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트 그렌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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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악몽을 꿉니다. 꿈속에서 전 때로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때로는 무섭고 거대한 동물에 쫓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순간은 바로 아이를 잃었을 때였습니다. 어느 순간 시야에서 사라진 아이를 찾아 아이의 이름을 울부짖으며 사방을 헤매 다니다가 잠에서 깨어난 날은 그것이 꿈이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하루 종일 왠지 가슴이 아팠습니다.




얼마 전 한창 무더운 날, 바닷가에서도 그랬습니다. 노란 튜브를 가지고 신나게 바다로 뛰어든 아이는 시간이 가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찾아 동동거리며 백사장 여기저기를 뛰어다녔지만 도무지 아이를 찾을 수 없을 때. 애간장이 타서 어찌할 수 없을 때, 꿈속의 그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이것이 혹시 꿈은 아닐까? 간절히 빌었습니다. 제발, 제발 꿈이기를....




운동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아홉 살 난 두 소녀 앞에 낯선 남자가 다가섭니다. 남자는 소녀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말로 꼬여내어 어딘가로 데려갑니다. 그것이 두 소녀에게 있어 최후의 순간이었습니다. 남자는 차마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난폭하고 잔혹한 방법으로 소녀들의 목숨을 빼앗습니다. 다행히도 희대의 아동성폭행살인범 벤트 룬드는 체포되는데요. 그로부터 4년 후, 룬드는 교도소에서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두 명의 교도관을 폭행하고 탈주하고 맙니다.




한편, 프레드리크는 아내와 이혼 후 딸 마리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교사 미카엘라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형이 아버지의 무자비한 폭행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해버린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프레드리크에게 가족, 특히 딸 마리는 세상 그 어느 것보다 소중했는데요. 어느 날 그는 늦잠을 자는 바람에 마리를 어린이집에 늦게 데려다 줍니다. 어린이집 입구에서 아빠와 헤어지기 싫어 매달리는 마리를 억지로 떼어놓고 프레드리크는 작업실로 향합니다. 그리고 우연히 보게 된 텔레비전에서 충격적인 소식을 듣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성폭행, 강간하고 잔인하게 살해한 범인 벤트 룬드가 이송 도중 탈주했다는 것. 문제는 그 범인이 프레드리크가 최근에 본 듯한, 아니 조금 전 마리의 어린이집 앞에서 마주친, 거기다 인사까지 건넨 남자라는 겁니다. 소스라치게 놀란 프레드리크는 다시 어린이집으로 향하는데...




500쪽 가까이 되는 두툼한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아니 마치 내가 프레드리크가 된 것처럼 매 순간이 불안하고 조마조마했습니다. 넋이 나간 것처럼 마리를 찾으면서 어린이집을 가기엔 늦은 시간인데 그냥 마리와 함께 집에 있지 않고 왜 어린이집에 데려다 준건지, 문제의 그 남자에게 왜 두 번씩이나 인사를 건넨 건지 후회하고 자책하는 프레드리크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어쩌다 아이가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다치고 돌아온 날이면 저 역시 그랬거든요. 오늘은 그냥 집에 데리고 있을 걸...




책은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범죄에 죄책감은커녕 도리어 어린 아이들을 ‘창녀’라 부르는 아동성폭행 연쇄살인범 벤트 룬드와 평온한 일상의 행복이 깨어진 프레드리크의 이후 행보에 대해 초점이 맞춰진 듯 보입니다. 하지만 두 저자(스웨덴 국영방송의 사회부기자로 활동하면서 교도소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던 루슬룬드와 어렸을 때 성폭행을 당한 이후로 전과자가 된 헬스트럼)는 그 이상의 것을 소설 속에 녹여냅니다. 사랑하는 딸의 죽음과 또 다른 소녀의 죽음을 막기 위한 복수이자 단죄, 그 자신도 살인자가 되어 버린다는 딜레마. 제 아무리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흉악범이라도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극형을 면할 수 있는 사법체제의 불합리함 등등. 이런 것들을 펼쳐놓고 저자는 묻습니다. 당신이라면 어쩌겠냐고. 무엇이 정의냐고. 저는 아마.... 아니, 섣불리 대답 못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사족>

문제의 그 날. 제발 꿈이기를 바랐던 그 날, 저는 다행히도 아이를 다시 제 가슴에 안을 수 있었습니다. 파도에 휩쓸려 튜브가 뒤집히고 바다에 떠다니다보니 아이는 도무지 저희가 머물던 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한참을 헤매다 안전요원의 전화를 빌어 연락했더군요. 어디에 있으니까 데리러 와달라고.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한달음에 달려가서 겁에 질린 아이를 데려오면서 그제야 겨우 제정신을 찾을 수 있었답니다. 천만다행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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