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에서 빈둥거리다 길을 찾다 - 명문가 고택 편 이용재의 궁극의 문화기행 시리즈 3
이용재.이화영 지음 / 도미노북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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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11년이 되어 지금까지, 일 년의 3분의 2를 지나는 동안 정말 인상 깊은 만남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이용재와의 만남이다. <이용재의 궁극의 문화기행, 이색박물관 편>을 시작으로 <이용재의 궁극의 문화기행, 건축가 김원 편>을 연이어 만났다. 같은 저자의 책을, 그것도 시리즈물을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두 권을 읽은 것도 나로선 기록적인 일이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저자의 글맛이었다. 짧게 툭툭 던지듯 하는 글에는 경쾌한 리듬이 살아있었는데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마치 농담처럼 내뱉는 말 속에도 정곡을 찌르는 핵심이 숨어있었다. 재밌는 만화를 보듯 술술 넘어가는 글에 푹 빠져서 쿡쿡 웃음을 흘리고 있다가도 죽비로 어깨죽지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드는 대목을 만나곤 했다. 미운 말을 서슴없이 내뱉지만 결코 밉지 않은, 그게 바로 저자 이용재식 글이다.




<궁극의 문화기행> 세 번째 시리즈의 출간소식이 들려올 때, 그것도 고택을 주제로 했다고 해서 저자가 이번엔 또 어떤 말을 하려나 궁금했다. 예전에 경주와 안동의 고택으로 답사를 다녀온 적이 있는데, 혹시나 내가 다녀온 곳이 소개되어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됐다.




책에는 모두 21곳의 고택이 소개되어 있다. 만약 고택을 문화관광 측면에서 소개하는 형식의 책이었다면 21곳의 고택이 지역별로 분류되었겠지만 이 책은 역사와 주제에 따라 나누었다. 권력의 최정점인 왕과 왕족의 파란만장하고 처연한 삶이 녹아들어있는 고택(강릉 선교장, 서울 연경당, 서울 운현궁, 서울 낙선재, 아산 윤보선생가)를 시작으로 어떤 일에도 신의를 버리지 않고 절개를 지켰던 꼿꼿한 선비의 기운이 서려있는 고택(홍성 엄찬고택, 경주 향단, 성주 백세각, 상주 우복종가, 거창 동계고택, 봉화 만산고택), 학문과 예술의 외롭고 깊은 경지를 느낄 수 있는 고택(함양 일두고택, 논산 사계고택, 해남 녹우당, 예산 추사고택, 전주 학인당), 나라를 위해, 혹은 이웃을 위해 스스로 절제하고 나눔과 베풂의 삶을 이들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고택(안동 학봉종택, 상주 양진당, 논산 명재고택, 대구 백불고택, 홍성 조응식가옥)으로 이어진다.




이 중에서 연경당과 낙선재가 유독 기억에 남았다. 특히 연경당은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서울이 아닌 지방에 사는 것도 이유가 될지 모르지만 그 혼잡한 대도시에 그런 곳이 있으리라곤 솔직히 상상도 못했다. 원치 않았지만 권력의 최정점에 오르고 그로 인해 고독한 삶을 살아야했던 왕 순조, 그의 외로움이 오롯이 느껴졌다. 고종 황제를 비롯해서 순종, 영친왕, 이구로 이어지는 우리 왕실의 최후가 담겨있는 낙선재는 아픔, 그 자체였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예전엔 더 그랬다. 역사는 물론이거니와 전통건축에 대해 아는 것이 미미한 내게 고택은 어딜 가나 비슷비슷했다. 비슷한 모양에 비슷한 구조. 그래서 팔작지붕이니, 맞배지붕이니, 겹처마 혹은 홑처마, 몇 칸이니 하는 건축의 구조와 양식에만 골몰했다. 그 속에 담긴, 전해지는 역사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고택에서 빈둥거리고 싶어졌다. 저자처럼. 우리의 지난 역사와 선비들의 고고한 정신이 깃든 곳에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곳에서의 시간과 도심에서의 시간이 산술적으론 분명 같을지라도 깊이나 깨달음은 다를 것이니. 언제든 시간을 내어야지. 제일 먼저 가볼 곳은 나의 선조들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곳, 안동 학봉종택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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