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 남자
칼요한 발그렌 지음, 최세진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판타지 동화는 대개 주인공이 고립된 목숨이다. 고립된 목숨들은 그 나름의 '간절한 바람'을 가지고 산다. - <판타지 동화세계(이재복, 사계절)> 중에서.

 

예전에 아동문학을 공부하면서 읽은 <판타지 동화세계>에 따르면 판타지 세계는 현실에서 온갖 고난과 역경을 겪고 철저하게 고립된 존재, 그런 인물만이 들어갈 수 있고 판타지 공간에서 구원자의 도움을 받아 어려움과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극복하는 일종의 통과의례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단,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이루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 있는 인물일 것. 전제조건이 있긴 하지만 소외되고 고독한 아이가 판타지 세계를 거치면서 내면의 힘을 길러 한층 성장하는 이야기는 그것만으로도 매력적이다. 판타지가 아이들 동화뿐만 아니라 옛이야기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무슨 일이 있어도 꿈과 희망을 잃지 말라는 용기를 주기 위해서 말이다.

 

칼요한 발그렌의 소설 <인어 남자>도 그런 종류가 아닐까 했다. 현실에서 부모의 보살핌이나 사랑을 받기는커녕 도리어 온갖 핍박과 슬픔과 괴로움을 받는 아이가 우연한 기회에 인어들의 세계로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모험의 환상이 어우러진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결과는? 절반만 맞췄다고 해야 될까?

 

이야기는 1983년 스웨덴 팔켄베리의 변두리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다. 한 소녀가 무언가를 찾아 전력질주하고 있다. 소녀의 이름은 넬라. 넬라가 찾고 있는 것은 바로 남동생 로베르트. 아이들은 가난한데다 시력이상으로 안경을 쓰고 체격까지 작은 로베르트를 수시로 괴롭혔는데 그때마다 동생을 구해주는 건 전과를 줄줄이 달고 교도소에 수감 중인 아빠도, 술에 빠져 사는 엄마도 아니었다. 오로지 누나인 넬라 뿐이었다. 그런데 학교의 일진 패거리들이 동생 로베르트를 끌고 가 버린 것. 이유는 일진의 두목격인 예라르드가 예전에 아기고양이에게 기름을 붓고 불을 붙여서 죽이는 장면을 넬라가 목격했는데 그것을 학교에 고자질했다는 것이다.

 

녀석들이 동생을 죽이려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녀석들이 동생을 죽이려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19쪽.

 

예라르드 무리는 동생을 구하기 위해 숲으로 온 넬라를 잔혹하게 괴롭힌 것도 모자라서 돈을 요구한다. 남은 학기동안 로베르트를 건드리지 않는 조건이라면서. 로베르트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넬라로서는 아무리 큰돈이라 할지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다는 것. 나라에서 아동수당과 복지수당이 나왔지만 이미 엄마가 술로 날려버린 상태였기 때문에 넬라는 상점에서 물건을 훔치기로 마음먹는다. 도둑질을 할 때마다 넬라가 자신 안에서 아빠를 느끼고 아빠와 자신이 비슷한 사람일 거라고 여기는 대목은 정말 안타까웠다. 발각될 경우 경찰에 잡혀간다는 걸 알면서도 넬라가 물건을 훔쳐서 주지만 후안무치한 예라르드는 오히려 더 큰 돈을 요구한다. 넬라는 답답한 마음에 친구 토뮈와 얘기를 하기 위해 어부의 오두막으로 찾아가는데 바로 거기에 ‘그것’이 있었다. 동물이면서 동시에 인간인 존재, 인어가...

 

눈동자는 크고 새까맸고, 눈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생물의 시선은 인간 그 자체였다. 그 생물이 나를 관찰하고 있으며 내가 누구인지 궁금해한다는 게 느껴졌다. -127쪽.

 

소설 초반, 넬라와 로베르트는 말한다. 누군가가 와서 자신들을 구해줄 거라고. 로베르트는 그 누군가가 아빠일 거라고 믿지만 넬라는 결코 아빠가 아니라고, 아빠는 믿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길이 없는 벼랑 끝으로 내몰린 상황에서 맞닥뜨린 낯선 존재, 인어 남자. 그의 등장으로 인해 작은 마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리고 넬라와 로베르트에게 인어남자는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인어 남자>가 저자인 칼요한 발그렌과의 첫만남이다. 판타지 동화와 닮은 듯 닮지 않은 이야기는 정말 매력적이어서 몰입감 있게 빠져든다. 스웨덴 최고의 문학상으로 통하는 아우구스투스상을 수상한 그의 작품 <가면>도 조만간 꼭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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