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진 음지 - 조정래 장편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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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만나지 못한 지인에게 주말에 한 번 보자고 연락했습니다. 그랬더니 지인은 얼마전부터 주말농장을 시작하는 바람에 도무지 짬이 안 난다고 하더군요. 오히려 주말이랑 휴일이 더 바쁘다는 말에 왠지 신바람이 묻어났습니다. 그가 줄곧 귀농을 꿈꿨다는 걸 알기에 그렇게 느낀 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러고보니 요즘은 제 지인을 비롯해서 귀농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고 하지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귀농한 가구수가 20%이상 증가한 곳도 있다는 기사를 봤는데요.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위한 귀농은 이제 사회적인 추세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불과 3~40년 전만해도 지금과 달랐지요. 아니, 정반대였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잘 살기 위해 서울로 서울로 모여들었습니다.




<비탈진 음지>의 주인공인 복천 영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하지만 열심히, 억척스럽게 일만 하던 아내가 갑자기 암 선고를 받고 세상을 떠나버리자 복천 영감은 삶의 터전이었던 고향을 떠납니다. 왜냐면 그나마 있던 논도 아내의 병수발 하느라 모두 날려 버린데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을 감당할 수 없었던 복천 영감은 남의 소를 빌려서 판 돈을 손에 쥐고 무작정 도망을 칩니다. 서울로.




하지만 서울에 간다고 해서 모든 일이 해결되는 건 아니었어요. 농사만 짓고 살던 복천 영감은 당장 아이들과 머물 곳을 마련하고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을 정도의 일거리를 찾는 것조차 힘겨웠습니다. 어쩌다 간신히 일을 찾더라도 외지 사람인 복천 영감을 어디서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막노동일에서부터 등짐을 지려고 했을 때도, 사람들은 텃세를 부리며 복천 영감을 강제로 몰아냈습니다.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모진 뭇매뿐...어찌어찌 해서 땅콩장사를 시작해 보지만 이번에는 리어카를 도둑맞고 맙니다. 사람 사는 정이라곤 느낄 수 없는 서울에서 복천 영감은 칼갈이를 하게 되는데요. 칼갈이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여기저기 골목을 누비고 다니면서 “카알 가아씨요. 카알 가아씨요.” 하고 목청껏 소리를 질러야 하지만 목이 바짝바짝 타는 갈증은 복천 영감을 지치게 했습니다. 물 한 잔 얻어 마시려고 구멍가게에 들어갔다가 공짜로 수돗물을 줄 수 없다며 마구잡이로 쏘아붙이는 통에 복천 영감은 구역질을 느낍니다. 매정한 서울인심, 지독한 서울냄새에...




어쩜 저리도 안 풀릴까 싶을 정도로 복천 영감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맨 몸뚱이로 서울에서 살아간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건 너무나 잘 알지만 그래도 약간의 희망을 가졌어요. 언젠가 나아지겠지.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는데 곧 좋은 날이 올거야... 그런데 그 희망이, 기대가 물거품처럼 힘없이 꺼져버리고 마는 순간 안타까움이 밀려왔습니다. 가슴이 꽉 막힌듯 답답했습니다.




복잡하고 현란한 빛이 가득한 대도시 속에서 한없이 초라하고 소외된 사람들. 어느 누구도 포근하게 감싸주지 않는 현실 속에서 그들은 가파른 비탈, 그것도 음지에서 간신히 삶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따스한 햇살은 과연 언제쯤 비추게 될까요.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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