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맷하시겠습니까? - 꿈꿀 수 없는 사회에 대한 여덟 가지 이야기
김미월.김사과.김애란.손아람.손홍규.염승숙.조해진.최진영 지음, 민족문학연구소 기획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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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둘째를 낳고 장만한 컴퓨터는 툭하면 말썽을 일으켰다. 갑자기 멈추는가 하면 인터넷이 꺼지고. 지난달엔 아예 전원조차 들어오지 않고 먹통이 되어 버렸다. 사람으로 치면 환갑진갑 다 지난 셈이라 이번 기회에 새 컴퓨터를 장만하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본체에 모니터의 전원까지 고장이 난 컴퓨터를 들고 아침 일찍 서비스센터를 찾았다. 문제의 그 날 부품 교체를 설명하던 직원이 말했다. “포맷하시겠습니까?”라고.


“포맷하시겠습니까?”라는 말이 부품을 교체해봐야 금방 또 고장날텐데 뭐하러 애써서 수리하느냐. 그냥 새 컴퓨터를 장만하라는 의미인 줄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난 ‘포맷’이란 말을 순진하게, 단순하게, 좋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포맷하면 상황이 개선될 거라고. 실상은 그렇지 않은, 임시방편에 불과할지라도 말이다.


‘꿈꿀 수 없는 사회에 대한 여덟 가지 이야기’라는 부제의 <포맷하시겠습니까?>란 책을 앞에 두고 내 낡은 컴퓨터가 떠올랐다. 지금의 상황이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을 만큼 악화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조차 힘겨워서 ‘인생도 컴퓨터처럼 포맷이란 걸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 삶이, 현실이 아이들의 판타지 동화가 아닌 이상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기에 언제나 현재의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돌파구를 찾기 위해 내내 고심했다. 책은 바로 그런 이들, 현재의 상황을 벗어나고 개선하기 위해 고심하는 인물들을 이야기한다.


‘죽일까. 말까’ 다소 섬뜩한 말로 시작한 김미월의 [질문들]은 등단을 꿈꾸는 소설가 지망생이 등장한다. 거리에서 앙케트 조사 요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근근이 생계를 꾸려가는 ‘나’는 결혼하는 오빠의 방 보증금을 빌려달라는 말에 차마 거절하지 못한다. 정작 중요한 자신의 미래는 ‘죽일까. 말까’ 망설이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 무엇 하나 정해진 것 없이 불안한 상태이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을 진심으로 알아주지 않는다. 질문을 가장한 강요과 명령만이 있을 뿐. 김애란의 [큐티클]에서 주인공은 매끄럽게 다듬어진 손톱을 열망한다. 친하지는 않지만 약간의 경쟁심을 느끼는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주인공은 애써 ‘표나지 않게’ 멋을 낸다. 거기에 보드랍고 매끈하게 다듬어진 손톱은 화룡점정으로 꼭 필요하다고 여긴 그녀는 생전 처음으로 네일 샵을 찾는다. 하지만 현실은 세련되고 당당한 커리어우먼을 꿈꾸는 그녀의 의도에 부응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어긋날 뿐. 그런가하면 염승숙의 [완전한 불면]에서 사람들은 잠을 위해 대가를 지불한다. 최상, 상, 중, 하 네 단계로 나누어진 것 중에서 최상급의 잠을 자려면 그만큼 돈을 지불해야 하지만 돈이 없으면 며칠이고 뜬눈으로 밤을 새워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잠을 자지 못하는 이야기는 마치 꿈속을 헤매는 듯 몽환적이면서도 충격적이었다.


책은 이외에도 김사과, 손아람, 손홍규, 조해진, 최진영의 작품까지 총 여덟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서른 즈음의 작가들이 털어놓는 이야기, 그들의 시선에 비치는 사회의 모습은 삭막하고 위태로웠다. 그래서일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도 언제 어떤 미래가 다가올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불안한 모습들이었다. 여덟 편의 단편 모두에 공감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몇 몇 작가와 인상적인 첫 만남을 가질 수 있어서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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