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에서 온 마티 소심한 개인주의자를 위한 소셜 가이드 1
카롤리나 코로넨 지음, 페트리 칼리올라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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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 에어를 타면 우리나라에서 8시간 만에 핀란드에 도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인천에서 출발해 가장 빨리 도착할 수 있는 유럽국가. 방송인 따루의 나라에서 최근에는《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핀란드 편에 출연했던 페트리와 친구들로 화제가 되기도 했던.


난 핀란드에 가본 적이 없다. 사우나(sauna)의 원조가 핀란드며, 여러 나라의 교육기관이 연수를 가는 핀란드 선진 교육시스템 정도. 축구팬이라면 90년대 잉글리쉬 프리미어리그 아스날의 ‘야리 리트마넨’을 떠올릴 것이다. 또 뭐가 있을까.


마이클 부스의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거의 미친 듯이 웃긴 북유럽 탐방기), 글항아리, 2018』에서 제2장 핀란드 편에 소개된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산타 2. 침묵 3. 알코올 4. 스웨덴 5.러시아 6. 민중의 촛불 7. 아내들.


또한 같은 책에서 핀란드인을 설명하는 형용사 8개에 관한 설문을 소개하고 있다. ‘정직한, 느린, 믿을 수 있는, 충실한, 직설적인, 내성적인, 시간을 잘 지키는’


페이스북에 공개한 ‘마티’의 ‘Finnish Nightmare'시리즈를 단행본으로 출간한 이 책은 보는 것만으로도 직관적으로 의미가 파악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웃음 짓게 하고, 당신에게도 그런 면이 있었지, 라고 생각하게 할 것이다.


생각해보니 한 장 한 장 너무 빨리 넘겼다. 천천히 다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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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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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연작소설, 디디의 우산, 창비, 2019


이 책은 빌리지 않고 샀다. 부천시의 ‘희망도서대출’ 정책은 시민 한 사람 당 월 20권씩 동네서점과 연계해 새 책을 빌려 주는 제도다. 대개 소설, 여행에세이, 웹툰 류는 빌려 읽고 시집은 온라인서점을 통해 산다. 그런데 이 책을 ‘희망’도서로 빌리지 않고 ‘소장’하기 위해 샀다.

내가 신청해서 빌리는 ‘희망’도서와 사서 책장에 꽂아두는 ‘소장’도서를 가르는 차이는 무엇일까. 책장을 넘기며 그을 수 있는 밑줄과 하이라이트 표시일까, 다시 읽고 싶을 소장하는 것일까, 읽기 전에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은 어떻게 가능할까, 소재와 작가에 대한 신뢰일까. 나아가 소장 한 책 중에 책장에 남아있는 책과, 중고서점에 팔려 나가는 책과 버려지는 책은 어떻게 다를까.

소장도서와 희망도서는 다르다. ‘소장’이라는 낱말은 내게 ‘소망(所望)’처럼 들린다. 소망은 ‘어떤 일을 바람. 또는 그 바라는 것’, 희망(希望)은 1) 어떤 일을 이루거나 하기를 바람 2) 앞으로 잘 될 수 있는 가능성, 으로 정의되는데, 사전적 의미로는 차이를 구분하기 힘들다. 하지만 나는 희망이란 미래에 이룰 수 있는 유형적인 것들에 대한 긍정적 바람으로, 소망은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존재에 대한 불가능한 외침으로 내겐 들린다.

이 책에는 두 편의 중편「d」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가 실려 있다.

전자는 2017년 제11회 김유정 문학상 작품집(당시 ‘웃는 남자’로 발표)에서 읽었고, 후자는 처음 접했다. 작가의 단편집 『파씨의 입문』에 실린, 「d」의 모태가 된 단편 「디디의 우산」을 읽은 터라 'dd'를 떠나보낸 ‘도도’에 감정을 이입하며 읽었다. 물론 「d」는 ‘d’와 ‘dd'의 이야기 뿐 아니라 세운상가에서 중고 오디오 수리점을 하는 ’여소녀‘와의 관계가 보태진다. 창문 없는 방에서 방만한 오디오 세트를 여소녀로부터 마련해 들여 놓은 뒤 d가 음악을 듣는 장면, “죽음엔 죽음 뿐이며, 모든 죽음은 오로지 두 개로 나눌 수 있을 뿐”이며 죽음에는 오직 “목격되거나 목격되지 못”하는 죽음만 있을 뿐(113쪽)이라는 d의 인식이 깊이 마음에 남았다. d는 사물과 사물의 반향과 죽음에 대한 인식을 통해 그래도 달팽이처럼 천천히 어둠 속에서 빠져나오는 옅은 희망이 보인다.

반면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읽는 내내 힘겨웠다. 몇 단락을 읽고 자주 쉬었고, 밥을 먹고 나서, 자고 나서, 날을 넘기며 읽었다. 이 소설에 담긴 내용은 너무 광범위에 한 번에 소화하기 힘들었다. 최근 한국 현대사에 굵직굵직한 사건들(1987년 민주 항쟁, 1996년 연대 집회, 2002년 대통령 선거, 2008년 광우병 쇠고기 반대집회, 2009년 용산참사, 2014년 세월호 사건, 2016년 촛불혁명)이 배경으로 담겼다. 화자인 김소영이 언급하는 니체, 롤랑바르트, 생텍쥐페리, 슈테판 츠바이크, 한나 아렌트의 생애와 저작들, 여성혐오와 페미니즘, 동성애의 주제들 그리고 부끄러움, 답답함의 감정들.

한나 아렌트가 언급한 악의 상투성(banality)에 대한 통찰과 비맹인이 말할 필요가 없었던 점자의 세계가 아닌 묵자((墨字)의 세계에 대한 언급이 기억에 남았다.

“우리는 그것을 말할 필요가 없었다. 묵자가 상태가 상식이라서 그걸 부를 필요도 없이, 그것이 너무 당연해 우리는 그것을 지칭조차 하지 않는다.”(274쪽)

내가 떠올리고 내뱉고 적어 내려간 묵자들이 침묵하며 살아온 누군가에게는 상식과 상투의 옷을 입은 바늘이 아니었을까. 광장에 모인 우리가 모두 승리했다고 자축하고 해산한 뒤에 왜 우리들은 또다시 광장에 촛불과 깃발과 피켓을 들고 모여들고 있을까. 1987년, 2002년, 2008년, 2016년 그리고 2019년에도 말이다.

희망도서들이 소망이 될 때까지, 묵자의 세계가 침묵의 세계로 변할 때까지 읽고 쓰는 일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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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자 - 여자의 물건이 의미하는 것들에 관해
도현영 지음 / 버튼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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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 all ears.

 

 

  너는 노크를 한다. 잠 못 이루는 이의 문 앞에 서서. 문이 열리면 꿈속에서 삶을 리셋할 수 있을 것 같다. 꿈의 고향은 잠이다. 꿈은 고향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고향에서 직장을 얻고, 고향 사람과 결혼해, 고향을 닮은 아이를 낳았다. 고향에서 너는 주인의 아들을 죽여 쫓기는 노비, 펄을 뒹구는 축구선수였고 몇 번 말을 섞지도 않은 중학교 동창을 만나 밤새 술을 마셨다.



  숙몽(熟夢)에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너는 일기를 쓴다. 증발하기 전에, 겪은 사물과 사람과 사건, 그 시각(時刻)과 잔상을 스케치한다. 언제나 흐릿하다. 잊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귀갓길에 흘려버린 것이 지금까지 파먹은 귀지만큼 많다. 꿈은 예비할 수 없다. 대비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출발해야 한다. 꿈의 여정에서 네가 겨우 손에 쥔 것은 긴 밤과 감은 눈과 열린 귀다.



  너는 책상에 앉아 있다.요즘 여자라는 낯선 책의 문을 두드린다. 블랙 앤 화이트의원피스를 벗기니 오십 가지 사물들이 백수(百手)를 펼치고 맞아들인다.요즘 여자가 말하고 네가 받아 적는다. 말하지 않아도 너는 받아 적는다.



 

  I'm all ears.

  나는 귀다, 그리하여 나는 존재한다.

 



요즘 여자가 궁금하다. 묵혀 두었던요즘 여자의 말을 수면 안대를 쓰고 듣는다. 눈은 감기지만 귀는 점점 자란다. 귀가 몸을 잡아먹는다.요즘 여자가 더 잘 들린다. 들이고 내쉬는 숨소리, 이 가는 소리, 코고는 소리, 손 비비는 소리, 입 꼬리가 올라가는 소리, 상하좌우로 눈동자를 굴리며 표정을 살피는 소리까지 다. 엄마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놓지 않는 아이의 눈빛과 원어민의 발음을 따라 중얼거리는 취업준비생의 그림자도. 나는 잠귀가 밝지 않아도, 말귀는 용케 알아듣는다.요즘 여자가 말을 걸어주면 나는 꽃이 아니라 귀가 된다. 달팽이처럼 천천히 귓바퀴를 굴리며 외이(外耳)에서 내이(內耳)로 진입하는 오십 가지 사물들. 귓불을 꼬집어도 이미 늦었다.



  그녀의 백팩이 궁금하다. 인터뷰어로서 인터뷰이를 만나러 갈 때 정장에 하이힐을 신고 백팩을 맨다는 그녀. 구두점을 또각또각 찍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그녀의 자세가 궁금하다. 나도 백 팩이 있다. 검은 백 팩이다. 책 몇 권, 오래 쓴 필통, 미세먼지용 마스크, 포스트잇, 이어폰, 장갑이 엷은 빛을 발하며 어둠 속에서 손길을 기다린다. 그녀의 말처럼 백 팩은 두 손의 자유를 내게 허락했고(thumbs up), 나 스스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걸을 수 있는 용기를 주는 든든한 사물이다.요즘 여자덕분에 주변 사물의 온기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노란색 가름끈을 페이지에 잘 묻어두고, 실비가 내리는 길을 걷고 있다. 확성기를 끄고 소음기(消音器)를 켠다. 광부가 머리에 두르는 헤드램프를 끼고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지면이 발을 밀어낸다. 귓바퀴는 멈추지 않는 팽이처럼 구른다. 다른 차원에 점점 다가간다. 달뜬 마음으로 너를 만나러 간다. 잠 없는 꿈과 꿈 없는 잠이 새벽 세 시 시계탑 앞에서 만난다. 잠의 베개를 빌리지 않고도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다.



 

  I'm all ears. 나는 귀다. 나는 열려 있다

  I'm hearing for years. 나는 일생 듣는다.

  I'm here. 그리하여 나는 여기 존재한다.

  I'm yours. 나는 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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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를 삼킨 사물들 - 보이지 않는 것에 닿는 사물의 철학
함돈균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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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버드 박스"를 보았다.
남편 없이 자기 아들(보이)과, 다른 이의 딸(걸)을
어떻게든 죽음의 강에 배를 띄우고
새가 지저귀는 안식의 땅으로 데려갈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왕자가 말했지,
아 책의 부제는 "보이지 않는 것에 닿는 사물의 철학"

안대를 벗으면 안 돼,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네가 그를 보는 순간 너는 돌로 변할 지도 몰라

영화에서 안대를 벗고 어떤 정체를 보면
본 이를 자살하게 만든다
그 괴물 같은 정체가 인간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한다

한 공간에 갇힌 사람들,
그 안에서도 믿음과 불신과 배신과 사랑, 욕심이 같이 산다
다시 한 번 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엄마이자 아줌마가 보이과 걸에게
세상에 태어난 후 오년 동안 이름을 지어주지 않고

보이! 걸!

그녀는 그들의 안대를 벗겨주지 않았다
급류에 휩쓸려 생사를 넘나드는 순간에도

보이! 걸! 그녀의 목소리는 물살처럼 거칠었고,

마침내,

새가 지저귀는 천국의 땅
문을 여니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앞을 볼 수 없는 사람들

모두가 당연히 볼 수 있는 것, 아니 보아야 한다고 말하던
그것들을 하나도 보지 않고도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이

살았다, 살아남았다!


올림피아, 톰!

너희들이 마음껏 상상하고 웃을 수 있는 곳이

유토피아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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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순수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5
유계영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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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붙박이장의 미닫이를 열었다.

몸 없는 옷들이 다닥다닥 일렬로 서서
한 몸을 이루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그 아래,
오래된 나무 서랍장을 열었다.

텅 빈 가운데,

삽십 센티미터 눈금 자 여럿이
엇갈려 몸을 포개고 있다.

본래 하나였지만
눈금이 점점 자라 둘이 되고,
새끼를 쳤다.

삽십 센티미터 만큼 자라면
돌림노래처럼
다시 원점부터 시작하는

직각의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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