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조금 이상한 문학과지성 시인선 430
강성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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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 쯤이었던 것 같다.

고령에서 합천을 지나 진주로 가는 길

눈이 내려 낮은 고개 하나 넘는 것도 버거웠다

남쪽에서는 약간의 눈도 '기록적'일 수 있다

체인 없이 맨발로 종종 걷던 앞차가 눈앞에서 빙글,

우리와 눈이 마주쳤고 아빠는 교통경찰처럼

팔을 휘저으며 뒷차를 보내고 모르는 사람과 얘기했다

다음날이 월요일이라 학교를 못 가겠구나

그럼 개근상도 못 받겠구나

엄마는 눈이 많이 오면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된단다, 했다

겨울은 짧아도 방학은 길었으면 하던 시절

우리는 누군가 급히 마련해 준 임시숙소에서

하얀 매트를 깔고 하얀 밤을 보냈다

진주를 잊고 살았었다

이십 년이 훨씬 지나 여름휴가로 순천에서 통영으로 향하던 길

고속도로 표지판에 진주와 통영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진주로 핸들을 꺾을까 잠깐 고민했다

진주의 얼굴을 기억나지 않았다

진주에는 진주여고와 국립 경상대학교가 있으며

박경리 작가는 진주여고를,

허수경 시인과 소식이 끊긴 그는 경상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고

그는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에서 잠시 일했고

어쩌면 지금 부산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썼다 지운 꿈인데

그 자리에 다시 글자를 쓰려고 하니 얼룩이 보였다

몇 줄을 띄우고 쓰려다가 그만두었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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