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
최성일 지음 / 연암서가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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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이었습니다. 최성일의 <어느 인문학자의 과학책 읽기>를 만났습니다. 지금은 무관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한때 과학도였던 저는 인문학자는 과학책을 어떻게 읽고 이해하는지 궁금했습니다. 학창시절 <코스모스>를 인상 깊게 읽었다는 저자는  우리 일상이 과학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 자신이 읽었던 책을 통해 모색하고 있었는데요. 저자가 본문에서 언급한 책 중에 막상 읽은 건 몇 권 밖에 되지 않지만 저자의 책읽기를 통해 새로운 걸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구요. 좀 더 깊이있는 책읽기, 비판적이고 추론적인 책읽기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책의 저자가 지난 7월, 지병을 앓다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제게 새로운 도전의식을 일깨워준 저자의 죽음에 충격과 놀라움, 안타까움이 밀려왔 습니다. 얼마전에 그의 마지막 책을 만났는데요. 그 어떤 수식어도, 부제도 없이 단 한 줄 <한 권의 책>이란 제목만이 적힌 책을 손에 들었을 때 그 느낌이 여느 때와 달랐습니다. 지금까지 숱하게 많은 책을 읽었고 그 중에 저자가 이미 유명을 달리한 책도 무수히 많았건만 이번과는 달랐습니다. 왠지 모를 설레임과 두려움이 뒤섞인 채 책장을 펼쳤을 때, 제가 만난 건 세상을 떠난 남편을 대신한 아내의 글이었습니다. ‘남편의 유고집이 되고 말았다’는 문구를 보는 순간 왜 그다지도 마음이 아프던지... 남편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쓴 아내의 글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저자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책을 너무 좋아해서 외출을 줄일 정도였다는 것과 자신은 그렇게 책을 좋아했음에도 아이들에게 독서를 강요하지 않는 아버지였다는 것과 지저분한 손으로 책을 볼 수 없어 늘 손을 씻었다니 책을 대하는 저자의 마음가짐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서평이라고 할 수도 없는 서평을 쓰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숱하게 많은 서평집을 읽었습니다. 이름난 저자의 책, 내공이 깊은 그들의 서평을 보면서 저의 글에 무엇이 부족한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고. 그들이 읽었던 책을 나 역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수첩에 길고 긴 목록을 적어 넣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전 어딘가 주눅이 들어 있었지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최성일, 저자의 글은 저를 주눅 들게 하지 않았습니다. 분명 제가 읽지 않은 처음 만나는 책인데도 그의 글의 흐름에 무사히 안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 곰곰 생각해보니 저자의 글에는 독자를 현혹시키는 수식어가 없고 단정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문장도 어렵지 않아서 짧은 글 속에서도 독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의 내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예를 들어 제일 먼저 소개되어 있는 책 <즐거운 불편>은 저자가 ‘11가지 물질과 편리함을 일상하게 멀리하는 실험’에 관한 것인데 이 책을 읽지 않은 저는 예전에 읽었던 <굿바이 쇼핑>을 떠올리며 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고 얼마전에 참가했던 박물관 강좌를 바탕으로 <밤의 일제 침략사>를 이해할 수 있었으며 지인들과의 독서모임에서 <불편해도 괜찮아>라는 책으로 인권에 관해 열띤 토론을 했기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시민불복종>이란 책이 낯설게 다가오지 않았답니다.




처음 만난 책인데도 이 정도인데 저자와 저의 공통분모, 함께 읽은 책은 어느 정도였겠습니까. 할아버지를 대신해서 기념식에 참가하기 위해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 들렀던 청년의 이야기가 담긴 <노 맨스 랜드>에 대한 저자의 글을 읽으며 예전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고 야구를 사랑하는 소년들의 성장소설인 <배터리>에서는 우리만의 야구성장소설을 꿈꾸기도 했으며 ‘<태양의 아이>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지 않은 자는 결코 상대하지 않’겠다는 대목을 보며 ‘저두요! 제 생각도 그래요’하고 공감의 눈길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저의 공감을 받아줄 저자가 세상에 없으니...




책에 관한 책을 읽으며, 남은 책장이 줄어드는 걸 ‘아쉽다’고 생각하기는 처음입니다. 길지 않은 삶을 책과 함께 치열하게 살아간 저자의 글, 그의 생각을 좀 더 만나고 싶었는데 말이지요. 마지막 책장을 덮고 다시 앞으로 돌아갑니다. 공감하는 글귀, 생각하게 하는 대목에 줄을 긋고 읽고 싶은 책, 구입해야 할 책에 포스트잇을 붙여둔 걸 보면서 불현듯 저자는 밑줄도 자를 대듯 반듯하게 그었다는데...하는 생각이 밀려듭니다. <한 권의 책>을 통한 저자의 책사랑, 제게 많은 걸 일깨워줬습니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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