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와 결혼해 주세요
히구치 타쿠지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제목 참 얄궂다. 내 아내와 결혼해달라니? 이 남자, 제 정신 맞나? 자초지종은 모르겠지만 암튼 심보, 한 번 고약하네.

 

 

<내 아내와 결혼해주세요>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멀쩡하게 잘 있는 자신의 아내를 다른 남자와 결혼시키려 하다니... 아니, 밝은 한낮의 거리를 눈을 감은 채 한가로이 거니는 책표지를 보니 이 사람, 아내를 족쇄라고 여기나? 예전에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를 읽으면서 남자들의 심리가 참 얄궂다는 생각을 했는데 <내 아내와 결혼해주세요> 이것도 만만찮다. 첫인상만 따지고 보자면 이 책은 분명 꽝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뭔가 있지 않을까란 궁금증이 비집고 올라왔다. 그래. 분명, 뭔가가 있을 것이야. 그렇지 않다면야... 이 남자, 정상이 아니지...

 

 

소설의 주인공은 일본 예능방송을 주름잡는 베테랑 방송작가 미무라 슈지. 방송 관계자들이 모두 감탄할 수 있는 프로그램, 단 한 명의 시청자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 만드는 일에만 전력을 다했다. 그것도 무려 22년간이나.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느닷없는 경고 사인이 켜진다. 그가 췌장암 말기, 그것도 6개월 시한부 생명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가 20년간 기획과 대본을 집필해온 프로그램마저 다음 봄철 개편을 기약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는데 그때까지 남은 기한이 공교롭게도 6개월.

 

 

순식간에 일과 가정, 양쪽에서 벼랑 끝으로 내몰리지만 그는 괜히 베테랑이 아니었다. 기존의 프로그램에서 절묘하게 변화를 준 포맷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절벽으로 내몰린 상황에서 급반전을 꾀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숙제가 남았으니. 아내 아야코와 아들 요이치로에게 자신의 병에 관해 어떻게 털어놓을 것인가 하는 거였다.

 

 

테이블 위에 아이디어 수첩을 펼치고, 만년필로 먼저 ‘앞으로 남은 6개월을 어떻게 살 것인가 기획’이라고 적어 보았다.

대개는 남은 시간을 가족과 지내며 간병 속에서 죽어 간다. 내가 생각하는 건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사라지고 난 후에 아내와 아들이 웃을 수 있는 기획이다. 그게 어떤 기획인지는 아직 전혀 알 수가 없다. 상당히 힘든 숙제다. -32~33쪽.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슈지. 도무지 해결책이 나올 것 같지 않자 그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에서, 새로운 방송 프로그램 기획안을 세우듯 하나하나 점검하고 계획을 세워나간다. 자신이 없어도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아내를 결혼시켜야겠다고. 급기야 결혼상담소를 통해 아내 몰래 아내의 결혼 활동에 돌입하게 되는데...

 

 

“한 가지 물어봐도 돼요? 왜 아내의 결혼상대를 찾으려는 거죠?”

“그건.”

“그건?”

“좋은 가족이기 때문에, 내가 없어져도 끝내고 싶지 않아요. 좋은 프로그램은 사회자가 바뀌어도 계속되잖아요.” - 190쪽.

 

 

자석에 이끌리듯 만남을 거듭하던 남녀가 사랑에 빠져서 결혼하고 그렇게 함께 한 세월이 있기에 어느 한 쪽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 그것도 마지막 순간이 예정된 이의 마음이 어떠할지는 솔직히 상상하는 것조차 힘겹다. 그래서 한정된 시간까지 가족과 함께 할 시간, 추억 쌓기를 하기보다 남은 가족의 행복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슈지의 모습이, 그 간절함 때문에 몇 배나 더 안타깝게 다가왔다.

 

 

기적은 없었다. 마지막이 예정된 삶이었기에 슈지는 그 길을 걸어갔다. 미무라 슈지 기획 ‘아내의 결혼활동’이 갑작스런 돌발상황에 의해 처음의 계획대로 진행되지는 않았지만...슈지와 아야코. 그리고 그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의 도움으로 멋진, 만족할만한 마무리를 짓는다.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남편과 아내, 가족의 이야기이기에 이것만으로도 소설은 감동적이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보는 듯 톡톡 튀는 유머도 눈길을 끈다. 그렇다고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결말이 어떠하리라는 거, 이야기가 어떻게 어떤 수순으로 흘러가리라는 걸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저자가 어디쯤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고 있을 거란 것도. 하지만 그러면 뭐하겠는가? 어느 틈엔가 함정 깊숙이 빠져서 훌쩍훌쩍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통속적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 밉지 않다. 이 책 덕분에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모처럼 감성에 솔직해질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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