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의 분실물센터
브룩 데이비스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엄마는 도서관 휴게실에 저를 앉혀둔 뒤, 잠깐만 앉아 있으라고 했어요. 책 좀 빌려 오겠다면서요. 그런 뒤 제 손에 껌 한 통을 쥐여줬어요. 심심하면 이거 씹으면서 놀고 있으라고. 

 

김애란의 소설 <침이 고인다>의 한 대목이다. 도서관에 아이를 데려다놓고 엄마는 돌아섰다. 아이는 엄마가 건넨 껌을 단물이 다 빠질 때까지 씹으면서 기다렸지만 엄마는 끝내 오지 않았다. 후배가 나직하게 건네는 이야기를 들으며 주인공은 생각한다. ‘대체 아이를 시장이나 기차역이 아닌 도서관에 버리는 엄마가 어디 있단 말인가?’ <밀리의 분실물센터>를 읽으며 나 역시 이런 의문이 들었다. ‘대체 아이를 여성 속옷 매장에 버리는 엄마가 어디 있지?’

 

소설의 주인공은 밀리. 일곱 살 소녀다. 이것만 보면 특별한 것이 없다. 하지만 밀리에겐 여느 일곱 살 소녀와 다른 점이 있다. 목격한 죽음을 기록한다는 것. 제일 처음이 키우던 개 람보였고 두 번째가 길을 건너는 노인이었다. 밀리는 이내 모든 것이 죽어간다는 걸 알아차리고 ‘죽은 것들의 기록장’에 하나씩 적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스물여덟번째에 ‘우리 아빠’라고 써 넣는다. 이후 밀리는 엄마와 함께 백화점에 갔다가 속옷매장에 남겨진다. 기다리라고, 금방 온다고 했던 엄마는 돌아오지 않고 사라져버린다. 이것을 알 리 없는 밀리는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리다가 두 사람을 만난다.

 

먼저 나무껍질 같은 얼굴의 칼.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다. 아내와의 기억, 추억을 잃고 싶지 않은 칼은 아내의 장례식조차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자신이 말하는 전부를 손가락으로 타이핑하는 ‘터치 타이피스트’ 칼은 한밤에 요양원에서 탈출한다. 밀리네 집 길건너에 사는 애거서. 그녀는 남편을 잃고 집안에 틀어박힌다. 자그마치 7년간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창으로 밖을 내다보면서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심지어 새들에게도 크게 호통을 치며 일상을 보낸다.

 

아빠는 암으로 잃고 이어 엄마마저 자신을 버리고 달아난 밀리는 팔십대의 두 노인 칼과 애거서와 함께 엄마를 찾아 길을 떠난다. 그런데 그들이 나이도, 성별도 다르고 어떤 혈연관계나 이해관계도 없다면? 거기다 각자 성격마저 평범하지 않은 ‘독특함’을 지닌 이들이라면? 그들의 여정이 결코 평탄하지 않으리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 아닐까?

 

밀리와 칼, 애거서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듯 이어지는 이야기에 초반엔 다소 산만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주요 등장인물들이 모두 전면에 나선 이후부터는 그들의 동선을 따라서, 그들이 벌이는 한판 대소동을 지켜보는 사이에 어느새 소설은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떨칠 수 없었던 것이 있었다. 밀리에게 있어 죽음은 무엇이었을까.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것, 상실의 경험은 정녕 그 어떤 것으로도 치유되지 않는 것인가. 책장을 덮는 순간에도 밀리가 엄마에게, 칼이 아내에게 건네려던 “나 여기 있어!”란 말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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