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 2011년 제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강희진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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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상 수상작을 처음 만난 것은 <내 심장을 쏴라>를 통해서였다. 정유정이라는 작가도 궁금했지만 그보다 ‘나’도 아닌 ‘내 심장’을 쏘라는 음울하고 묵직한 느낌의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대체 어떤 이야기일까.




제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유령>을 처음 만났을 때도 비슷했다. 저마다 다른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유령처럼 보이지는 않은데 왜 제목이 ‘유령’인 걸까? 상징적 의미의 ‘유령’일까, 아니면....?




2010년 2월, 백석공원에서 엽기적 사체 훼손사건이 일어났다는 뉴스(?)로 책은 시작된다. 이어진 장소는 피시방. 밖에서 엽기적 사건이 일어나건 말건 아무런 상관없는 분위기다. 그곳 사람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컴퓨터 화면 속에 있으니까. 주인공 하림 역시 마찬가지다. 한때 그는 리니지라는 컴퓨터 게임의 가상현실 공간에서 독재자에 맞서 바츠 해방전쟁을 일으킨 영웅 쿠사나기였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할 일 없이 피시방에 죽치고 있는 폐인이 되어서 고도리에 빠져있다. 돈이 필요했던 그는 한 달이 넘게 게임에 몰두했고 결국 쓰러지고 만다.




병원에서 도망치듯 나온 그는 이내 형사에게 이끌려 경찰서로 향한다. 며칠 전 백석공원에서 발견된 안구가 주인공과 함께 사는 회령 아저씨라고 생각한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로 하림을 지목하고 조사를 시작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었던 그는 경찰의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한다. 게다가 하림이 회령 아저씨와 문자를 주고받는 걸 보여주자 일단 경찰은 그를 보내준다.




경찰서에서 나온 하림은 자신이 얼마 전 백석공원의 나무에 목을 매고 자살한 사람을 발견했던 걸 떠올린다. 자살한 이는 탈북자였는데 우연인지 의도인지 두 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같은데다가 공교롭게도 또 다시 사건이 벌어진다. 바로 그 백석공원의 나무 밑에서 손가락 둘이 잘려나간 손목이 발견된 것이다. 그 뉴스를 보는 순간 하림에게서 언뜻 무언가가 떠올랐다. 하지만 더 이상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에게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백석공원에서 연이어 벌어지는 사건의 숨겨진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리니지는 커녕 컴퓨터 게임에 문외한이어서일까. 소설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탈북자에겐 살벌하기 그지없는 현실과 컴퓨터 게임 속 가상현실이 교차하는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조차 자신이 누군지 몰라 혼돈에 빠진 것처럼 나 역시 그랬다. 너무 답답한 나머지 책 읽는 도중에 ‘바츠 해방전쟁’이 무엇인지 검색해서 찾아보기까지 했다. 그 과정에서 ‘게임과 현실을 착각하지 말라 하지만 그건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며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한 글도 보았고 내복단이 어떤 부대며 그들이 어떻게 해서 바츠 해방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 게임을 잘 모르지만 정말 굉장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온라인 게임 상에서 전설로 통하는 ‘바츠 해방전쟁’을 소설로 끌어와 탈북자들의 현실과 접목시켰다니. 역시 문학상 수상작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는 느낌이다. 하루하루 삶을 이어가기조차 힘겨워 탈북을 한 이들.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현실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북한에서와 다를 바 없는, 실체가 없는 유령과 같은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것을 부각시키기 위해 컴퓨터 게임 리니지과 살인사건으로 연결시킨 것 같은데, 그것이 오히려 소설의 짜임새를 느슨하게 만든 건 아닐까 싶다. 아쉬운 점이 있긴 하지만 그건 어쩌면 나의 욕심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유령>을 통해 강희진이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다. 저자의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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