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 더 포토그래피 (포토북) 듄 시리즈
치아벨라 제임스 지음, 안예나 옮김 / 아르누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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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2[:파트2] 개봉 첫날 지인과 영화를 봤다. 3시간에 가까운 영화를 숨죽이고 보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파트1]2021, [:파트2]2024, 그럼 [:파트3]2027년인가? 3, 어떻게 기다리지? [:파트2]를 보기 위해 이전의 내용을 다시 되짚으면서 듄 우니버스’ ‘듀니버스라 불리는 <>의 세계관에 감탄했다. 먼 미래의 우주, 고도로 발달한 과학으로 우주 항로 개척에 필요한 스타이스를 채취하기 위해 사막 행성 아라키스로 이주하게 된 폴 아트레이드와 그의 가족이 겪는 이야기. 중세 봉건시대처럼 왕조에 충성을 바치는 귀족 가문들간의 팽팽한 세력다툼이 펼쳐지는 가운데 새로운 행성과 그곳의 원주민들, 비밀스런 단체가 얽히면서 소설은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 모든 걸 원작자인 프랭크 허버트는 오래전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창조해낼 수 있었을까.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소설로 <>을 손꼽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영화 <>에 깃든 마법 같은 힘은 영화 제작 과정의 다양한 요소 뿐만 아니라 그 중심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 140


 

<: 더 포토그래피>[]의 공식 포토북이다. <>의 공식 사진작가인 치아벨라 제임스가 영화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찍은 사진 중에서 일부를 선별해서 수록해놓았다. 거대한 바위와 붉은 모래로 가득한 표지를 넘기는 순간부터 마치 다시 상영관에 앉은 기분이 들었다. 분명 극장에서 봤던 장면이지만 어쩐지 다른 느낌을 주는 사진들이었다. 요르단의 와디 럼 사막을 시작으로 부다페스트, 아부다비 사막, 헝가리의 스튜디오, 식물의 초록빛이 반갑게 느껴졌던 노르웨이 해변까지 영화 촬영이 이뤄지는 모든 순간이 담겨 있었다. 일반 판형보다 큰 포토북을 한 장 한 장 넘기다보면 영화에서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장면이 어떻게 촬영되었는지 알 수 있었고 그래서 스태프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를테면 등장할 때마다 경악하게 했던 하코넨 남작의 촬영 장면은 스태프가 아니면 모를 이야기일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사진작가인 치아벨라가 간간이 남긴 짧은 글이었다. 사진에 무지한 내겐 그냥 찰나의 순간을 담은 사진 한 장일지라도 그에게는 완전히 다른 의미였을 것이다.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을 어떻게 하나의 프레임에 담을 것인가. 거기에 예술가로서의 그의 철학과 고민과 철학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이 포착하는 순간들은 덧없이 지나가 버리지만 사진은 남는다시간은 프레임 안에 머무르고 사진 속의 이야기와 여정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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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이들에게
박상률 지음 / 특별한서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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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무심히 지나칠 뻔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이들에게> 제목만 보고 흔한 수필집이려니 했다. 하지만 박상률이란 저자 이름에 못이 박힌 듯 시선이 멈췄다. 박상률, <봄바람> <개님전>의 그 박상률? 책 표지를 훑어봤다. [외로움을 으로 바꿔 내는 특별한 거인들의 이야기]란 부제의 특별한 거인은 누구일까. 창틀에 팔을 올려 턱을 괴고 있는 이를 그린 표지 그림도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무심히 콕 점찍은 것처럼 표현된 두 눈이 내 눈엔 어쩐지 골똘히 생각에 잠긴 것 같다고나 할까?

 


박상률은 어떤 작가인가. 저자는 <봄바람>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봄바람이다.’ 단 한 줄의 문장으로 단박에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짝사랑하는 소녀와의 미래를 꿈꾸는 사춘기 소년의 아픔과 고민, 성장통을 읽으며 줄곧 작가의 자전소설은 아닐까 의심할 정도로 생동감이 넘쳤다. <개님전>은 또 어떤가. 진돗개 황구와 그 자식들의 이야기를 마치 판소리처럼 맛깔나고 질펀하게 풀어놓았다. 순수하면서도 해학적인 글쓰기의 박상률을 나의 애정작가 반열에 올리는 계기가 된 작품이었다. 그런 저자에게 존재하는 것만으로 힘이 되는, 특별한 거인이 있다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마크 트웨인은 (중략) “거의 적합한 단어와 적합한 단어의 차이는 반딧불과 번갯불의 차이이다.”라면서 한 문장 한 문장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 14

 


목차를 보니 제일 먼저 마크 트웨인과 현진건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생몰 연대가 불과 10년 겹치는 이 두 작가를 묶어놓은 건 어떤 연유일까 궁금했는데 바로 해학과 풍자였다. 그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아픔과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사실적인 표현과 문장으로 작품을 썼다. 그런 그들을 저자는 특별한 거인이며 그들의 여깨 위애 올라서서 세상을 두루 살핀다고 털어놓았다. 글쓰기, 좋은 문장을 고민하는 이에게 필독서로 꼽히는 책이 있으니 바로 이태준의 <문장강화>. 저자는 이태준을 단편소설의 완성자라고 언급하며 그의 소설을 읽을 때는 그저 술술 읽히는 문장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또한 이태준의 소설을 읽은 느낌이 수필 같았다며 어찌 보면 소설도 수필처럼 썼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문장력 덕분이라고 짚고 있다. 예전에 읽었던 일간지의 칼럼에서 저자는 소설과 에세이의 글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털어놓았다. 수필이나 에세이가 당당히 문학의 한 장르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그런 저자의 고뇌를 본문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것이 수필의 묘미이다. 실수한 상황을 세밀히 묘사하고, 너스레를 떨며, 알면서도 속고, 지금도 긴가민가하는 모습을 굳이 그린 것, 이는 고백 문학으로서의 수필을 잘 보여 준다. - 181

 


작가를 이야기하거나 책을 이야기하는 책을 만나면 처음엔 내가 읽었던 책, 아는 작가를 꼽는다. 나와 저자의 느낌은 어떻게 다를까 혹 공통분모는 없을까 궁금한 마음에 먼저 뽑아 읽는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남는 건 아직 만나지 못한 작가였다. 나의 책읽기가 협소했음을 깨닫게 되는데, 반가운 숙제를 받아든 느낌이라 이 역시도 나쁘지 않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거인의 어깨에 저자가 올랐던 것처럼 나 역시 그 어깨에 올라보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진다. 높아진 시야만큼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과 타인을 둘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공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공감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야말로 글을 쓰는 첫 목적이자 마지막 목적이리라. 박병률의 글쓰기 작업의 밑바탕은 바로 공감 능력이다. -118

 


문학을 한다는 것은 억압받는 약자들 편에서 그들의 내면과 외면을 그려 내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큰돈을 벌거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강자보다 약자의 목소리를 들려줌으로써 세상의 하찮은 존재들을 하찮게 여기지 않도록 하는 힘을 지닌 것이 문학 하는 행위이다. 그렇다면 문학이야말로 쓸모가 많은, 진정으로 유용한 도구이다. -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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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은 방 둘이서 2
서윤후.최다정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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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이 갖고 싶었다. 내 물건이 다른 이의 것과 뒤섞여 논쟁을 벌이지 않아도 되는 오롯이 내 것으로만 된 방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태어난 순간 이미 형제가 다섯 손가락을 넘었기에 내 방을 요구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다 여고 때 처음 생긴 내 방이 생겼는데 주방 위 다락방이었다. 허리를 곧추세울 수 없는 공간, 그마저 반은 짐으로 채워져 있어 앉은뱅이 책상과 내 몸 하나 간신히 눕힐 수 있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기뻤다. 어슴푸레한 전등 아래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책을 읽다 잠들 수 있어 행복했다. 창이 있어 더 좋았다. 작은 창을 열고 밖을 내다보면 맞은편 집 지붕 너머로 하늘이 보였다. 특별하지 않은 밤하늘을 보며 매일 꿈꿨다. 저 너머 넓은 곳으로 향하는 걸.


 

그가 읽은 책, 그가 머무는 공간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의 기질은 타고 나는 것이지만 이후 살아가면서 어떤 책을 읽고 누구를 만나고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타고난 기질이 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자신의 주변을 잘 가꾸어야 한다는데. ‘혼자의 방에서 시간을 보내며 쌓은 감정, 읽고 쓴 책, 지어 먹은 밥들이 모여 지금과 같은 모양의 나에게로 도착했다.’ <우리 같은 방> 프롤로그 첫 문장을 읽으며 지금의 난 어떤가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 같은 방>은 시인 서윤후와 한문학자 최다정이 이란 주제로 우리가 일상을 보내는 공간에 대해 함께 쓴 에세이다. 서윤후와 최다정. 이미 몇 편의 작품을 발표한 작가이지만 내겐 첫 만남이다. 낯선 작가의 공동작품임에도 이 책을 선택한 건 우리 같은 방이라는 제목 아래 조그마하게 적힌 둘이서란 부제였다.


 

살아온 시절의 우리를 닮은 방에서 우리는 제일 안전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방에 대한 이야기를 소환해 쓰면서 이 확실한 마음 하나를 건져 올리게 되어 다행이다. - 11


 

같은 공간에 사는 두 사람이 서로의 생각을 적은 것일까? 생각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방은 누구에게나 가장 내밀하고 편안한 공간이다. 방에서 어떤 일상을 보낼지 기질과 성향에 따라 다를 것이다. 두 명의 동갑내기 작가가 각자 자신의 방을 이야기하는데 어쩐지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의 방]에서 다정윤후가 번갈아가며 자신이 머물고 있는 방을 이야기하다가 [다정의 방], [윤후의 방] , [다시 다정의 방], [다시 윤후의 방]으로 이어진다. 이사가 잦았던 다정이 거쳐간 자취방 일화를 읽으며 문득 30여년 전 나의 자취방이 떠올랐고 가로로 누워있는 책이나 잡동사니를 좋아하는윤후의 글에선 현재 내 모습이 설핏 떠올랐다.

 


나는 방에서 고요를 수비하며 붙잡는 일을 한다. 쓰는 일로, 놓친 것을 심판하고 남겨진 것을 눌러 적는다. 그런 의미에서 방은 헤어짐을 판가름하는 가정 법원의 풍경일 수도 있고, 혼자서 짝사랑하는 누군가의 빼곡한 서랍일지도 모르겠다. -119


 

같은 듯 다르고 다르지만 닮은 그들의 글을 보며 다시 나의 방을 꿈꾼다. 중년을 넘어 노년에 가까워졌지 내 방을 갖고 싶은 마음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언제가 됐든 내 방이 생기는 날까지 종종 이 책을 뒤적이게 될 것 같다. 볕이 잘 드는 창문 쪽에 책상을 놓고 천장까지 닿는 책장을 짜서 세로로 책을 꽂고 연필 선인장 하나, 고양이 한 마리 키우면서 책 읽고 글을 쓰는 그런 날...


 

지나온 방의 역사는 곧 창문들의 역사와도 같다. 무해한 아름다움을 담아 주는 가지각색의 창문을 수집해 왔다. 창문은 놓인 위치와 방향에 따라 내가 바라보는 세상의 테두리 모양과 크기, 색감과 선명도까지 정해 주었다. 동그랗고 네모지고 금이 가고 먼지가 낀 각종 창문들. 창문 앞에 선 나는 창문의 형태와 상태에 따라 창문이 보여 주는 만큼만 세상을 구경하게 되는 것이다. -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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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역하는 말들 - 황석희 에세이
황석희 지음 / 북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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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책을 읽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식탁으로 사용하는 테이블을 걸레로 닦는다는 대목에서 걸레가 맞나? 의문이 들었다. 원문을 찾아볼 능력은 되지 않아서 같은 대목을 다른 출판사의 책에서는 행주라고 되어 있었다. 단어 하나에 따라 번역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다는 걸 실감했다. 그때부터였다. 외국 작품을 읽을 땐 번역을 따지게 되었던 게.


 

직역과 의역. 원문을 그대로 번역한 직역과 의미를 살려서 번역한 의역 사이에서 늘 고민했다. 소설이 아닌 과학이나 철학 분야의 책을 읽을 땐 번역가의 이력도 살펴보곤 했다. 번역가가 원문을 이해했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책에 대한 이해도는 달랐다. 때론 A출판사의 책과 B출판사의 책을 동시에 비교하면서 읽기도 해봤지만 매번 그럴 순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 것도 답이 아니었다.


 

<오역하는 말들>은 번역가 황석희의 에세이다. 20년차 번역가라고 하는데 막상 그의 작품을 접한 게 많지 않다 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포털검색으로 그의 작품을 알아보니 (주로 영화이긴 했으나) 내가 재미있게, 인상 깊게 본 작품들이 꽤 많았다. 순식간에 바뀌는 화면과 자막을 분주히 눈으로 따라가면서 폭소를 터뜨렸고 분노했고 감동했다. 그의 글이 도드라지지 않으면서도 절묘하게 어우러졌기에 가능한 일이었을텐데 그걸 이제야 알게 됐다.



 

아무리 힙해도 오역은 오역이다이렇게 본디 의미에서 탈선한 문장이 여러 채널을 오랫동안 거치면 정역의 탈을 쓰면 문장은 물론이고 화자의 의도도 곡해된다힙하고 예쁘고 근사하면 뭐하나내실이 없는데. -101쪽


오역은 번역문에서 자연 발생하기에 번역하는 이에게 오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 오역이 어느 정도인지, 또 상대가 알아차리느냐 아니냐 이게 문제였다. 어떤 문제든 그것을 인지하고 인정한 후 받아들이고 나면 이후의 상황은 달라진다. 저자도 그랬던 듯하다. 책에서 저자는 번역가로 살아오면서 느낀 일상의 다양한 오역을 하나하나 이야기한다. 의식하지 않고 주고받는 말속에 얼마나 많은 오역이 존재하는지, 친밀감과 무관하게 말이 왜곡되기도 하는 말이 얼마나 많은가. 말의 진의를 파악하기 전에 오역하고 곡해해서 상처받고 그로인해 멀어진 관계는 또 어떤가. 어쩌면 이것 역시 직역과 의역 같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과의 일상을 풀어놓은 대목은 인상적이었다. 남편이자 아빠이지만 누군가의 아들인 그가 무심하게 털어놓은 이야기는 정반대에 서 있는, 말이 아내이자 엄마이지만 누군가의 딸인 내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어떤 형식으로든 진심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려는 그의 마음이 다른 이에게 전해지길 바래본다.


 

어른의 시선으로 아이의 행동을 번역하다 보면 이런 오역을 저지르기 쉽다마치 영어 번역을 해야 하는데 일어 사전을 들고 번역하는 것과 비슷하다아이의 말과 행동을 번역할 땐 어른 사전을 잠시 치우고 아이 사전을 펼쳐야 한다. - 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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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의 우리 사람 열린책들 세계문학 294
그레이엄 그린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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빰 빰 빠바 빰 빰 빰 빠바 빰 빰 빠바 따라란~ 따라란~ ♩♩♪

가족들과 [미션 임파서블]을 봤다. 디지털 정보를 모두 통제하는 인공지능 엔티티로 인해 사람들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급기야 엔티티가 인류 전체를 핵전쟁으로 몰아넣는 절체절명의 위기, ‘톰 아저씨에단 헌트와 팀원들은 목숨을 걸고 불가능한 미션으로 뛰어든다. 첩보액션물은 이래야지, 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영화는 스릴과 박진감이 넘쳤다. 하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 고난도의 액션 장면을 소화하는 주인공을 보니 어쩐지 짠하기도 했다.


 

<아바나의 우리 사람>을 읽는 느낌이 꼭 그랬다. ‘쿠바 혁명 직전 혼란스러운 도시에서 벌어지는 비밀 요원의 활약상’, ‘스파이 스릴러란 소개문구를 보고 손에 땀을 쥐는 스릴과 박진감 넘치는 액션이 가득할거라 여겼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첩보 스릴러인데도 웃기고 거기다 유머가 있다고 해야 할까? 비밀요원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측은하다 못해 짠내가 났다. 그런데 여기서 이해할 수 없는 건 어찌 보면 부조화이면서 미스 매칭 같은 이 조합이 사람들을 더 끌어당긴다는 점이다. 어쩌나, 이 사람?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길까? 조마조마 걱정이 되면서도 궁금하게 만든다.


 

소설의 주인공은 영국인 제임스 워몰드. 이혼남인 그는 쿠바의 아바나에서 진공청소기를 판매하면서 딸 밀리를 혼자 키우고 있다. 그의 유일한 낙이라면 독일인 의사 하셀바허와 바에서 술 한 잔을 즐기는 것이었다. 십 대의 딸을 키우는 어려움과 서로의 일상을 농담처럼 주고 받으면서. 그런 어느 날 워몰드는 자신의 가게를 방문한 낯선 인물을 경계하듯 긴장하게 된다. 옷차림부터 음성, 말투와 사소한 행동까지 모두 예사롭지 않았다. “영국인이시죠?”라며 대뜸 물어본 남자는 워몰드와 마치 동문서답 같은 대화를 주고 받더니 다시 만날 것이라며 가버렸다. 혹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사람은 아닌지 그 남자의 정체에 대해 의문을 가질법하지만 그에겐 더 큰 걱정거리가 있었다. 바로 딸 밀리. 외모를 화려하게 치장하는 건 십대라서 그렇다고 해도 학교에서의 말썽으로 그가 불려가기도 했는데.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밀리가 돈을 물 쓰듯 하는 거였다. 급기야 밀리가 말 한 마리를 덜컥 구입하면서 워몰드의 걱정은 더욱 깊어져 갔다.


 

그런 차에 우연히 들른 바에서 워몰드는 지난번 가게를 방문한 신사를 만나는데 그의 행동이 심상치 않았다. 대뜸 워몰드를 화장실로 데려가더니 물을 틀어놓고선 알 수 없는 애길 늘어놓기 시작했다. 자신은 영국 정보국 출신인데 우리 사람이 필요하다고. 그러면서 자신을 도와 첩보활동을 해주는 대가로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호손의 말에 워몰드는 그의 제안을 수락하는데...


 

애국심 충만한 영국인이니까요. 당신은 여기서 오랫동안 살았고, 유럽 상인회의 존경받는 회원이죠. 우리는 아바나에 우리 사람이 필요합니다. 잠수함은 연료를 필요합니다. 독재자들은 끼리끼리 뭉칩니다. 커다란 존재들이 작은 존재들을 끌어들이지요.” -48


 

20세기 중반, 냉전이 극심한 때였다. 당시 서구가 정보를 둘러싸고 암암리에 치열한 첩보전쟁을 펼칠 때를 다룬 소설 <아바나의 우리 사람>. 여느 첩보스릴러소설과는 다른 어딘가 살짝 2% 부족한 인물들과 예상과는 다른 스토리 전개, 허를 찔린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흥미로웠다. 저자인 그레이엄 그린은 이 작품이 처음인데 스릴러 소설의 대가라도 한다. 그의 다른 작품도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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