 끝에 15,000원에 얻었다.

상인들은 이탈리아 사람도 있었지만, 대개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넘어온 것 같은 사람들로 보였다.


이것저것 손에 들고 맨 것이 한 짐이라

정작 두오모는 오르지 못한 웃지 못할 이야기

두오모 근처 아이스크림가게에서 줄 서 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우산을 급히 펼쳤는데, 

바로 뒤에 줄 서 있던 미국인 커플이 우산이 없어 같이 썼던 기억

두오모를 고개가 아플 정도로 빤히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카페에 앉아 커피와 간식을 홀짝이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아, 근데 이 책을 보니 왜 이렇게 안가본 데가 많은지.

태국, 도쿄, 타이완, 우리나라


들어보기만 했지 가본 곳은 거의 없고, 여행의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곳 천지.

3월이 되면 문래동이나 홍대 앞 예술시장이라도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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