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하는 벽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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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바라볼 때마다 쌓여있는 책들을 볼 때마다 풀지 못한 숙제가 목구멍까지 차오른 듯 답답한 기분이 듭니다. 조정래의 대하역사소설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을 출간하고 한참 지나서 장만해뒀지만 그로부터 또 한참이 지나도록 아직도 만나지 못하고 있다니. 매일 쏟아져 나오는 흥미로운 책, ‘재밌는 책’에 밀려 ‘읽어야 하는 책’은 손에 잡지도 못하는 날이 이어지고 있다 보니 예전에 <태백산맥>을 읽다가 도중에 덮어버린 적이 있는데 무슨 일이 있었어도 그때 완전히 읽었어야 했는데, 후회가 밀려듭니다. 다만 한 가지 위안을 삼을 게 있다면 몇 년 전 <불놀이>를 시작으로 조정래의 작품이 재간되고 있어서 <불놀이>를 비롯해 <대장경>, <상실의 풍경> <비탈진 음지>를 만날 수 있었다는 건데요. 최근 또 한 권의 단편집이 출간됐습니다. 바로 <외면하는 벽>입니다.


<외면하는 벽>을 처음 만났을 때 ‘외면하는 벽’이란 제목이 의미하는 것이 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짙다 못해 칠흑 같은 암흑으로 가득 한 표지는 마치 가위눌린 것처럼 묵직한 무언가에 짓눌리는 느낌... 창문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곳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이 전부일 뿐. 저기로 가야만 이 짓눌림에서 탈출할 것 같은데 아무리 애를 써도 빛에 다가가기보다 자꾸만 뒤로 물러나기를 무한반복 하는 기분을 책 읽는 내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책에는 청년인 조정래가 1977년부터 79년까지 발표한 작품이 여덟 편 수록되어 있는데요. 근대화에 접어든 당시의 사회분위기가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습니다. 제일 처음 수록된 [비둘기]는 추월도라는 정식 명칭보다 백골섬으로 불리는 외딴섬의 바위 속에 파묻힌 지하감옥을 배경으로 하는데요. 사상범으로 몰려 한 줄기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 감옥에 갇힌 남자가 그리운 아내를 만나기 위해 간수의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탈출합니다. 하지만 체력이 떨어진데다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과 졸음이 겹쳐 외딴 움막에서 산비둘기를 안고 쓰러지고 마는데요. 마지막 남자의 싸늘한 주검을 남기고 날아간 비둘기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마법의 손]은 외딴 산골마을에 전기가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요. 전기로 인해 마을의 어둠은 사라졌지만 일부 가정에 텔레비전이 놓이면서 사람들의 일상은 예전과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수시로 옹기종기 모여서 담소를 나누던 이들이 텔레비전 앞으로 모이고 그로 인해 다툼까지 벌어집니다. 그런가하면 [외면하는 벽]은 한 아파트에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 아랫집과 윗집, 옆집은 시체를 곁에 두고 싶지 않다면서 즉각 이의를 제기하고 나섭니다. 초상을 치러야 하는 가족들을 찾아가 가정의례준칙을 거론하면서 ‘곡을 하지 마라’며 제재를 가하는데요. 이웃에 살던 이의 죽음에 사람들의 반응과 심리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이야기에서 요즘 한창 사회문제로 거론되고 있는 ‘고독사’를 떠올렸습니다.


물리적으로는 가까이 존재하지만 심리적으로는 결코 가깝지 않은 이들, 서로가 서로를 외면하고 높은 벽을 쌓아가는 사람들. 그런 이들의 삶을 이야기한 <외면하는 벽>. 놀라운 건 소설은 분명 우리나라의 근대화가 진행되어 개발도상국으로 발돋움하는 때인 70년대 후반을 다루는데 그것이 곧 현재의 이야기더라는 겁니다. 안타까움과 슬픔, 아픔이 한데 어우러져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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