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부님 싸부님 2 - 이외수 우화상자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9년 12월
평점 :
세 번째 만남이다. 작가 이외수의 책과. 처음 만난 <하악하악>에서 그의 짧고도 유쾌명쾌한 글을 읽고 감탄을 했다. 이런 걸 바로 ‘촌철살인’이라 하는구나 실감했다. 두 번째 <청춘불패>는 처음과 달리 묵직했다. 젊은 청춘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들, 삶을 살다 실패하고 좌절하더라도 훌훌 털어내라며 어깨를 두드려주는 기분이 들었다. 두 작품은 서로 다른 분위기를 보이면서도 이외수의 빼어난 문장을 실감나게 해 줬다. 범상치 않은 외모, 엉뚱한 도인 같은 그를 일컬어 21세기의 기인소설가, 언어연금술사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사부님 싸부님>. 1983년에 처음으로 출간되었다는 책을 나는 이제야 손에 잡았다. 이번 작품에서 이외수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가.
‘우주의 모든 것은 바로 이 그림 하나 속에 들어 있도다.’로 시작한 책은 작은 원과 그 속의 작은 점에 대해 얘기한다. 서로의 입장과 상황에 따라 ‘작은 원과 그 속의 작은 점’은 엽전이나 눈알, 과녁, 단추, 연필 뒤꼭지처럼 저마다 다르게 보인다. 하지만 그건 모두 틀린 것. 간단한 그림이지만 거기엔 오묘한 우주가 담겨 있으니. 생각과 사고를 방해하는 고정관념을 버리라고 충고한다.
그리곤 또 하나의 그림을 들이민다. ‘이것이 무엇이냐? 빈대떡이냐?’ 제법 큰 원 하나. 그것은 대한민국 강원도 어느 두메산골의 작은 웅덩이. 거기서 어느날 한 무리의 올챙이가 태어나는데 그중에 유독 한 마리만 온몸이 하얀 올챙이였다. 태어날 때부터 남과 다르다는 건 외롭고 고독한 일이지만 그와 동시에 남과 다른 깨달음을 가질 수도 있다. 하얀 올챙이가 바로 그랬다. 깊은 산중에서 노인과 동자가 문답하는 소리를 들으며 지내던 하얀 올챙이는 차츰 도(道)에 관심을 갖게 된다. 날이 갈수록 좀 더 많이 생각하고 좀 더 깊은 사고를 하던 하얀 올챙이는 개구리가 되는 걸 거부하고 바다로 향한다. 웅덩이에서 태어난 올챙이가 바다를? 그게 가능한가? 의문이 들지만 그건 중요치 않다.
웅덩이에서 계곡을 지나 드넓은 저수지에 이른 하얀 올챙이. 그는 수많은 물고기와 생명체를 만나고 그들에게 묻는다. 바다에 대해. 어느 누구도 속시원하게 대답해주지 않았지만 그럴수록 바다에 대한 하얀 올챙이의 열망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러다 어느날 하얀 올챙이에게 동행이 생긴다. 작고 까만 올챙이 한 마리가 그를 ‘싸부님’이라 부르며 함께 하길 요청한다. 그 후 두 올챙이는 물속에 달이 비칠 때 문답을 나누며 함께 바다로의 길을 떠난다.
짧은 글과 간단한 그림으로 이뤄진 책 <사부님 싸부님>은 휘리릭 금방 읽혀진다. 하지만 읽고 나서가 문제다. 두 올챙이가 다른 물고기들, 특히 가물치나 거머리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 대목은 왠지 인간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뜨끔했고 서로 나누는 문답, 그 속에 숨어있는 삶과 인생에 관한 고뇌와 의문은 무얼 의미하는지 알아채기 힘들었다.
알고 보니 ‘이외수의 우화상자’라는 부제 속의 ‘우화’란 단어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있었다. ‘인격화한 동식물이나 기타 사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행동 속에 풍자와 교훈을 나타내는 이야기’란 뜻의 ‘우화(寓話)’가 있는가하면 ‘곤충이 유충이나 번데기에서 탈피하여 성충이 되는’ 걸 뜻하는 우화(羽化)도 있었다. 처음 우화를 전자의 의미로 해석했는데 책장을 덮고 나니 후자의 의미가 더 강하게 와닿았다. 한걸음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서로 무리를 지어 흙탕물을 튀기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제 그만 잠에서 깨어나라며 호통을 치는 게 아닐까.
독자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 책이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바로 책 뒷부분 저자의 말이 모두 처음 출간했던 시기의 글이란 점이다. 첫 출간 후 자그마치 27년이 지났다. 판형을 달리하여 재출간하면서 저자의 글을 새롭게 수록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더욱이 저자가 이외수가 아닌가. 27년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저자의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했는데...정말로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