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의 땅 - 개정판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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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이 되어 겨우 두 장 남은 달력을 보면서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졌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세웠던 계획들. ‘하나, 조정래의 대하소설을 읽고’. ‘둘, 어떤 작품이든 필사를 하겠다’. 그런데 그것을 올해도 지키지 못했다는, 어쩌면 남은 기간 동안에도 해내지 못할 거라는 초조함과 불안함이 일었다. 도대체 한 해 동안 뭘 한 거지 자괴감마저 들려고 할 때, 조정래의 작품을 만났다. 바로 <유형의 땅>이다.


책에는 [사약] [장님 외줄타기] [자연 공부] [껍질의 삶] [길이 다른 강] [모래탑] [사랑의 벼랑] [유형의 땅] 이렇게 총 여덟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1979년부터 1981년까지 발표된 작품들이다. 즉, 작품 발표 이후로 최소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건데. 80년을 전후로 해서 당시에 벌어진 사건, 사회적 문제, 이슈를 바탕으로 사람들이 깊이 고민해야 할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불구하고 지금의 삶, 일상과 별로 차이가 없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몇 배로 불어나고 삶의 질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30년 전이나 21세기인 지금이나 세월의 간극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다. 나라가 아무리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했다 하더라도 그 이면에는 언제나 힘겹고 고통스런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제일 먼저 소개되어 있는 [사약]에서는 회사를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일에 매달린 끝에 병을 얻어 결국 죽음에 이르는 석호를 보면서 안타까움에 화가 났다. 영문학자가 되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불철주야 그렇게 뛰었는데, 미처 꿈을 이루기도 전에 생을 다하다니. 대부분의 직장인들, 특히 중년의 가장들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이 흡연과 잦은 음주, 스트레스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가장(家長), 아버지이기에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 얼마나 무거운지도. [자연공부]에서는 힘든 머슴살이를 팽개치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끝에 성공을 이룬 아버지는 어느 날 가족과 함께 오래전에 떠나온 고향으로 향한다. 농촌의 풍경과 아름다운 풍경을 자식들이 직접 보여주려고 하지만 공업화, 산업화가 진행된 고향은 더 이상 그 옛날의 모습이 아니었다.


인상적인 작품은 역시 표제작인 [유형의 땅]이었다. 부자가 되라는 의미에서 ‘천만석’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지만 이름과 전혀 반대의 삶을 살아가는 만석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다. 반상의 구별 때문에 양반에게 천대를 받던 만석은 공산당원이 되자 그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양반가문에게 철저하게 복수를 하는데 어느 날 아내가 외도하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살인자, 도망자가 되어 평생 타향으로 떠도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불놀이>를 비롯해서 <대장경> <상실의 풍경> <비탈진 음지> <외면하는 벽>에 이르기까지 최근 몇 년 사이에 출간된 조정래의 작품들을 꾸준히 만났다. 작품 하나하나마다 주인공이 다르고 배경도 달랐지만 그 속에는 우리의 역사가 담겨 있었다. 특히 격정의 세월이라 일컫는 우리의 근현대사와 가난한 민초들의 힘겨운 삶을 보면서 어쩌면 이렇게도 안 풀릴까, 참 마음이 불편했다. 그렇다고 결코 외면해서도 안 되는 가슴 아픈 역사. 언제쯤이면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희망을 얘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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