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4 - 평양의 날은 개었습니다, 개정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4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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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이런 얘길 들었습니다. 얼마전에 본 북한 영화에서 두 여학생의 대결장면이 정말 인상적이었다고 해요. 화가 잔뜩 난 여학생들이 가방을 운동장에 내려놓고선 다짜고짜 뛰더라는 거예요. 둘 중에 맨발투혼을 보인 아이가 이겨선 이런 말을 하더랍니다. “너, 졌지? 또 까불면 가만 안 둔다.(물론, 북한말은 이렇진 않겠지만)” 그랬더니 진 아이도 순순히 수긍하더라는 건데요. 그동안 드라마나 영화에서 걸핏하면 따귀부터 올려붙이는 걸 봐서일까요? ‘결투하면 진짜 독특하다’에서부터 ‘난 달리기 못하니까 까불면 안 되겠다’며 걱정하는 이에게 ‘그럼, 장거리를 노려보라’는 조언까지 모임 자리가 순식간에 왁자지껄해졌습니다. 가까이 있지만 갈 수 없는 북한, 그 곳 아이들의 순수함이 왠지 좋았어요. 그리고 다른 이들의 일상, 생활, 문화는 어떤지도 궁금해졌습니다.




이번에 만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4> ‘평양의 날은 개었습니다’에서 지금까지 접하지 못했던 북한의 모습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1997년 북한을 방문한 후에 쓴 답사기에 내용을 추가하고 다듬어서 내놓은 증보판인데요. 예전에 처음 출간될 때 놓쳤던 책인데다 그것이 우리가 가 볼 수 없는 곳, 북한의 문화유산을 답사한 것이라 더욱 반가웠습니다. 왜냐면 몇 년 전 박물관 문화강좌를 통해 북한의 몇 몇 문화재를 만났지만 자세히 알지 못해 아쉬웠거든요.




책은 저자가 북한의 방문절차를 거쳐 비행기를 타는 장면부터 시작되는데요. 마치 제 자신이 북한 땅을 밟기라도 하는 것처럼 두근댔습니다. 책은 장소와 유적지에 따라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첫 답사는 북한의 수도인 평양 주변의 유적지를 둘러보는 것으로 평양의 상징인 대동강을 시작으로 대동문, 부벽루, 을밀대, 대성산성 등 정말 많은 유적지가 있었습니다. 또 평양에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뿐만 아니라 구석기 시대 유적도 많았어요. 한반도에서 최초로 인간이 살았던 곳인 ‘상원 검은 모루유적’도 바로 평양에 있다고 하는데요. 우리나라에서 논란이 많았던 단군릉에 대해 남과 북의 입장이나 견해가 아직도 많이 다르다는 걸 북한의 원로학자 주영헌 선생과의 대화를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역사를 연구하는데 있어서의 방향과 남과 북이 서로 협조, 교류하는 관계로 발전해나가는 희망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고구려의 벽화로 너무나 유명한 ‘덕흥리 무덤’도 만날 수 있었는데 이곳을 방문하기까지 거친 절차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자의 원래 방북일정은 7월이었지만 담당 연구사가 7,8월 장마철은 벽화가 훼손되니 열 수 없다는 반대에 부딪쳐 일정이 10월로 연기되었다는 대목에서 해당 유적 담당자의  책임감과 사명이 얼마나 굳건한지 느낄 수 있었답니다.




우리와 비슷해 보이면서도 어딘가 다른 풍경과 유적지의 모습에 조금 낯설기도 했지만 그보다 그리움이 더 크게 와 닿았습니다. 남과 북이 분명 같은 언어를 쓰지만 한자어와 외래어가 많은 우리에 비해 곽밥(도시락), 닭알(달걀), 건발기(헤어드라이어) 등 순우리말을 사용하는 점도 인상적이었어요. 북한 여성의 머리 모양이 어떻게 손질하느냐에 따라 버섯머리, 들국화머리, 파도머리, 생태머리로 부른다고 하는데요. 설명만 들어선 머리에 언뜻 떠오르지 않아서 사진이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양의 날은 개었습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4권의 부제이기도 한 이 말이 처음엔 이 책의 상징적인 의미인 줄 알았는데요. 저자가 평양에 가기 위해 탑승한 비행기의 기장이 착륙을 앞두고 했던 안내방송이라고 합니다. “평양의 기온은 20도, 날은 개었습니다.” 책의 초반에 이 대목을 읽었을 때만해도 그런가보다 했던 대목이 마지막 부분에 수록된 ‘백두산으로 가는 길’이란 사진을 보는 순간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평양의 날이 개었을 때, 백두산으로 향하는 이 드넓은 길을 두 발로 걷고 싶습니다. 모쪼록 그 날이 빨리 오길 희망합니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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