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닉 -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마음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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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배명훈을 만났다. 모든 국민이 초고층빌딩에 산다고 설정하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담은 작품 <타워>는 출간 때부터 호기심을 자극했다. 읽어봐야지 하는 마음이 어떤 일을 계기로 순간 멈칫, 하고 말았는데 특이하게도 그 작품에 대한 지인들의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린다는 점이었다. 읽어? 말어? 왜 이렇게 평이 다르지? 그 이유는 알아야 되지 않겠어?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2012년. 드디어 그의 또 다른 작품이 출간됐다. <은닉>. 간단하면서도 뭔가 거대한 것을 숨겨놓은 듯한 제목과 표지는 단박에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번엔, 지난번과는 달라야해. 기필코. 어느 누구의 의견에도 흔들리지 않을테다. 아니, 그런 찬스도 주지 않겠어. 서슴없이 책으로 손을 뻗었다. 너, 대체 뭐지? 그 뒤에 뭘 감추고 있는 거야?


‘11년을 일하면 1년은 휴가다’로 시작된 소설의 주인공인 ‘나’의 직업은 ‘킬러’다. 명령에 의해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 그에게는 노동일 뿐. 감정이란 없다. 해서 그는 자신은 연방이란 조직, 그림자의 도구라고 여긴다. 11년간 연방의 도구로서 시커먼 사람이 되어 일한 그는 1년의 휴가를 맞았다. 호출도, 명령도 없는 동안 그는 보통 사람처럼, 하얀 사람이 되어 평범하게 지낸다. 그런 어느 날 누군가가 그를 찾아온다. 호출이 아니라 무언가를 보고 오라는 것. 그러면서 한 장의 연극티켓을 내민다. <랑페의 결백>.


무엇을 찾아야 할지, 누구를 만나야할지도 모르는 가운데 <랑페의 결백>이라는 연극을 보게 된다. 그는 다시 시커먼 사람이 되어 탐색을 시작한다. 누굴까. 나의 목표는. 연극에 등장하는 배우? 아니다. 그렇다면 소품인가? 그때 마침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는데. 그건 어디에도 공개되거나 알려지지 않은, 그야말로 소품에 불과한, 시체였다. 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반라의 여인의 죽은 몸. 그런데 놀랍게도 생명이 빠져나간 시체를 연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은경이였다. 의문의 죽음을 당한 연방권력서열 3위인 장무관의 숨겨진 딸. 그녀의 존재 자체가 위협이 되는 상황에서 그녀의 생존사실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사실대로 보고할 것인가? 그렇게 되면 그녀는 쥐도새도 모르게 제거되고 만다. 그에게 있어 경이로움이자 특별한 존재 은경이는. 내내 고민하던 그는 결심하고. 시체를 보았다고 보고한다. 그의 휴가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킬러와 조직, 첩보전, 쫓고 쫓기는 사람들...한 편의 스릴 넘치는 영화 한 편을 본 기분이다. 하지만 느낌이 개운하지가 않다. 뭔가 굉장히 거대하고 많은 것을 한꺼번에 머릿속에 우겨넣은 듯한 기분. 이해되지 않은 상태로 마구 몰아붙여서 억지로 종말을 지은 듯한 느낌이 든다. 재미가 없는 건 아니다. 스피디하게 진행되는 이야기는 책장을 자꾸자꾸 뒤로 넘기게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체 내가 뭘 빼먹은 거지? 무엇을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간거지? 이것조차 종잡을 수가 없다. 이 당황함이란...


문득 <인셉션>이란 영화가 떠오른다. 꿈에서 꿈으로, 다시 꿈으로 몇 번이고 이어지는 나선의 끝에서 영화가 끝났을 때 이게 대체 무슨 얘기지? 꿈이야? 현실이야? 알 수 없어서 영화를 바로 이어서 또 한 번 봤다. 그러고나서야 아하...하고 무릎을 쳤다. <은닉>을 보고난 기분이 바로 그랬다. 연거푸 다시 한 번 봐야 알 것 같은... 그때가서야 난 ‘배명훈을 만.났.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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