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탐방 20160109 토요일
#국립현대미술관 #윌리엄켄트리지




1. 아침 겸 점심을 느긋하게 먹고 안국역으로 출발했다. 목적지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었다. 여유가 되면 가까이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는 ‘원숭이의 해’ 관련 특별 유물전도 보려고 했으나, 아마도 여유가 없겠지.



서울관 건물은 2014년에 한국건축문화대상 ‘대상’과 같은 해 한국 건축가협회 선정 ‘올해의 건축상’을 수상한 건물이라는데, 조선왕조의 상징인 경복궁과 현대식 미술관 건물의 공존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고, 차라리 경복궁 건물과 주변 경관과 조화롭게 전통 양식을 반영한 건물이었다면 더 좋았겠다.





2.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사람들로 꽤 붐볐고, 통합 입장권(4,000원)을 내면 전시장 모두를 둘러볼 수 있었다. 우선 지하 1층으로 내려가 윌리엄 켄트리지(1955년생)의 작품을 감상했다. 작가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출신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 사회와 풍경을 그린 드로잉 애니메이션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작가라고 한다.



작품전의 주제는 ‘주변적 고찰(Peripher Thinking)'이었다. ’주변적 고찰‘은 중심에서 개진되는 논리적 사고의 전개가 아니라, 한 주제에서 자유롭게 연상되거나 확장되어 나가는 사고의 흐름을 뜻한다. 예전에 신영복의 ’담론‘에서 처음 접했던 ’변방성‘이라는 개념이 생각났다. 변방성은 단순한 변방과는 달리 중심과 대립되는 관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고 유연한 특질을 내포한다. 덩치가 큰 중심은 변화에 둔감하지만 변방은 변화에 민감하고 창조적인 활동으로 나갈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는 취지의 글이었는데, 열강에 둘러싸여 분단된 국가에서 변방이라고 자학할 것이 아니라 ’변방성‘을 발전 에너지로 변환하는 길이 무엇일까. 특히 눈길을 끈 작품은 ‘시간의 거부를 위한 드로잉(부정확한 시계들을 찬양하며)’라는 작품이었는데 한 인간이 시간의 흐름이라는 운명적 순간에 어떻게 저항하는지에 대해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3. 다음 6전시관으로 이동. 2015 한국-호주 국제교류전의 일환으로 개최된 ‘뉴 로맨스’였다. 윌리엄 깁슨이 1984년 발간한 소설 뉴 로맨서(Neuromancer)가 한국에서 ‘뉴 로맨스’로 오역된 상황에 착안하여 예술과 과학의 접목을 통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한 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작품이 있었는데 ‘페트리샤 피치니니’라는 호주작가의 ‘보텀 피더’다. 상어의 머리, 인간의 몸통, 개의 다리를 가지고 쓰레기를 먹고 사는 상상 속 생명체다. 엎드린 자세에서 뒤편의 엉덩이 부분을 보면 부처님을 닮은 얼굴이 웃고 있다. 유전자 조작과 인공지능이 가져올 윤리적 문제를 환기시킨다.





4. 지하 1층의 중간쯤에는 율리어스 포프의 ‘비트, 폴, 펄스’라는 작품이 눈을 사로잡는다. 사람들이 작품 앞에 서서 물방울들이 떨어지면 만들어내는 실시간 검색어를 쳐다보고 사진을 찍었다. 4개의 대형 컨테이너로 구성된 설치 작품의 각 컨테이너 속에는 수백 개의 물방울이 짧은 순간 단어를 쏟아내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비트, 폴, 펄스’는 데이터의 최소 단위 정보 조각(bit)의 떨어짐(fall), 찰나에만 존재하는 데이터 정보의 일시성과 정보의 빠른 전파성이 활발한 맥(pulse)을 형성하는 과정을 뜻한다. 작동원리는 실시간으로 인터넷과 연결되어 작가가 고안한 알고리즘에 따라 인터넷 뉴스피드에 게재된 단어의 노출빈도수를 측정하고 중요도에 따라 ‘물 글씨’단어를 선택한다.






5. 이때 쯤 고민이 시작되었다. 입장권 값어치는 한 것 같은데 집으로 돌아갈까, 마저 남은 한 전시관을 돌아봐야 하나. 안규철의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전시장으로 결국 발걸음을 옮겼다. 전시장 입구를 들어서면 마종기 시인의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문학과 지성, 1980)의 시가 벽에 프린팅 되어 있다. 이 전시제목도 마종기의 시에서 따왔다. 지금 여기에 없는 것들의 빈자리를 드러내고, 우리가 잃어버렸거나 사라져버린 것들의 이름을 불러내려는 것이 작가의 의도다. 관객과의 상호작용과 협업의 과정에서 탄생하는 ‘기억의 벽’에 나도 ‘수평’이라는 한 단어를 쪽지에 적어 상자에 넣었다. 수직이 수평을 갉아먹어 위태위태한 지금 여기에서 바다처럼 ‘수평’을 회복하는 삶이 그립다.





작가노트 중

“고립과 격리는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에서 공간의 중심적 특성이 된다. 입구의 금붕어들은 고립된 자신만의 공간에서 멤돌고, 필경사의 방은 참가자를 위한 격리실, 예배실 또는 일종의 감옥이 되며, 64개의 방은 자발적인 고립과 실종을 위한 미로가 된다. 침묵의 방에 이르러 이러한 격리는 물리적 경계를 넘어 끝없는 우주적 공허, 아무것도 없음, ‘지금 여기’가 없는 상태의 경험으로 이어진다. 일상공간으로부터의 단절, 타인들로부터의 격리, 홀로 남은 자의 고독은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로 가는 여정, 피할 수 없는 항해의 과정이다. 스님들의 묵언수행, 기도하는 사람들의 합장과 눈감기, 우리가 학교에서 보낸 그 긴 침묵의 시간들은 모두 같은 길을 향하고 있다.”






6. 오설록에서 차 한 잔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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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국가보안법




선전·선동·예바·음모는 탈출·잠입을 시도한다

바다건너 흙냄새가 궁금해서

밀항(密航)은 언제나 설렌다

나는 매일 불고지죄(不告知罪)를 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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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전화‬

엄마는 주말 드라마를 보면서 울곤 했다
왜 울어요?
울 곳이 없어서

나는 드라마 속 엄마를 보며 운다
파르르 떠는 통화 연결음이 듣고 싶어
가끔 
저장된 엄마 번호로 전화를 건다
엄마 목소리를 닮은 여자의 여보세요
나는 죄송하다는 말만

그에게 전화가 온다
연애할 땐 무료통화 시간이 모자랐는데
요새는 많이 남아 서운하다고
나는 다시 미안하다는 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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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개론







깨알 같은 글씨가 적힌 쪽지를 시험지 밑에 깔고

정신없이 답안지를 채워나가는데 손이 불쑥 들어왔다

그 손은 조용히 쪽지를 뒤집었다






 

나는 다시 답안지를 채워나갔다

어느새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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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울

#저울


저울의 무게는 누가 잴까
양팔의 벌려 바람의 무게를 재어 볼까
양다리와 양가슴은 평형이 아니다
다리가 무거우면 가슴은 가볍다
머리에서 발까지 긴 여정을 떠나는 사람
가벼워야 한다 가벼움마져 버려야 한다
계절이 바뀌어도 바람은 가늠할 수 없지만
바람은 분명 다르다
나는 바람을 안고 양다리를 차례로 내딛으며 걷는다
나는 가장이다
참을 수 없는 것은 존재인가 가벼움인가
가장은 참을 수 있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저울이 평형을 이루는 꿈을 꾸었다
주사위는 몸을 뉘이지 않고 떠 있다
육면의 숫자가 쏟아져 몸을 누른다
하나는 가볍게 둘은 나란히 셋은 뾰족하게
넷은 갑갑하게 다섯은 찬란하게 여섯은 무겁게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무서운 다리를 건너는 꿈
나는 새롭다 나는 가볍다고 되뇌이며
아이처럼 가벼워지고 싶어 나이를 먹는다
그림자에도 무게는 있다
밝을수록 그림자는 무겁고 어두워질수록 가볍다
티브이에는 영근 얼굴들이 스웨그를 꿈꾸고
고개 숙여 인사할 줄 모르는 뻣뻣한 모자는 가볍다
스웨그는 무거운 것을 가볍게 만드는 것
옥상에서 떨어지는 것보다 집값이 떨어지는 것이 더 두렵다
가장 콤플렉스, 장남장녀 콤플렉스 없는 작품의 이름은
"공동가장"
거기에는 두 개의 심장과 두개의 척추를 매달은
평형을 이룬 저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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