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자다 - 왕멍, 장자와 즐기다
왕멍 지음, 허유영 옮김 / 들녘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중국철학은 물론 노자, 장자에 대해서 모르던 내가 장자를 처음 만난 건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는 철학우화집을 통해서였다. 장자철학을 원문 그대로 수록한 것이 아니라 쉽게 풀어놓은 정도였는데 가볍게 읽으면서도 무언가 묵직하게 전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가벼운 풀이가 이 정도인데 원문 장자는 어떨까? 분명 더 거대하고 심오한 걸 느끼고 깨닫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이후로 <장자>를 만날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전에 <나는 장자다>란 책이 출간된 것을 알게 됐다. 무엇보다 왕멍이라는 저자의 이력이 눈길을 끌었다. 매년 노벨상 후보에 오를 만큼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것보다 중국작가협회 부주석과 문화부장관을 역임했다는 그가 한때 우파로 찍혀 강제노동과 유배생활을 했었다니. 의외였다. 아니, 어쩌면 세상의 모진 풍파를 한 몸에 겪은 그였기에 장자철학을 더욱 깊이 체득할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책에는 [장자]의 ‘내편’과 ‘외편’의 일부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데 크게 ‘소요유(逍遙游), 위대한 날갯짓과 자유로운 휴식’ ‘제물론(齊物論), 투시와 초월로 세상을 고르게 하다’ ‘양생주(養生主), 여유를 가지면 애락이 깃들지 않는다.’ ‘인간세(人間世), 세상에 쓰이는 현묘함과 허물이 없는 신명’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저자는 먼저 [장자]의 ‘내편’에서 처음 언급되는 ‘소요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전적 의미의 소요(逍遙)는 ‘만족스러울 만큼 한가롭고 느긋하다’는 뜻으로 ‘귀하거나 천하고, 높거나 낮고, 가깝거나 먼 복합한 인간관계에 속해 있지 않아야 한다(16쪽)’는 의미로 ‘세속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정하는 것(31쪽)’이 소요에 이르는 전제조건이라고 한다. 겉으로 드러난 출세나 명예보다 개인의 내면, 정신세계가 자유롭고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건데 저자 자신이 한때 제일 밑바닥의 삶을 살았던 전력이 있어서 더욱 절실하게 와닿았다. 이어 ‘제물론(齊物論)’에서 저자는 생명의 진정한 본질은 어디에 있는지, 어떤 태도로 인생을 바라봐야 하는지 의문을 던진다. 끝없이 일어나는 욕망으로 인해 인간은 고뇌에 빠진다면서 세상만물과 만사는 아주 작은 생각의 차이에 불과하므로 그것을 위해 논쟁하다 파멸을 자초하지 말고 ‘마른 고목과 식은 재’처럼 자신을 버려서 무아의 경지에 이르라고 꾸짖는다. 행복과 불행,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좋은 것과 나쁜 것의 기준은 개인의 판단일 뿐 절대적이지 않으며 삶과 죽음도 역시 자연현상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자에 대해 알지 못하는데다 한자도 서툴러서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인간과 자연, 만물이 한결같다...이것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삶이 아닐까.




‘왕멍, 장자와 즐기다’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장자다>는 저자가 [장자]철학을 풀이하고 해설해놓은 책이다. 본문의 곳곳에 편집 방식을 달리해서 원문과 그에 대한 해석을 수록해놓고 있는데 때론 이 부분의 내용이 혼란스러웠다. 물을 쳐서 삼천리나 솟구친다는 붕새처럼 장자의 글이 아무리 거리낌 없고 자유로워도 이건 너무 지나치지 않나 싶은 대목(갈릴레오가 등장하고 영어 단어가 언급되는 등)도 있었다. 아마도 저자가 장자의 글을 해석하면서 그에 대한 자신만의 설명을 덧붙인 게 아닐까 짐작하지만 그것마저 확실치 않으니 답답했다. 웅대하고 방대하다는 장자의 글(해석)을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이 언제가 되더라도.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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