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을 훔치다
몽우 조셉킴(Joseph Kim) 지음 / 미다스북스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이중섭에 대해 아는 게 뭐지? 우리 미술사에서 찬란한 빛과 같은 작가. 타계한 이후에도 작품은 끊임없이 위작소동에 휘말린다는 이중섭. 그에 대해 암만 곰곰 생각해봐도 떠오르는 것은 요절한 천재화가이며 뼈와 근육이 하얗게 도드라진 모습의 [흰 소]와 벌거숭이 아이들을 그린 그림뿐. 그것조차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봤던 게 전부이니 참담하다. 그렇다고 여기서 예술에 관한 우리의 교육이 잘못되었다고 백 날 떠들어봐야 소용없는 노릇. “관심 있으면, 궁금하면 찾아보면 되지, 뭐했냐?”고 묻는다면 한마디로 ‘할 말 없음’이다.




<이중섭을 훔치다>를 처음 본 느낌은 ‘아니, 이렇게 도발적인 제목이 다 있나?’였다. ‘훔치다’에는 분명 옳지 않은 나쁜 의미가 담겨있다. 그런데도 그걸 제목으로? 만약 훔치는 것이 누군가의 재산이었다면 틀림없이 문제가 된다. 하지만 그것이 다름아닌 사람, ‘이중섭’이다. 이쯤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실 나도 할 수만 있다면 누군가의 얼굴과 누군가의 몸매를 훔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만큼 부러우니까. 저자도 그런 게 아닐까? 이중섭을 너무 사랑하고 존경하고 그의 작품을 아끼는 나머지 그의 모든 것을 훔치고 싶었던 게....




역시 그랬다. 저자는 이중섭에 빠져있었다. 요즘말로 하자면 이중섭 골수팬이라고나 할까? <이중섭을 훔치다> 이 책은 이중섭의 그림만 보면 심장이 뛰고 기분이 좋아져서 울컥한다는 저자 몽우가 알려주는 이중섭에 관한 모든 것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 이중섭의 타는 듯한 붉은 색에 매료됐다고 한다.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색채를 따라 그렸지만 그의 뇌리에 박힌 붉은 색이 나오지 않았던 것. 그런데 그 순간 그의 눈에 띈 것이 석유곤로였다. 타는 듯한 아름다운 붉은 색을 보기 위해 그는 성냥을 그었다. 화르륵~! 그에게는 자신의 가슴 속에 자리한 이중섭, 그의 붉은 색, 오묘한 색깔을 표현해보고 싶은 마음이 전부였던 것이다.




이중섭의 그림을 훔치고 싶을 정도로 그에게 빠져있던 이후 저자는 이중섭의 그림을 복원하는 작업에 참여하게 된다. 자신이 매료된 이의 그림과 직접적으로 대면한 저자는 그 과정에서 이중섭이 무엇에, 어떻게 영감을 받아서 그림을 그리는지부터 시작해서 묘사하는 방법이나 기법에 이르기까지 이중섭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된다. 광기어린 천재화가라는 그가 실제로는 얼마나 다정하고 인간적인 사람이었는지 알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중섭의 작품에 남겨진 ‘중섭’과 ‘둥섭’이라는 서명에 관한 것을 비롯해서 그의 그림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소를 그리고 닭은 그린 이유가 무엇인지까지도.




일제식민치하에서 광복의 기쁨을 맞이한 것도 잠시, 연이어 벌어진 한국전쟁을 겪으며 많은 이가 가난 속에서 힘겨운 삶을 살았듯 이중섭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그는 달랐다. 어둡고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화가는 화가 개인의 삶이 그래도 그림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을 소금과 같은 정결함과 고귀함을 지녀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썩지 않는다. 세상은 부패하고 있는데 이때 예술가가 해야 할 사명은 자신의 삶과 작품을 통해 세상을 정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을 통해 좌절한 이에게 용기를 주고 방황하는 영혼에게 길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ㅡ 222쪽.




‘꿈친구’ 몽우(夢友)를 통해 이중섭을 만났다. 글과 붓으로 이중섭을 훔쳤다. 가난하고 힘겨웠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림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지녔던 이중섭. 그를 이제라도 만날 수 있어서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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