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
박수용 지음 / 김영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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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위대한 왕>을 만났습니다. 만주의 밀림을 비롯해서 중국과 백두산을 호령하던 조선호랑이의 당당한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우거진 숲을 바람처럼 날렵하게 달리던 모습, 목숨 대 목숨 사냥감과의 숨 막히는 공방전, 숲 전체를 뒤흔드는 우렁찬 포효. 이 모든 것들을 실제가 아닌 책으로 만났지만 조선호랑이의 늠름함은 제게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바로 그 호랑이가 우리의 상징이라는 것이 무엇보다 뿌듯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얼마전 또 한 번 호랑이와의 만남을 가졌는데요. 이번엔 시베리아 호랑이입니다. 드넓은 시베리아 설원을 지배했던, 사냥할 때마다 주변이 온통 피로 물든다고 해서 수많은 신교도들을 처형대로 몰아간 영국 여왕 ‘피의 메리’란 별명이 붙여진 암호랑이 ‘블러드 메리’와 그 가족에 관한 기록이 한 권의 책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에 담겨 있습니다.




오랫동안 야생호랑이를 연구하고 관찰했던 저자는 시베리아 호랑이를 만나기 위해 평범한 인간이 누리는 삼시세끼 식사와 안락한 집, 편안한 옷, 다정한 가족들 이런 것들을 모두 뒤로 한 채 시베리아의 혹한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한 평 정도의 땅을 파서 자리 잡고서는 그곳에서 모든 것을 해결합니다. 불편한 자세로 선잠을 자고 꽁꽁 언 밥을 녹여 먹고. 그리곤 기다립니다. 시베리아의 냉혹한 자연 속에서 언제 끝날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오랜 기다림. 그것은 소리 없는 치열한 싸움입니다. 그러다 맞닥뜨리게 되지요. 그토록 기다려온 호랑이를.




뜨뜻한 콧김이 훅 끼쳐오며 호랑이의 뻣뻣한 수염이 왼쪽 손등을 스쳐갑니다. 삶과 죽음, 그 허약한 존재의 추가 눈앞에서 어른거립니다. - 10쪽.




책은 호랑이에 관한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호랑이에 대한 많은 것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호랑이의 모습에 따라 남반구와 북반구로 나뉜다는 것에서부터 호랑이의 습성, 생태, 호랑이의 크기와 암수를 구별하는 방법, 호랑이를 관찰하기 위해 잠복장소를 물색하고 어떻게 준비하는지 그 과정을 세세하게 알려주는데요. 다소 지루하게 여겨지기도 했지만 저자가 호랑이를 관찰하고 연구하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공을 들였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바로 블러드 메리였습니다. 시베리아 호랑이가 지구상에 350여 마리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맹수 중의 맹수 호랑이지만 블러드 메리는 신중하고 또 자신의 영역에 애착이 깊었습니다. 평범한 인간과 밀렵꾼을 구분할 줄도 알았습니다. 특히 월백, 설백, 천지백 세 마리의 새끼를 낳아 기르는 부분은 실로 감탄에 이를 정도였어요. 오히려 인간보다 더 세심한 게 아닌가 의문이 들 정도였습니다. 호랑이는 새끼 중에서 제일 강한 한 마리만 키운다고 아는데요. 그건 100% 사실이 아니었어요. 대부분의 세끼가 세 살이 되기 전에 죽는 슬픈 현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안타깝고 가슴 아픈 장면도 많았습니다. 바로 블러드 메리가 인간의 욕심에 희생되어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 쓰러진 어미 곁을 새끼 호랑이들이 떠나지 못하고 서성대는 대목에서는 코끝이 시큰해지고 가슴이 찡해졌습니다.




천험의 땅 시베리아, 그곳에서 살아가는 시베리아 호랑이들의 모습, 삶과 죽음의 현장을 지켜보면서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우리 인간의 이기 앞에 스러져가는 무수히 많은 동물들. 그 앞에서 우린 과연 얼마나 당당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미 블러드 메리처럼 월백과 그의 자손들이 시베리아 설원을 당당히 지배하는 날이 오기를 저자처럼 저 역시 간절히 기대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호랑이는 살아가고 있다. 월백의 어미와 그 어미들이 그랬듯이 월백의 자식들도 이곳에서 새끼를 낳고 무사히 길러내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랐다. - 419쪽.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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