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의 시간 교유서가 다시, 소설
김이정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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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이섭(金利燮)을 알아갈수록 이중섭(李仲燮)이 생각났다. 1915년 안동에서 태어난 이섭과 1916년 평남 평원군에서 태어난 중섭. 이섭은 서울에서 고보를, 훗카이도에서 대학을 다니고 교사로서 아이들을 잠시 가르쳤다. 중섭은 정주의 오산고보를, 도쿄에서 미술학교를 다닌 뒤 원산에서 미술교사로 일하기도 했다. 이섭이 운영하는 새우 양식장의 풍경을 묘사한 구절을 읽으며 중섭이 서귀포에서 즐겨 그린 물고기, 게와 뛰노는 두 남자 아이를 떠올렸다. 둘은 한국전쟁을 전후로 남북을 오가며 거주지를 옮겼다. 가족과 생이별하고 그들을 그리워하며 불꽃()같은 삶을 살다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유령의 시간은 이섭이 쓰기로 마음먹은 자서전의 제목이다. 딸 지형의 목소리를 빌리면 인생의 절반을 일제 치하에서”, “나머지 30년을 해방된 조국에서”(264) 산 이섭은 이 땅 어디서도 존재하지 못했던 유령.”(283)이었다. 좌익 활동으로 수감생활을 했고 한국전쟁의 발발로 첫째아내 이진(李晉)과 자식들과도 소식이 끊겨 생사를 모르고 평생을 살았다. 이북의 실상에 실망하고 남으로 왔지만 남한의 자본주의에 적응하지 못하고 장인의 인맥에 의존해 제주도 목장, 충청도 새우 양식장, 서울의 가구 영업사원으로, 전전반측하며 남쪽에서이룬 가족도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


  그의 삶에 드리운 그리움, 무기력의 원인은 전쟁과 권위주의 시대라는 역사적 비극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사회적, 정치적 환경의 특이점은 한국전쟁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뉴욕타임즈 기고문이 생각난다. “미국에서 전쟁을 말하면 한국은 몸서리친다.” 같은 천둥소리라도 파주 주민과 뉴욕 시민이 느끼는 공포는 다르다.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이 있듯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이 있다. 대한민국의 공기 속에는 근원적인 불안이라는 이물질이 섞여 있어 우리는 매일 그걸 마신다. 7·4남북공공성명, ‘한국적 민주주의’(236), 유신, 인혁당 사건, ‘사회안전법으로 점철된 시대에 와우아파트는 붕괴되었고 광주(성남)대단지 사람들은 생존권 보장을 외쳤다. 이섭은 신원조회에 걸려 취직할 수 없었고 중섭도 야심차게 준비한 개인전이 당국에 의해 철거되어 좌절을 느끼고 정신이상으로 죽어갔다. “세상 누구보다 뜨겁고 격렬했지만 오랫동안 차갑고 어두운 곳에 갇혀버린 새우.”(283)가 된 이섭은 삶이 헛되다며 불교의 공()이나 허무주의적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꽃()이 혀로 어둠을 핥듯 한 줄기 빛이 남아 있다. 이섭은 유령의 시간을 탈고하지 못했지만 딸 지형이 희망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수치심을 극복하게 위해 노 젓는 법을 배우고 싶어 했던 지형이 이섭의 고스트라이터가 될 것이라 믿는다. 소설은 지형이 작가가 되어 방문한 평양의 고려호텔에서 끝을 맺는다. 이진(李晉)과 이복오빠 지형이 생존해 숙소 근처 아파트에 산다는 사실을 알고 전달여부가 불확실한 편지를 쓴다. 소설의 다 읽으니 이섭과 중섭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고개를 들면서 황소가 무언가 외치고 있었다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이중섭의 시 부분, 1951년 제주 서귀포의 방 벽에 붙어 있던 것을 조카 이영진 씨가 암송하여 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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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파라다이스 1
한야 야나기하라 지음, 권진아 옮김 / 시공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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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신들의 천국에서 우리들의 천국으로

 


1. 나는 법원에서 일하는 공무원이다. 현재는 개인회생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부채를 감당하지 못한 채무자가 재산과 소득을 감안한 변제계획안을 내면 법원이 심사해서 인가결정을 한다. 채무자가 계획대로 3년을 성실하게 수행하면 면책을 받는다. 투 파라다이스 1(원제: To Paradise, 이하『파라다이스』, 이후 페이지만 표시)을 읽고 수없이 전화를 걸어오는 채무자들의 목소리와 보이지 않는 얼굴을 생각했다. 주식이나 코인 투자 실패, 카드 빚 등 회생신청 사유도 제각각인데, 돈을 갚아나가는 과정에서 실직하거나 건강이 나빠져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폐지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들도 지난한 삶을 견디며 면책 이후의 낙원을 꿈꾸었을 것이다.

 

2. 제목에서 시작하자. 낙원, 천국으로 번역하는 paradise는 정원(garden)을 뜻하는 원시 이란어 paridayjah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기독교의 에덴동산이 연상된다. ‘낙원을 향하여’ 걸음을 내딛는 사람에게 지금 발 디딘 여기는 무엇일까. 지옥인가, 지옥은 아니라도 꿈꾸던 이상향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파라다이스』에는 두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제1부(워싱턴 스퀘어)는 1893-94년의 자유주 뉴욕을 배경으로, 제2부(리포-와오-나헬레)는 1993년-94년 뉴욕과 하와이가 무대다. 개별적인 두 작품이지만 이란성 쌍둥이처럼 같은 이름이 여럿 등장하고(데이비드, 찰스, 에드워드 등) 주제 의식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제1부「워싱턴 스퀘어」를 보자. 19세기 말 북 아메리카는 자유주, 식민주, 미국, 서부 등으로 나뉘었다. 데이비드 빙엄은 동성애가 허용되는 자유주 뉴욕에 사는 1866년생 남성이다. 빙엄 가(家)의 장남으로 조부 너대니얼 빙엄과 함께 워싱턴 스퀘어라는 저택에 사는데 다섯 살 때 부모가 죽어 조부 손에서 줄곧 자랐다. 고아원의 미술담당 교사로 일하다가 알게 된 음악교사 에드워드 비숍에게 반한 호모 섹슈얼이다. 데이비드가 성인이 된 후 사랑과 결혼의 문제로 관계 맺은 결정적 인물은 에드워드 외에 찰스 그리피스가 있다. 찰스 쪽이 중매결혼, 이성, 아폴론, “빙엄 브러더스의 문장(紋章), 세르바투르 프로미숨(Servatur Promissum), 지킨 약속이라는 문구”(28쪽)라면 에드워드는 자유연애, 정열, 디오니소스, 불확실한 미래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에드워드는 데이비드의 유일한 뮤즈다. 스물셋 에드워드는 식민지 출신으로 “다른 곳, 다른 존재에서 왔고”(103쪽) 신분 계급 차이도 분명하다. 에드워드는 어머니가 위중하다는 핑계로 휴가를 내고 잠적해 버리고 데이비드는 노심초사하며 그를 기다린다.

 

- 1894년 3월 17일 보고서 중

쿡 남매는 함께 두둑한 돈을 모았습니다. 그 돈에다가 추정컨대 에드워드가 외대고모에게 훔친 돈과 가엾은 D씨 부모로부터 받은 돈을 합쳐서, 그들은 서부에서 실크 직물 사업을 시작할 작정입니다. (중략) 필요한 것은 농장을 시작해서 처음 몇 년을 버틸 수 있게 해 줄 마지막 한탕이었죠. 바로 그때인 올해 1월, 에드워드 비숍이 빙엄 씨의 손자를 만난 겁니다. (231쪽)

 

조부에게 도착한 에드워드에 실체에 관한 보고서. 에드워드는 데이비드의 재산을 노리고 접근한 듯하다. 동성애가 처벌받는 서부에서 사업을 벌일 작정이다. 다시 돌아온 에드워드의 변명은 “알고 보니 거짓은 아니었다, 적어도 완전히는.” (91쪽) 데이비드는 자유주를 떠나 에드워드와 함께 서부의 낙원을 향하여 떠난다.

 

에드워드는 데이비드의 연인이자 사기꾼으로 의심되는 인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탈출할 수 없는 억압과 권태로 가득 찬 현실에서 데이비드의 내면에 숨겨진 욕망이자 그림자라고 생각한다. 가부장(patriarchy)의 지붕 아래서 조부의 바람대로 찰스와 결혼해 가정을 꾸린다면 외적으로는 안정적인 삶을 꾸릴 것이다. 그러나 그 선택은 현실에 대한 영원한 굴복이다. 벽에 있는 얼룩을 종일 망연히 바라보며 죽을 때까지 가부장적 남성성의 기준에 이르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억압된 분노와 무기력은 두려움을 완벽하게 감추는 은신처이기 때문이다. 퀴어 소설의 외피를 취하지만 어쩌면 이 소설은 가부장적 남성성의 억압이라는 보편적 주제에 중심을 둔 것 같다. 데이비드의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 두려워하는 대상을 사랑할 수 없는 것처럼 그는 찰스 그리피스를 선택할 수 없다. 손톱을 바짝 깎고 신발 끈을 질끈 묶고 문을 열어야 한다. 도드라진 현실의 요철에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을 지라도 달려 나가야 한다. 나는 데이비드의 선택을 지지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것”(333쪽)이므로, 설사 실패하더라도 꿈에라도 그에게 사랑이 놀러오길 바라며.

 


3. 제2부 「리포-와오-나헬레」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1993년 경 뉴욕이 배경이다. 흥미롭게 제1부에 나왔던 데이비드 빙엄, 찰스 그리피스, 에드워드 비숍 등이 다시 등장한다. 물론 이름만 같고 다른 캐릭터다. 찰스는 오십대 중반 파트너 변호사로, 데이비드는 스물다섯의 법률 보조원으로 둘은 연인관계다. 데이비드는 하와이 오아후 섬의 호놀룰루 출신으로 ‘카위카’로 불린다. 하와이에는 할머니와 아버지 ‘위카’가 여전히 산다. 제2부는 다시 #1과 #2로 나뉘는데, #1에서는 찰스와 데이비드의 관계를 중심으로 #2에서는 아버지 ‘위카’가 아들 ‘카위카’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이다. 1부의 가부장이 너데니얼 빙엄이라면 2부에서는 그 역할을 데이비드의 할머니가 맡았다. 다만 낙원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이는 데이비드(‘카위카’)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 ‘위카’다. 발작증세, 시력 감퇴 등을 앓는 ‘위카’는 요양원에서 유폐생활을 하고 있다. 특히 #2에서 하와이 왕족인 ‘위카 빙엄’이 동성 연인 에드워드와 “자신의 쓸모라는 판타지”(488쪽)인 ‘리포-와오-나헬레’(Lipo wao nahele)라는 사실상 버려진 땅에서 낙원을 건설하려는 노력이 묘사된다. 또한 ‘위카’와 데이비드의 생모인 앨리스와의 만남과 이별과정, 그로 인한 ‘위카’의 발작, 데이비드가 유년기를 지나 결국 아버지 ‘위카’를 떠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제2부가 제1부와 다른 점은 죽음의 그림자가 훨씬 짙다는 것이다. 찰스는 죽음이 예정된 병이 있고(아마도 에이즈), 그의 옛 애인 피터는 다발성 골수증으로 죽음의 문턱에 있다. 찰스의 친구들도 상당수 병을 앓거나 죽음에 이르렀다. 요양소에 있는 ‘위카’ 또한 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이고 착란 증세도 보인다. 또한 하와이의 독립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국가와 개인의 관계 설정을 암시하는 정치적 사안들이 소설 속에 짙게 녹아 있다.

 

데이비드(‘카위카’)는 장애가 있는 아버지로부터 도망치고 혼돈스러운 현실의 벽에 저항하거나 부딪혀보지 않고 침묵을 택한 것에 대해 수치와 부끄러움을 느낀다. 하지만 낙원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온 이성이 가슴에서 발까지의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분노를 대면하는 대신 거기서 숨으려고 했다. 하지만 숨는다고 일어나는 일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숨어서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결국 발견되는 것뿐이다.” (334쪽) 나는 ‘카위카’의 심정을 이해한다.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마음을 부끄러워하면, 결국 부끄러움이 없는 것과 같다고 하지 않는가. 부끄러움을 아는 자는 부끄러운 자가 아니다.

 

 

4. 당신들의 천국에서 우리들의 천국으로

 

- 하지만 그가 떠나온 곳이 천국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건 다른 사람의 천국이지, 그의 천국은 아니었다. 그의 천국은 다른 곳에 있지만, 그의 눈앞에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곳은 그가 찾아야 한다. 사실 그게 바로 그가 평생 배웠던 바, 희망하라고 배운 바 아닌가? 이제 찾을 때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무거운 가방을 손에 든 채 이곳에 잠시 서 있다가 심호흡을 한 뒤 첫발을 내디딜 것이다. 그의 첫 발걸음을. 새로운 인생을 향하여- 낙원을 향하여. (267쪽, 밑줄은 인용자)

- 아직 너무 늦지 않았어, 늦지 않았어, 결국 늦지 않았어. 그리고 나는 걷기 시작할 거야-어머니 집이 아니라, 리포-와오-나헬레가 아니라, 다른 곳으로, 네가 가 있길 바라는 그곳을 향해서. 난 멈추지 않을 테고, 쉴 필요도 없을 거야. 거기, 네가 있는 곳에 다다를 때까지, 낙원을 향하여. (530쪽)

 

제1부, 제2부의 끝부분이다. 데이비드와 ‘위카’의 낙원을 향한 다짐으로 마무리되는 장면이다. 이청준의 소설『당신들의 천국』이 생각났다. 소록도 원생들을 동원해 바다 간척사업을 해서 나병 환자들의 낙토를 만들어주겠다는 조백헌 원장의 약속에는 원생들의 자유의지와 선택이 빠져있다. “선택과 변화가 전제되지 않은 필생의 천국이란 오히려 견딜 수 없는 지옥일 뿐”이다. 그 목적이 아무리 선하다고 해도 그건 ‘당신들의 천국’이지 ‘우리들의 천국’은 아니다.

 

그렇다면 데이비드와 ‘위카’는 낙원에 도착할 수 있을까. 에드워드의 사기적인 유혹과 정신병을 앓는 ‘위카’의 신체적 능력을 볼 때 성공을 장담하기는 힘들다. 무모하고 무용한 결정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지지한다. 스스로 선택하고 자존감을 가지고 사는 삶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낙원도 마찬가지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의 바람과 욕구대로 행동하고 만족을 얻는 삶이다. 결론적으로 옳지 않았다고 해도, 애초에 그 방식 자체가 최선이어서 선택한 것이 아니다. 거꾸로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결과에 관계없이 바람직한 것이다. 자기결정권을 제대로 누리는 삶만이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무덤을 열고 우리들의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사족) 제2부의 시간적 배경인 1994년에는 장동건 주연의『마지막 승부』,『우리들의 천국』과 이병헌 주연의 『내일은 사랑』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마지막 승부』의 OST였던 장현철의「걸어서 하늘까지」를 흥얼거리며 이 글을 썼다.

 

“어둔 미로 속을 헤매던 과거에는/ 내가 살아가는 그 이유 몰랐지만/ 하루를 살 수 있었던 건/ 네가 있다는 그것/ 너에게 모두 주고 싶어/ 너를 위하여/ 마지막 그 하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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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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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삼각二人三脚으로 벽 통과하기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하도시와 벽, 이후 페이지만 표시)을 다 읽고 나니 백석의 시가 생각났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중략)//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백석,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현실 세계에서 열일곱 살 소년인 는 열여섯 살 소녀인 가 말하는 것을 받아 적는다. “네가 도시의 큰 틀을 말해주면 내가 그에 대해 실제적인 질문을 하고 네가 대답해서 보충하는 식”(21)이다. 둘의 이야기로 만든 비밀 도시에서 와 재회하지만 를 기억하지 못한다. 도시의 진짜라면 실제 세계의 는 본체의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도서관에서 꿈 읽는 이로서 의 도움을 받아 서고에 보관된 오래된 꿈을 읽어나간다. “나 말고 도서관을 찾아오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도서관은 언제나 나와 너만의 것이다.”(74)

 

  나는 이 소설의 같은 그녀를 생각한다.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있었지만 학교가 엇갈리면서 그녀와 멀어졌다. 전해오는 소식으로 그녀가 국립 대학교 국문학과에 진학했다는 소식을 듣긴 했었다.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가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를 몇 가지 말했다. 구글링에 능숙한 한 친구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한 대형서점에서 일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때 무슨 용기가 났는지 그 서점에 전화를 걸어 그녀의 연락처를 알려줄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서점 직원은 그녀의 동의 없이 함부로 개인정보를 알려줄 수가 없으므로 그녀의 의사를 먼저 물어보겠다고 말했다. 결국 그녀와 연락이 닿지 못했다. 거기까지가 그녀와의 인연인가보다 생각했다.도시와 벽에도 ’, ‘카페 여주인의 로맨스가 등장한다. 사랑과 그리움의 정서가 공기처럼 퍼져 있고 중력같이 작용한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통속적인 연애 소설이라고 할 수 없다.

 

  도시 주변에는 백석의 시에 등장할 것 같은 짐승들이 산다. “날카로운 외뿔이 달린 과묵한 황금색 짐승들은 아침이면 정연히 줄지어 도시 안으로 들어왔다가 밤이 되면 벽 바깥의 서식지에서 몸을 맞대고 잠든다.” (130) 도시 안팎으로 출입이 가능한 유일한 문을 지키는 문지기가 뿔피리를 불면 짐승들은 도시 안으로 들어왔다가 저녁에는 바깥으로 돌아간다. 먹이를 찾아 헤매다가 추위와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은 짐승의 사체 위에 한없이 쌓이는 눈, 유채기름을 뿌리고 사체를 태우는 연기가 잔상으로 남았다. “겨울밤이 밝으면 그들 중 몇 마리가 서식지 바닥에 하얀 눈옷을 덮어쓰고 드러누워 있었다. 누군가의 죄를 떠안고 대신 죽어간 이들처럼.” (426)

 

  소설의 머릿돌인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 시작하자.

  높이가 8미터에 이르는 은 빈틈없이 견고하고 완벽하다. 그러나 실존이 본질에 우선한다는 하이데거의 말처럼 벽의 특성과는 별개로 벽의 실존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다. 현실과 비현실, 실제와 꿈, 본체와 그림자, 삶과 죽음, 의식과 마음 같은 의 껍질을 하나씩 벗겨 나가는 과정이 이 소설을 읽는 기쁨 중 하나다.

 

  나는 이 작품이 구조적, 내용적으로 이인삼각을 닮았다고 생각한다. 이인삼각(二人三脚) 사전적 의미는 두 사람이 옆으로 나란히 서서 맞닿은 쪽의 발목을 묶고 세 발처럼 하여 함께 뛰는 경기. (육달 월)(물리칠 각)이 합쳐진 글자인데, ()(가다)와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을 본뜬 병부 절()이 합쳐진 글자로 의지하다는 뜻도 파생된다.

 

  구조적으로 소설은 전체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현실 세계와 가상의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을 한 챕터씩 번갈아 가며 동시 진행한다. 2부는 실제 세계의 산골 마을 도서관을 중심으로, 3부에서는 실제와 가상이 오고간다. ‘, 도시와 도시 바깥이, 현실과 비현실이, 현실과 꿈이, 삶과 죽음이, 의식과 마음이 각각 한 발 씩 내밀어 발목을 묶고 어깨를 겯은 채 달린다. 묶인 발목 같은 은 통제, 억압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인삼각의 중심축으로서 스토리에 숨을 불어넣고 이야기를 추동하는 힘이다.

 

  벽은 무엇일까. 절대적 타자로서 아버지같은 존재일까.

  2부의 현실 세계에서 산골 마을 도서관장으로 일하는 는 한 소년을 알게 된다. 전임 관장이자 그림자 없는 인간(유령)고다쓰의 무덤가에서 내뱉는 의 독백을 소년이 엿듣는다. 소년은 비범한 능력을 발휘해 가 묘사한 도시를 지도에 재현해낸다. 늘 옐로 서브마린이 그려진 파카를 입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소년은 에게 도시의 벽은 역병을 막기 위해지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역병은 아니고 비유로서의 역병”, “영혼이 앓는 역병”, “끝나지 않는 역병”(527, 528)을 뜻한다는 것이다. 한편 도시로 증발해 버린 소년을 찾는 그의 형이 말하듯 벽은 한 인간을 이루고 있는 의식”(651), 빙산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곳에 가라앉아 감춰져있는 독자적인 의지와 생명력을 지닌 마음의 상태로 보는 해석도 있다. 이렇게 다층적인 의미를 가진 벽이 존재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불확실한 벽이다. 경우에 따라, 상대에 따라 견고함을 달리하고 형상을 바꿔나간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684)

 

  나는 비유로서의 역병이라는 문구를 실제의 역병이라는 의미에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바람으로 받아들였다. 하루키는 동명(同名)의 중편(1985)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1995)세계의 끝부분을 확장해도시와 벽을 완성했다. 변화무쌍한 코로나19라는 벽에 둘러싸인 2021, 저자는 집필 중에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사회적 환경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느낀 내면의 불안과 고뇌가 이 소설에 스며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자를 떼어내고 도시에 사는 주민들은 코로나19 이전의 삶을 한동안 잊었던 우리처럼 집합적 기억을 상실한 것 같다. “지리에 대한 수평적 호기심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에 대한 수직적 호기심도 없는 사람들은 스스로 격리되었다. 페스트, 메르스, 코로나와의 전쟁은 인간의 육체 뿐 아니라 마음도 찢어발긴다. 일본의 전쟁 역사인 노몬한 사건(1939년 일본 만주국과 몽골의 영토전쟁)’에 대해 다룬태엽감은 새 연대기이래 하루키는 집합적 기억인 역사에 대한 언급을 꾸준히 해왔다. 2차 세계대전의 패전과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대한 일본정부와 일본 국민의 자기책임회피, 역사왜곡을 일삼는 일본 우익, 중국의 홍콩 민주화 요구 탄압, 유럽의 배타적인 난민정책 등을 강도 높게 비판해왔다. 하루키는 대중문학 작가일 뿐이고 노벨상을 의식하고 작품을 쓴다는 비난은 지나치다.

 

  그렇다면 변화무쌍한 벽 앞에 선 우리는 어떡해야 하나. 1) 젤리처럼 물렁물렁한 벽이라고 믿고 벽을 정면 돌파하기 2) 토끼처럼 굴을 파서 벽 밑으로 지나가기 3) 새처럼 날아올라 벽을 뛰어넘기. 어느 것도 만만치 않다. 의식의 벽에 부딪쳤을 때 이인삼각의 마음으로 돌아가 보자. 핸디캡이 있을 때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벽이 우리를 통과하게 하면 된다. 벽을 옮기자. 궁극적으로 우리가 벽이 되자. 술래를 피해 옷장에 숨은 아이처럼 벽속에서 사람들을 기다렸다가 짜잔, 하고 벽에 문을 내자.

 

  ‘과 더불어 내게 흥미로운 소재는 그림자도서관이었다.

그림자는 본체의 부속물인데, 인간이 가진 부정적인 감정, 어두운 생각과 마음을 상징하한다고 생각한다. “머리 위에 접시를 얹고 있을 땐 하늘을 쳐다보지 않는 편이 좋다는 문지기의 말을 곱씹어보았다. 그림자를 데리고 도시에 살 수 없으므로 그림자를 떼어내야 한다는 취지인데, 접시는 그림자고 하늘은 도시를 뜻하는 것일까. 아델베르트 폰 사미소의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가 떠오른다. 그림자를 팔고 금화가 쏟아지는 자루를 넘겨받은 남자 페터 슐레밀은 그림자가 없으면 빛도 없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는 그림자를 팔고 빛을 잃었다. 그림자가 없으면 빛도 없다. 그림자는 빛의 존재증거이기 때문이다. 개인과 사회(혹은 국가)는 늘 그림자를 의식하고 살아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림자를 마주볼 수 있는 용기와 인지적 공감능력을 길러야 본체를 잃지 않는다.

 

  도시 속 짐승과 사물들은 그림자가 있는데 오직 인간만 그림자가 없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그림자는 호모 사피엔스가 도시 속에 갇힘으로써 잃어버린 인간 고유한 특성일까. 이를테면 사람이 품은 갖가지 종류의 감정이죠. 슬픔, 망설임, 질투, 두려움, 고뇌, 절망, 의심, 미움, 곤혹, 오뇌, 회의, 자기 연민······ 그리고 꿈, 사랑”(178)같은.

 

  그림자는 도시와 바깥의 중간지점에 산다. 도시 안이 상상계라면 그 바깥 세계는 실재계이고 그림자는 꿈처럼 반무의식의 상징계를 의미한다. ‘의 그림자는 죽어가는 생명처럼 말한다. “여기 있는 그녀가 그림자고 벽 바깥에 있던 그녀가 본체였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중략) 실은 이곳이 그림자의 나라가 아닐까. 그림자들이 모여 이 고립된 도시 안에서 서로 도와가며 숨죽이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 (176)

 

  그림자를 버린 자만 이 도시에 거주할 수 있다는 원칙을 부정하는 문장들이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 지금 여기의 가 실은 그림자이고, 거기의 가 진짜 일수도 있다는 것. 육체와 영혼, 몸과 마음, 껍데기와 알맹이, 현실과 꿈, 고유의 역할과 사회적 역할 등이 대립적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다. 본체와 그림자는 손등과 손바닥처럼 표리일체다. 손이 나의 자아라면 상황에 따라 상대방에게 손을 펴고 악수를 청할 수 있고, 주먹을 쥐고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 그 둘 다 손이 하는 일이다.

 

  다음으로 도서관을 보자. 현실과 가상 세계에 모두 등장하는 공간이다. 실제 세계에서 중년의 는 산골 마을의 도서관장으로 부임한다. 전임 관장인 고야쓰는 트럭 사고로 아들을 잃고, 사랑하는 부인도 강에 몸을 던졌다. 본인 또한 산책 도중에 심장 발작으로 죽었다. 하지만 그림자가 없는 인간이자 유령으로 앞에 나타나 도서관 안쪽 장작 난로가 있는 정사각형 방에서 대화를 한다. 한편 도시에도 도서관이 있다. 나는 눈에 상처를 낸 꿈 읽는 이의 자격으로 오래된 책상에 앉아 달걀 모양의 오래된 꿈을 읽는다.

 

  도서관의 서고에는 책 대신 오래된 꿈이 수납되어 있다. ‘오래된 꿈이 그림자의 말처럼 이 도시가 성립하기 위해 벽 바깥으로 추방당한 본체가 남겨놓은 마음의 잔향”(177)긁어내어져 밀폐 보존된 사람들 마음의 잔재”(186)이라면 도서관은 마음의 눈으로 마음의 경전을 읽는 신전이다. 보르헤스의 도서관처럼 각각의 마음은 하나의 소우주이고 궁극의 개인 도서관”(557)이다. 도서관은 한 점에서 시작해 알 수 없는 끝을 향해 팽창하는 드넓은 마음들의 총체다. 도서관에서 읽는 대상은 책이나 오래된 꿈이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도서관에서 자신의 내면을 읽는다.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고요하고 고독한 작업이다.

 

  ‘는 고야쓰를 대신해 도서관장이 되었고 비범한 소년은 나의 후임자로서 도시의 도서관에서 꿈 읽는 일을 계속한다. 고야쓰, ‘’, 소년의 순서로 계승의 바통이 현실의 도서관 안쪽 정사각형 방과 의식의 깊은 밑바닥에 있는 작은 정사각형 방”(747)으로 건네지는 구조다. 하루키의 아버지가 난징 대학살(1937) 무렵 중국에서 종군했고 그 때의 참상을 전해들은 하루키도 유사 체험과 트라우마를 겪었을 것이다. 이 소설을 비롯한 하루키의 작품에 군인 장교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아버지의 경험의 계승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그 높고 견고한 도시의 벽으로 돌아가자.

  20091월 이스라엘의 최고 문학상인 예루살렘상수상자로 선정되었다. 2023년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처럼 그해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분쟁이 지속되고 있었다. 하루키는 시상식장에서 벽과 계란이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했다.(조주희, 하루키의 삶과 작품세계(북스타, 2021) 189-191쪽에서 발췌)

 

  “만약 여기에 단단하고 커다란 벽이 있고 거기에 부딪혀 깨지는 계란이 있다고 하면, 저는 언제나 계란 쪽에 서겠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많든 적든 각각 하나의 계란이라는 것을. 어쩔 수 없는 하나의 혼과 그것을 둘러싼 약한 껍질을 가진 계란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많든 적든 각자에게 있어 단단하고 커다란 벽에 직면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벽은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시스템이라고 불립니다.”

 

  ‘이라는 공고하고 강력한 시스템을 통과하기 위해 달걀 모양의 오래된 꿈을 읽는 이가 필요하며, 그 사실을 이야기로서 전달하는 존재가 소설가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하루키는도시와 벽을 쓴 것이 아닐까.

 

  나는 백석의 시 중에흰 바람벽이 있어를 가장 좋아한다.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중략)/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느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중략)/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후략)

 

  흰 바람벽이라는 스크린에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나와 내 그림자와 도서관이 나오는 영화. 영화가 끝나도, 끝나지 않는 지난날의 기억이 엔딩 크레딧처럼 올라가는 극장에서 우두커니 앉아있는 고독한 인간. 가끔은 한 편의 소설이나 영화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극장을 나온 나는 변한 게 없는데 모든 것이 달라진 것 같은 느낌. 누군가 나직이 내 귀에 속삭이는 것 같다. “마음으로 원하기만 하면 됩니다.” “당신의 마음은 하늘을 나는 새와 같습니다. 높은 벽도 당신 마음의 날갯짓을 막을 수 없습니다. (중략) 당신의 분신이 그 용감한 낙하를 바깥세계에서 안전하게 받아줄 거라고, 진심으로 믿으면 됩니다.” (754)

 

  이인삼각으로 결승선에 도착한 나는 너에게 용기 내어 물었다. 이름을 알려 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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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이란 무엇입니까 시인동네 시인선 199
김대호 지음 / 시인동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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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을 읽으며 단상을 적은 메모를 확인하니 '계산, 곡선, 당신(그대), 위악, 불안(고요), 회의' 같은 단어가 적혀 있다. 서정시의 전통을 따를 생각이 없고 형이상학적 명제에서 출발해 집요하게 꼬리를 물고 벽을 타고 넘어가는 진술의 향연. 소설을 읽듯 읽으면 자칫 추상적, 사변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눈에 밟히는 구절을 속으로 소리를 내어 읽으면 깊은 맛이 느껴진다. 김대호의 시에 나는 '건설적 회의론자의 시'라고 명명하고 싶다.



* 곡선 13쪽


* 누진세 22쪽


* 피곤은 이제 피곤하다 28-29쪽


* 실천이란 무엇입니까 72-73쪽


* 나비 글씨체 104-106쪽


고요 속에도 소란은 있다/ 꽃의 소란은 향기이다 (중략) / 문장을 만드는 일의 고통은 문장 이전에 있다/ 문장이 만들어지면 그것은 즉시 꽃의 소란이 된다//(중략)// 서정은 어리석다/ 오늘의 날씨는 서정의 무늬를 매만진다/ 내가 입고 있는 셔츠는 죽은 사람의 옷을 물려받은 것이고 내 미래는 아직 과거를 청산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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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우는 소리를 배운 건 우연이었을까 창비시선 486
이동우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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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서정을 포기하지 않는 견고한 이미지로 완성한 건축물. 상괭이, 표제작, 이유와 이후, 먼지 차별, 매미 소리에 오래 눈이 머물렀다. 전태일 문학상, 대산창작기금 수혜의 경력에서 보듯 태작이 없다. 부분의 합을 넘어, 시집 한 권이 창발성을 지닌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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