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곶의 찻집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가끔 그럴 때가 있습니다. 너무 속이 상하고 울적하고 화가 나서, 도무지 가만히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때. 저는 무작정 길을 걷곤 합니다.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줄기차게 걷다보면 어느 정도 기분이 가라앉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던 주변 상황이나 모습들도 그제야 조금씩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는데요. 간혹 그러다가 정말 마음에 쏙 드는 카페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너무 작고 아담해서 신경 써서 찾지 않으면 백발백중 그냥 모르고 지나쳐버리게 되는 그런 카페. 여기에 이런 곳이 있었나? 궁금한 마음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커피 한 잔 하고 나오면서 다음에 또 와야지 마음먹게 되는 그런 카페. 하지만 이상하게도 ‘다음’이 없어요. 몇 달이 지나 생각이 나서 찾으려고 하면 거기가 어디였는지 도대체 생각이 나질 않더란 말이지요. 분명 이 근방이었는데...하고 한참을 서성대다 그냥 돌아와버리는. 그러면 전 생각하지요. 그 카페의 문을 여는 순간 틀림없이 마법에 걸려서 환상의 세계로 빠져버린 거라고.


맛있는 커피와 음악 - 카페 ‘곶’ 여기서 좌회전.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남자가 어린 딸과 함께 무지개를 찾아 모험에 나섰습니다. 무지개가 걸려 있던 방향으로 무작정 달려보기로 마음 먹었지요. 한참 해안가를 달리던 그들은 이런 간판을 마주칩니다. [맛있는 커피와 음악 - 카페 ‘곶’ 여기서 좌회전.] 이런 곳에 카페가? 의아해하는 그들에게 하얀 강아지가 다가옵니다. 마치 자신이 길을 안내하겠다는 것처럼. 그렇게 들어선 카페는 테이블이 겨우 두 개뿐인 아담한 가게였습니다. 바다로 향한 커다란 창으로 바다와 하늘과 초원이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에 그만 말문을 잃고 마는데요. 줄곧 조용히 곁을 지키고 있던 초로의 여주인이 말을 건넵니다. “어떤 음악을 좋아하세요?” 뚜렷한 목적 없이 무작정 길을 나선 이에게 특별히 생각나는 음악이 있을리 만무하지요. 하지만 주인은 남자와 아이의 마음을 어쩜 그리도 잘 아는지 그들에게 꼭 맞는, 음악을 들려줍니다. 아일랜드 여성 그룹 켈틱 우먼의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 인간은 살아가면서 소중한 것을 잃기도 하지만 얻기도 한다는 음악은 사랑하는 아내와 엄마를 잃어 실의에 빠진 그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건네줍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다시 봄, 여름.


책은 계절이 여섯 번 바뀌고 그에 따라 여섯 곡의 음악과 사연들로 이뤄진 단편소설집인데요. 각각의 단편에는 제일 처음 수록된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처럼 ‘걸즈 온 더 비치(Girls On The Beach)’ ‘더 프레이어(The Prayer)’ ‘러브 미 텐더(Love Me Tender)’ ‘땡큐 포 더 뮤직(Thank You For The Music)’와 같은 음악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아픔과 상처, 실의에 빠진 이들이 우연히 들른 ‘곶’ 카페에서 ‘맛있어져라...맛있어져라, 행복해져라...행복해져라!’하는 마법의 주문이 더해진 커피와 음악을 듣고 사랑과 용기, 희망을 찾아서 돌아가는데요. 어찌보면 한 편의 짧은 동화 같은 이 소설은 저자가 자신의 고향에 실제로 존재하는 찻집인 ‘무지개 케이프 다방’을 바탕으로 했다고 하는군요. 어떤 곳일까. 정말 궁금해집니다. 그곳이 만약 주변에 있다면. 언제든 기분이 울적할 때 꼭 한 번 가보고 싶어요. 지독한 방향치인 제가 길을 잘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