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동주
안소영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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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1940. 11. 20

 

 

학창시절 수업시간을 통해 윤동주의 <서시>와 <별 헤는 밤>을 배웠다. 당시의 우리들은 윤동주가 시인이자 독립 운동가였고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역사적 사실보다 윤동주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글에 빠져들었다. 반 친구들의 대다수가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의 <별 헤는 밤>을 외웠고 나를 포함한 일부는 <서시>에 매료되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한다는 게 어떤 마음일지,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라고 읊을 수 있었던 시인의 감성을 철없는 마음에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시인 동주>.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윤동주의 삶을 소설로 풀어낸 작품이다. 1938년 3월 23일. 스물두 살 동갑내기에 사촌간인 윤동주와 송몽규가 연희전문학교 입학시험을 치르기 위해 북간도 용정에서 경성에 도착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입학시험에 합격한 동주와 몽규는 연희전문학교의 신입생으로서의 생활을 보여주는데 우리말 연구자인 최현배 교수의 우리말 수업을 통해 당시의 조선어교육이 어떠했는지 확연히 드러난다. 일본경찰이 학교 안까지 들어와서 교수들을 수시로 연행해갈 뿐만 아니라 전쟁의 기운이 만주까지 번져가는 소용돌이 속에서 동주의 가슴에 서서히 그늘이 드리우게 된다.

 

식민지 조선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인들조차 전쟁준비에 생활을 위협받고 있다. 이러한 때 일개 젊은이가, 더구나 식민의 땅에서 태어나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처지로 앞날을 그려보고 계획해 보는 것이 무슨 소용 있을까. 무사히 공부를 마치고 세상에 나아가, 가족을 거느리고 살아갈 꿈을 꾸어도 되는 걸까. 어느 순간 자신들의 삶이 거대한 삶으로 송두리째 떠져, 다른 곳으로 휙 던져지거나 파묻히는 것은 아닐까. - 75쪽.

 

동주와 몽규는 동갑내기여서인지 여러모로 비교가 됐다. 외모도, 성격도, 학창시절 성적도 항상 몽규가 앞서 나갔다. 신춘문예도 몽규가 먼저 당선되어 한동안 동주는 마음이 복잡했지만 독립운동으로 체포되어 갇혔던 몽규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계기로 동주는 몽규를 더 이상 부러움이 아닌 문학을 함께 하는 벗이자 동지로서 대하게 된다. 하지만 중일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조선의 삶은 더욱 척박해진다.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자신이 무엇을 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는 두려움과 무기력함에 동주는 한때나마 시 쓰기를 멈추기에 이른다.

 

이후 졸업을 앞두고 동주는 몽규와 함께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하지만 오랜 전쟁으로 인해 대학에서는 조선에서 온 학생들을 감시하고 그런 차에 동주는 특별고등경찰에 끌려가서 모진 매질과 고문을 받는다. 그리고 당시 일본군이 중국군이나 조선독립군 포로를 대상으로 자행하던 생체실험까지 당하고 1945년 2월 16일 끝내 눈을 감고 마는데...

 

동주의 장례가 있던 그다음 날, 몽규도 후쿠오카 형무소 독방에서 세상을 떠났다. 동주가 떠난 지 이십 일이 채 못 된 3월 7일이었다. 사촌 형제이자 벗이었던 두 사람은, 태어난 해도 떠난 해도 같았다. - 303쪽.

 

‘이토록 염치없는 시대, 윤동주를 다시 읽는다는 것’ 띠지에 적힌 문구이다. 사실 윤동주의 시 몇 편이 그에 대해 아는 전부였는데 <시인 동주>를 통해 윤동주의 청년 시절의 삶을 만날 수 있었다.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하던 시기, 우리의 말과 글과 이름을 쓸 수 없었던 그 암울한 시기를 살았던 그의 삶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니 시 한 편, 한 편을 어떤 심정으로 써내려갔을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급변하고 갈수록 삶이 팍팍하게 느껴지는 요즘, 우리가 윤동주를 다시 읽어야하는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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