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아랑전
조선희 지음, 아이완 그림 / 노블마인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어릴 땐 마냥 동화가 좋았습니다. 착하고 아름다운 공주(소녀)가 고난과 역경을 딛고 잘생긴 왕자를 만나 결혼하여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는 이야기를 부러움 가득한 시선으로 읽었습니다. 착한 이가 악행을 저질러 온 이를 물리친다는 우리 옛이야기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알게 된 동화와 옛이야기의 숨겨진 이야기, 진실은 어릴 적 제가 알던 것이 아니었어요. 유리구두에 발을 맞추기 위해 딸의 발가락과 발뒤꿈치를 서슴없이 자르는 계모가 있는가하면 팥쥐는 콩쥐를 괴롭힌 벌로 젓갈이 되어 버리는, 그 어떤 것보다 잔혹하고 잔인한 이야기에 소스라치게 놀랐는데요.

 

몇 년 전 우연히 <모던 팥쥐전>을 읽을 때도 그랬습니다. 콩쥐팥쥐와 여우누이, 우렁각시, 선녀와 나뭇꾼 같은 옛이야기를 재해석해서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한 것을 보면서 잊고 있던 두려움과 공포를 느낌과 동시에 저자의 뛰어난 상상력에 감탄을 했습니다. ‘작가 조선희’를 인식하는 계기도 되었는데요. 얼마전 ‘작가 조선희’의 새로운 작품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귀가 솔깃해졌습니다. 제목은 <모던 아랑전>. 제목으로 보나 표지의 분위기로 보나 여러모로 <모던 팥쥐전>을 떠올리게 하는 면모에서 단박에 결정했습니다. 읽자. 읽어야겠다.

 

책에는 ‘영혼을 보는 형사’ ‘스미스의 바다를 헤맨 남자’ ‘버들고리에 담긴 소원’ ‘오소리 공주와의 하룻밤’ ‘오래된 전화’ ‘29년 후에 만나요’ 이렇게 여섯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요. 각각의 단편이 시작되기 전에 짤막하게 어떤 옛이야기, 전설을 원형으로 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면. 제목만 봐서는 짐작조차 불가능합니다.

 

이를테면 ‘영혼을 보는 형사’. 본문에는 이것이 ‘장화홍련전’을 모티브로 했다는 걸 밝혀 놓았지만 책을 읽다보면 그것이 전부가 아니란 걸 알 수 있습니다. 무언가 또 다른 것이 있다는 말이죠. 10년을 간격으로 개봉하는 영화의 주인공을 했던 배우는 모두 주목을 받는데 그 이유가 놀랍게도 주인공을 했던 이가 이후 3년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는 거였습니다. 그렇게 세 편의 영화가 제작되고 네 번째 시리즈에 평범한 청년이 주인공으로 발탁되는데요. 놀라운 건 말을 더듬던 청년이 신기하게도 카메라가 돌아가면 술술 대사를 읊어댄다는 겁니다. 마치 청년 안에 또 다른 인물이 깃들어서 그가 연기를 하는 것처럼. ‘심청전’이 원형이라는 ‘버들고리에 담긴 소원’에서는 세 명의 소녀가 등장하는데요. 친구로 지내던 세 명의 소녀는 자신의 소원을 버들고리 바구니에 넣어 연못에 빠트립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소원을 적어야 하고 소원을 적은 세 명 중 한 사람이 죽어야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걸 알지만 소녀들은 멈추지 않습니다. 어차피 사람들은 언젠가 죽을텐데...그때 남은 두 명은 소원을 이룰 수 있으니 상관없다는 식인 거지요. 이후 실제로 한 명의 소녀가 죽습니다. 그러자 남은 두 명은 공포와 두려움에 떨면서도 한편으로 자신의 소원이 이뤄질거라 기대를 합니다. 그러나....

 

옛이야기의 어디서, 어떤 대목에서 이 이야기의 씨앗이 싹트게 됐을까...처음엔 나름 짐작하면서 읽었지만 그것 역시 점차 잊게 되더군요. 그만큼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문의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는 그림이 공포스런 분위기를 한껏 살려서인지 책 읽는 도중에 수시로 소름이 돋았구요. 잠자던 중에 화장실을 찾았다가 무심코 거울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하는 후유증을 겪기도 했지만 극심한 폭염 속에 잠시나마 더위를 잊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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