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시에 매혹되다 - 한시에 담긴 옛 지식인들의 사유와 풍류
김풍기 지음 / 푸르메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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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는 누구냐? 원더걸스?” “아이고, 이모. 몇 번을 말해요. 소녀시대라니까요!”

며칠 전 친정아버지 제사가 있어서 친정에 들렀습니다. 제사음식을 준비하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려니 아이돌이 수시로 등장하더군요. 요즘 연예인들이 예쁘고 늘씬해서 보기엔 좋은데 워낙 서로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구별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더라구요. 사정이 이러하니 그들이 부른 노래는 더욱 심합니다. 아무리 곱씹어도 알 수 없는 의미 없는 낱말들의 연속, 신변잡기 적인 내용. 그건 마치 외국어로 된 노래를 듣는 기분입니다. 이런 걸 세대차이라고 하겠지요.




텔레비전을 잠근 지 6년...불과 6년이란 시간이 이렇게 세대차이를 불러왔으니 오래전 한시는 어느 정도인지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요즘 젊은 청년들의 생활과 감성을 모르고서는 21세기 노래를 알 수 없듯이 몇 백 년 전의 시대상황과 당시 사람들의 감성, 생활, 정서를 노래한 한시를 현대의 저, 더구나 한자도 잘 모르는 제가 제대로 이해하기란 어쩌면 무리일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제가 어느 정도인지 너무나 잘 알지만 그럼에도 한시에 미련이 남았습니다. 학창시절엔 고문시간이 그렇게 싫었는데...참 이상하지요?




한시에 대한 알 수 없는 동경만으로 그동안 동양고전과 한시에 관한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만큼 쉽게 읽히지가 않았어요. 하루에 조금씩 며칠을 읽다가 도중에 그만 덮어둔 책이 몇 권인지 모를 정도입니다. ‘한시에 담긴 옛 지식인들의 사유와 풍류’라는 부제를 한 <옛시에 매혹되다>란 책을 손에 들고서도 고민이 됐습니다. 제가 과연 이 책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저자는 옛시를 ‘고전문학과 풍류’ ‘부채이야기’ ‘차를 마시며’ ‘절의 정신’ ‘문학과 여행’ ‘이별과 문학’ ‘책과 사람’ ‘봄노래’ ‘꽃의 문화사’ ‘질병과 몸’ ‘변방의 노래’ ‘장마의 계절’ ‘비온 뒤의 산을 오르며’ ‘정원 이야기’ ‘대나무 향기 속에서’ ‘은거의 즐거움’ ‘밤비 내리는 소리’ 이렇게 17개의 주제어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는데요. 제일 먼저 풍류에 대한 이야기로 문을 엽니다. ‘풍류’를 외국어로 번역할 때 ‘멋’ ‘결’ ‘고움’ 등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풍류’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우리 고유의 감정이고 개념이라고 말하면서 선조들이 어떤 상황에서 풍류를 노래했으며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전해줍니다. ‘정신의 깊숙한 곳에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풍류’라고요.




부채에 담긴 사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옛날 단오때 부채를 선물했다는 건 알지만 조선의 사신이 청나라를 찾았을 때 무언가 해결해야 할 일이 생기면 부채를 선물했다는 건 처음 알게 됐는데요. 요즘은 선풍기나 에어컨이 있어서 무더운 여름날 부채를 보기 드물지만 그 옛날엔 부채가 대나무를 손질하고 종이를 붙이는 것 이상으로 여러 가지 수공이 가해져서 무척이나 귀한 물건이었다고 합니다. 그러고보니 얼마전 책상 뒤로 떨어진 책을 찾다가 거기서 몇 년 전 다니는 절의 스님께서 손수 만들어 주신 부채를 발견했는데, 귀한 부채를 함부로 다룬 것 같아 갑자기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랑과 이별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노래의 소재였던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고 떠난 이를 아쉬워하는 한시를 만날 수 있었는데요.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바로 연암 박지원의 시였습니다.




우리 형님 얼굴은 누구와 비슷했나

선친 생각날 때마다 형님을 보았었지

이제 형님 생각나면 어디서 뵈올까

의관을 갖춰 입고 냇물에 비춰봐야겠지.(107쪽)




‘그립다’ ‘슬프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이 시에서는 먼저 떠난 아버지와 형님을 그리워하는 박지원의 마음이 오롯이 느껴집니다. 꿈에도 그리운 아버지와 형님을 만나기 위해 의관을 차려입고 냇물에 자신을 비춰보는 연암의 모습이 선하게 떠오릅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결코 잊혀지거나 지워지지 않을 진한 그리움이 배어나왔습니다.




책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절대 이해불가인 정도도 아니었습니다. 저자가 소개해준 한시를 만나고 있으려니 옛사람들에게 있어 한시를 짓는 일은 일상이 아니었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기보다 속으로 잠재워 한시로 조용히 읊으며 다스렸던 옛사람들. 문득 그들의 삶의 자세를 닮아가고 싶어집니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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