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아닌 시간, 홋카이도 In the Blue 17
문지혁 글.사진 / 쉼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내가 태어난 곳은 눈이 많은 고장이라고 한다. 어떤 날은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아침에 문을 열기가 힘들 정도였다고 하는데. 아주 어렸을 때, 최초의 기억 이전의 일을 가족에게서 들은 거라 솔직히 실감나지 않는다. 지금은 그저 올해는 눈을 볼 수 있으려나? 은근히 바랄 뿐이다.

 

눈이 내리고 있다. 길가에도 건물에도 하얗게 눈이 쌓여있고 그 사이로 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어떤 책이든 표지에선 나지막한 소리나 음악이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데 <혼자가 아닌 시간, 홋카이도> 이 책에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일상의 소리조차 고요한 적막 속에 잠겨버린 듯하다. ‘홋카이도’ 어떤 곳일까. 이곳은.

 

“아빠, 바다는 왜 파래?” “바다는 하늘의 거울이거든”

언뜻 이 광고가 떠올랐다. 홋카이도는 막연하게 일본에서도 북쪽, 눈이 많은 ‘설국’의 이미지가 강했는데 표지를 지나 책장을 몇 장 넘기자 전혀 의외의 모습이 드러났다. 푸른 바다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곳이구나 싶었다.

 

책에는 홋카이도의 세 도시가 소개되어 있다. 가장 먼저 오타루. 일본 원주민인 아이누족의 언어에서 유래되었다는 ‘오타루’는 운하의 도시로 불린다고 한다. 19세기 말부터 항만의 도시, 산업과 무역의 도시로 불리다가 21세기를 앞두고 관광 중심지로 오타루의 역할은 바뀌었다. 예전의 분주함은 덜하지만 오타루의 아름다움은 퇴색되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증기시계는 도시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여행자들에게 시간을 알려주고 오르골당에서는 동화의 한 장면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영화 [러브레터]. “오겡키데스까~” “와타시와 겡기데쓰” 영화 속 여주인공이 설원에서 오열하듯 외치던 대사가 한때 유행어가 되다시피 했는데 그 영화의 배경도 이 곳, 오타루였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외국을 여행하는 것과 비슷하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을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나라에 도착한다. - 본문 중에서

 

오타루가 낭만과 추억이 가득한 도시라면 삿포로는 ‘바쁘고 분주하면서도 단정한 비지니스맨’ 같은 느낌을 준다. 철저한 계획하에 도시화가 진행되어 도로여건이 상당히 좋아서 그만큼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삿포로의 미소라멘은 일본의 3대 라멘 중 하나로 손꼽히는데 돼지 뼈 육수와 미소된장으로 맛을 낸다고 하는데 내 취향은 아니다. 하지만 라면골목 ‘라멘요코초’에선 분명 내 입맛에 꼭 맞는 라면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 하코다테는 ‘에키벤’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철도역에서 파는 도시락은 그 지역의 특산물로 만드는 경우가 많아서 ‘에키벤’을 위해 여행하는 마니아가 있을 정도란다. 그러고보니 [에키벤]이란 만화가 있던데 기회가 되면 한 번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코다테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청명한 하늘이 단 15분 만에 회백색으로 변해버린 도시의 모습과 하코다테산 정상의 비석 옆에 있던 눈사람 모자의 모습이었다. 눈, 눈, 눈. 사진은 온통 눈투성이었지만 그 풍경이 결코 쓸쓸하다거나 외롭게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그 공간 속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갈까 궁금해졌다.

 

저녁을 지나 밤이 되면 이 도시는 우리를 압도하지도 윽박지르지도 않은 채 그저 나지막이 속삭인다. 숨겨진 밤의 이야기들을 한 번 들어보지 않겠냐고. 우리는 너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 269쪽.

 

번짐시리즈는 항상 출간하자마자 읽었다. 하지만 이번 <홋카이도>만은 책 읽는 시기를 한껏 늦추었다. 무르익은 가을보다 스산한 찬바람이 이는 초겨울에 홋카이도를 만나고 싶어서였다. 그러면 느낌이 배가되지 않을까 했는데 적중했다. 겨울의 홋카이도를 만나고 싶은 후유증이 생길 거라는 건 예상 밖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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