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백미러 속의 우주 - 대칭으로 읽는 현대 물리학
데이브 골드버그 지음, 박병철 옮김 / 해나무 / 2015년 6월
평점 :
<백미러 속의 우주> 표지를 보는 순간 배시시 웃음이 났다. 하얀 표지를 가득 채운 검은선으로 이뤄진 삼각형들을 보니 문득 어린 시절의 놀이가 생각났다. 종이에 점을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가~득 찍은 다음 친구와 서로 번갈아가며 점과 점을 선으로 이어 삼각형을 만들었다. 하얀 종이에 삼각형이 하나씩 생기다가 한참 후엔 더 이상 연결할 수 없을 정도로 종이가 메워지면 삼각형을 누가 더 많이 만들었는지 개수를 새어보곤 했다. 단순한 게임이지만 이웃한 세 개의 선분으로 둘러싸인 도형이 삼각형이라는 개념을 가장 쉽고, 확실하게 각인하게 된 놀이가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작은 삼각형들로 가득한 표지 한가운데에 떡하니 자리 잡은 백미러. 무의식중에 뒤를 흘깃 돌아보고선 내뱉은 한마디. “엇, 뭐야?”
책은 의문으로 시작된다. ‘우주는 왜 텅 비어 있지 않고 무언가가 존재하는가? 미래는 왜 과거와 다른가?’ 세상에 태어나 주변의 사물과 자연을 조금씩 인지하게 되면서 누구나 한 번은 바로 이런 의문을 품게 된다. 특히 우주는 무중력 상태인데, 어떻게 수많은 행성들이 서로 간격을 유지하고 움직이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내가 물리학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재미를 느끼게 된 계기도 바로 이것이었다. 다만 하나 짚고 넘어가야할 게 ‘물리학의 관심과 재미의 정도’가 ‘물리학의 완전 이해’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이 아니어서 내게 있어 물리학은 가까이 하고 싶으나 가까이 할 수 없는 그런 학문이다. 슬프지만 사실이다.
하지만, 드디어, 희미하나마 희망을 맞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전환점의 중심이자 계기가 된 것이 바로 <백미러 속의 우주>이다. ‘대칭으로 읽는 현대 물리학’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책은 ‘대칭’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칭이 뭐 별건가? 뻔한 거 아냐? ‘점이나 직선 또는 평면의 양쪽에 있는 부분이 꼭 같은 형으로 배치’된 것이 대칭아냐? 특별한 것도 없는데 괜히 호들갑이네...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은 절반만 맞고 볼 수 있다. 저자가 말하는 대칭은 좀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수학이나 과학적 측면을 비롯해서 체스 게임의 규칙이나 상대성이론, DNA의 이중나선, 중력과 블랙홀의 원리 등 자연의 모든 것에서 대칭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조금, 아주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물리학은 대칭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더 이상의 잔소리는 필요 없다. - 17쪽. 머리말 중에서
댄 브라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천사와 악마]에는 바티칸을 폭파하려는 무리들이 ‘반물질’을 이용하는 대목이 있다. 반물질 0.5그램을 훔쳐서 일종의 핵폭탄을 만드는데 이 영화로 인해 한동안 ‘반물질’에 대해 관심이 일었는데 저자는 ‘반물질’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반’이라는 접두어가 붙어 있을 뿐 ‘반물질은 무해하다’면서 물질과 반물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거울을 들여다보라고 권한다. 오른손잡이인 내가 거울 속에서는 왼손잡이로 보이지만 거울 속 세계는 단순히 ‘반전’되는 이상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물질과 반물질의 궁극적인 차이는 여전히 미지로 남는다.……우주의 탄생 초기에 정확하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아는 것이라곤 우주 탄생 직후에 모종의 대칭 붕괴가 일어나서 우리가 존재하게 되었다는 사실 뿐이다.- 75~76쪽.
우주는 물론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핵심인 ‘대칭’은 천재 수학자 에미 뇌터의 연구에 의해 가능했다. 에미 뇌터.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인물인데 저자는 ‘이 뇌터야말로 20세기 과학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이라고 강조하면서 물리학자 에미 뇌터를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부터 수학자를 꿈꿨지만 당시의 학계가 뇌터를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뇌터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파고들었고 그 결과 ‘모든 대칭에는 그에 대응되는 불변량이 존재한다.’는 ‘뇌터의 정리’를 발견하기에 이른다.
1915년에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일반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중력에 관한 기존의 생각을 완전히 뒤엎은 혁명적인 이론이었다. 여기에는 대칭이 아름답고도 심오한 방식으로 깊이 개입되어 있는데, 당시에는 그 누구도 이 사실을 간파하지 못했다. - 188쪽.
반물질, 엔트로피, 상대성이론, 중력과 블랙홀, 힉스입자...단어만 봐도 왠지 숨이 턱하니 막히고 소화가 안되는 듯 갑갑해짐을 느낀다. 이렇게 어렵고 난해하기 짝이 없는 물리학적 법칙도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한결 쉽게 와닿는다. 우주의 미스터리함, 대칭과 비대칭, 자연의 크기 변화를 저자는 [맨 인 블랙],[스파이더맨],[스타트렉]과 같은 영화와 [걸리버 여행기],[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빌어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려운 대목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넉살 좋고 언제나 여유가 넘치는 저자는 아유, 그래도 되유. 괜찮어유. 이 정도로 끝! 해주니 무지한 나로선 얼마나 고마운지...이를테면 ‘물리학계의 슈가보이, 백주부, 백종원’이라고 할까? 그렇다고 이 책의 모든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한 것은 아니다. 이미 얘기했지 않은가. ‘물리학의 관심과 재미의 정도’가 ‘물리학의 완전 이해’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이 책을 들여다보면 틀림없이 많은 부분은 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 뭐, 어떤가? 인간은 바닷가에 뒹구는 한 조각 모래알처럼 지극히 평범하고 하찮은 존재라지 않은가. 그러니 주눅 들 필요가 없다.
“지구가 있는 곳은 우주에서 전혀 특별한 장소가 아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이 엄청난 사실을 제일 먼저 간파한 사람이었다. 그 후로 천문학에서 새로운 사실이 발견될 때마다 인간은 점점 더 변방으로 밀려났다. 인간은 우주의 주인은커녕, 바닷가에 뒹구는 한 조각 모래알처럼 지극히 평범하고 하찮은 존재였던 것이다. -141쪽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작은애가 조만간 학교에서 기말고사를 친다. 요며칠 과학공부를 하는데 시험범위에 ‘우리 생활과 물질/물체와 물질’이 있는 게 아닌가. 3학년이 되어 과학을 처음 배우는 아이에게 물체와 물질이 무엇인지, 물질의 성질과 상태의 차이는 어려운 개념일수도 있다. 다만 아이의 공부하는 모습을 보니 ‘엄마는 물질과 반물질, 대칭과 비대칭에서 헤매는데 아들은 물질과 물체 속에서 방황하는구나’ 싶어서 괜시리 웃음이 나왔다. 아들아. 까짓거, 쉽게 생각해. 우리는 우주를 개척하는 탐험대가 아니라 관광객이야. 재밌고 즐겨보자구.
백미러를 통해 보이는 우주는 실제보다 가까이 있으며, 그로부터 이 세계의 모든 차이점이 발생한다. 그러나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굳이 뒤를 돌아볼 필요는 없다. 지금 우리는 우주관광을 떠나기 위해 출발지에 모인 관광객들이다. - 23쪽. 머리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