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 - 생생한 사진으로 만나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 잔혹사
이재갑 글.사진 / 살림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아이고 다리’를 아시나요?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멀리 떨어진 남태평양의 남양군도에 있는데요. 일제강점 하에서 강제 동원된 한인 노동자들이 일본의 비행장이나 군사시설, 사탕수수 재배 같은 가혹한 노동에 시달려 ‘아이고 아이고’ 신음하는 걸 듣고 원주민이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좋은 곳에서 일할 수 있고 오랫동안 일한 이주자에게는 농지도 준다’며 한인들을 속인 일본은 폭염 속에 가혹한 노동을 가한 것도 모자라 태평양 전쟁이 터지자 그들의 신분을 군인으로 바꾸어 전쟁터로 내몰았는데요. 화약을 머리에 이고 미군 전차가 오면 자폭하라는 자살테러까지 강요했다고 하는군요. 총알받이, 자살테러, 굶주림으로 강제 징용자의 대부분이 희생되고 간신히 생존한 이들마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는 기사를 보면서 당시 일제의 만행에 치를 떨었는데요. 최근 <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란 책을 읽는 내내 예전에 봤던 기사가 떠올랐습니다.




<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인 저자 이재갑이 15년 간 조선인 강제 노동자들의 뼈저린 삶과 그와 관련된 일제 잔재, 건축물들을 카메라에 담아 정리한 책입니다. 저자는 강제징용 된 조선인들의 흔적을 찾아 후쿠오카를 비롯해서 나가사키, 오사카, 히로시마, 오키나와 등지의 제철소와 지하터널과 탄광, 군부대 기지, 조선소, 댐, 비행장을 여러 차례 답사합니다. 그래서 당시 강제징용 조선인들이 얼마나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했는지를 사진과 함께 전해주는데요. 철강을 생산하기 위한 용광로가 뜨겁게 타올랐을 제철소나 깊은 암흑 속의 지하터널과 탄광, 당시 일본의 군부대 기지, 육지와 떨어진 외딴 섬 등 각각의 장소는 분명 다른 곳이지만 그 곳에 머물렀던 조선인에게 가해진 처우는 모두 같았습니다.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견딜 수 없는 곳에서 어떠한 보호 장구도 없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노동착취와 희생을 강요당했다는 것을. 극심한 노동과 굶주림, 폭행을 견딜 수 없어 도망이라도 치면 그 후 조선인들에 대한 감시와 고문이 더욱 가혹해졌다는 걸 말이지요.




강제징용 되었다가 희생된 조선인들의 최후는 더욱 초라했습니다. 자세히 눈여겨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힘들만큼 작은 돌. 그것이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들의 묘지였는데요. 무덤이나 묘지조차 없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해저탄광에 바닷물이 들어와 수몰된 조선인들. 그들은 아직도 바닷물 속에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댐 건설하다 추락한 조선인들을 구해주기는커녕 그들 머리 위로 시멘트를 부어 생매장했다는 믿기 어려운 일도 많았습니다.




책의 대부분을 차지한 사진과 그것을 설명한 짧은 글을 읽기란 생각보다 무척 힘겨웠습니다. 한줄기 가느다란 빛조차 도달하지 않을 것 같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음산하다 못해 기괴한 분위기마저 감도는 곳에서 노동착취를 당하다가 끝내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목숨을 다했을 조선인들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자신들의 그런 역사를 모른 척 감추기에 급급했습니다. 과거 강제징용 된 이들의 피와 땀, 희생, 한이 서린 건축물이 박물관이나 국가 등록 문화재로 등재되더라도 조선인 강제징용에 대해서는 안내판에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자신들도 원폭의 피해자라는 생각이 깊게 자리하고 있었고 제국주의적 이념, 우리나라에 대한 야욕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단체들의 활동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라에서 굳이 가르치지 않기에 아무도 모르게 묻히고 말았을 역사를 밝혀내어 올바른 사실을 많은 이에게 전하고자 애쓰는 이들도 많았는데요. 그걸 보면서 일본의 조카들이 떠올랐습니다.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인 부모의 아이들. 지금 한창 사춘기를 겪고 있을 두 아이는 어떤 역사관을 가진 이에게 배우고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폭격을 맞아 모든 것이 무너지고 폐허가 되어버린 건물에도 나무는 뿌리를 내렸습니다. 지난 100년의 시간동안 쉼 없이 가지를 뻗고 무성한 잎을 달았습니다. 나무의 역사가 나이테에 새겨지듯 우리의 역사는 어떻게 새겨지고 있을지 돌아보게 됩니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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