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 잔혹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김봉석의 하드보일드 소설 탐험 1
김봉석 지음 / 예담 / 201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기와라 히로시. 그가 처음이었다. 몇 년 전 그의 소설 <하드보일드 에그>를 앞에 놓고 불쑥 내 뱉은 말, “대체 ‘하드보일드’가 뭐야?” “계란을 완숙하다...그럼 ‘하드보일드 에그’는 ‘완숙 계란’? 참 요상한 제목이로세”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 때문에 한참 고민했는데 ‘하드보일드(Hardboiled)’는 쉽게 말해서 ‘비정. 냉혹’이란 뜻의 문학용어로, 비정하고 냉혹한 현실에도 감상에 빠지지 않는 것을 나타낸다고 한다.


‘김봉석의 하드보일드 소설 탐험’이란 부제의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를 보면서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하드보일드 에그>의 주인공이 사춘기 때 읽은 챈들로의 소설 속 인물, 필립 말로에 반해서 자신도 고독과 차가운 이성이 돋보이는 탐정이 되고자 했던 것처럼 이 책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에는 또 어떤 인물들을 만나게 될까 기대가 됐다.


‘시작은 홈즈와 뤼팽이었다’고 저자는 자신이 하드보일드의 세계를 접하게 된 때를 이야기한다. 홈즈와 뤼팽 다음으로 아가사 크리스티, 엘러리 퀸. 뒤이어 미스터리와 스릴러, 환상과 SF문학에 빠져들게 되었다는 일련의 과정이 나와 유사한 대목이 많아서 놀라우면서도 반가웠다. 다만 저자가 충격적이면서도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전환점이 된 작품으로 말론 브란도와 알 파치노, 로버트 드니로의 출연으로 3대에 걸친 마피아 가문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대부>를 꼽았는데 난 그다지 깊게 와 닿지 않았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랄까.


세상의 수많은 부조리에 절망하여 타협하거나 포기하기보다 오히려 그에 맞서기 위해 뼛속 깊이 고독과 냉혹한 이성으로 무장한 이들이 등장하는 하드보일드 소설을 저자는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세상은 아름답고 평화롭지만 그에 못지않게 악인 역시 존재하며 평범한 일상 가운데 벌어지는 갖가지 범죄에 대한 작품들(요시다 슈이치의 <악인>,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 마이클 코넬리의 <유골의 도시>, 미야베 미유키의 <이름 없는 독>...)을 시작으로 참혹한 세상에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평범한 사람이 범죄자, 악인이 되어가는 소설(데니스 루헤인의 <비를 바라는 기도>, 로렌스 블록의 <무덤으로 향하다>, 하세 세이슈의 <불야성>...) 치열한 적자생존, 약육강식이 횡횡하는 사회 속에서 교육의 진정한 가치가 송두리째 흔들리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사쿠라바 가즈키의 <아카쿠치바 전설>, 후루카와 히데오의 <벨카, 짖고 있는가>, 마쓰모토 세이초의 <짐승의 길>, 기시 유스케의 <악의 교전>...), 비정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야 할 것들,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이들의 이야기(제프리 디버의 <본 콜렉터>, 로버트 크레이스의 <워치맨>, 리 차일드의 <추적자>...), 시스템이란 거대한 조직에 매몰되지 않고 과감한 결단을 내린 이들의 이야기(이사카 코타로의 <골든 슬럼버>, 가키네 료스케의 <와일드 소울>, 가이도 다케루의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 등 총 38편의 소설이 소개되어 있다.


문화평론가이자 영화평론가인 저자가 전하는 하드보일드 소설 속 사회와 주인공을 비롯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러 면에서 우리 사회와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38편의 소설 중에서 내가 읽은 책은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에 읽지 않은 책은 전적으로 저자의 이야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그의 생각과 의견이 곧 나의 생각과 의견처럼 되어 버릴 수 있는 위험성이 잠재되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저자가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 그것은 각각의 소설과 내용, 그에 대한 자신의 해석이 아니라 비정하고 불합리하고 공평하지 못한 이 세상, 사회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라는 게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