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사진의 아우라 -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사진가 이홍석의 촬영 노하우
이홍석 지음 / 시공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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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카메라. 이 두 가지와 친하지 않다. 아니, 가능하면 그것들과 떨어져서 지내고 싶다는 게 솔직한 표현이다. 오죽했으면 결혼할 때 찍은 사진이 내 평생 카메라에 노출되는 것보다 더 많을 거라고 말할까. 그런 나도 요즘엔 자꾸 욕심이 생긴다. 지금보다 사진을 잘 찍고 싶다. 한창 자라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하고 활기찬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데 그게 마구잡이로 카메라만 들이댄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다. 아이들의 모습을 순간적으로 포착하는 것부터 어려울뿐더러 사진을 찍어도 만족스럽지 못할 때가 많았다. 플래시 사용이 적절하지 못했거나 초점이 흐릿한 경우, 피사체보다 오히려 그 주변이 도드라져서 산만하게 보이기도 했다. 역시 사진 찍는 실력이 부족한 거란 생각에 관련서적을 보기도 했지만 ‘이거다!’ 할 정도로 와 닿는 책을 만나지 못했다.




<여행사진의 노하우>는 정말 어쩌다 우연히 건진 책이다. ‘여행사진의 노하우’란 제목과 표지만 봤다면 ‘여행도 잘 안가면서 무슨...?’하고 그냥 지나쳤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어쩌다 이 책의 차례를 살펴보게 됐고 거기에 나의 시선을 잡아끄는 대목을 발견했다. ‘여자의 뇌, 여자의 사진’ ‘남자의 뇌, 남자의 사진’ ‘사내아이들을 찍는 법’. 여자와 남자가 뇌 구조에서부터 다르다는 건 알았지만 그것 때문에 사진도 달라진다? 거기다 ‘사내아이들을 찍는 법’이라니. 이것이야말로 내가 찾던 책이 아닌가.




책은 크게 ‘인물 사진’ ‘풍경 사진’ ‘포토 에세이’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내가 궁금했던 부분은 주로 1장에 있었다. 인물을 촬영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저자는 여자와 남자를 구분해서 설명한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란 책이 있듯이 여자와 남자가 어떻게 다른지 짚어주고 그렇게 때문에 사진을 찍을 때도 어떻게 대상에 접근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여자에겐 먼저 그녀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찾아내어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라고 조언한다. 그러면 정말 놀랍도록 자연스러운 장면을 담게 될 거라고. 반면에 남자는 호르몬의 영향으로 모험적이고 거친 행동이 두드러진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내아이들을 찍을 때도 마찬가지다. 사내아이들을 잘 찍기 위해서 저자는 카메라로 “두두두” 소리를 내며 기관총 쏘는 흉내를 냈고 그러자 아이들은 난데없이 나타난 적군(?)을 물리치기 위해 달려들었다고 한다. 즉 사내아이들은 신나게 한바탕 놀아준 다음 사진을 찍어야 기막힌 사진이 나온다는 것. 이 대목에서 나는 그동안 어땠는지 돌아봤다. 아이가 열심히 놀이에 몰입하고 있을 때 혹시나 카메라를 의식할까 싶어서 몰래 다가가곤 했는데, 그게 결국 좋은 방법이 아니었던 셈이다. 또 성인 남자를 찍을 때는 그가 사용하는 도구나 직업에 주목하라고 했는데 이 대목에서 미당 서정주 선생과 관련한 일화는 그야말로 폭소 그 자체였다. 평생 글을 써 온 미당 선생에게 원고 뭉치를 허공에 뿌리는 장면을 찍겠다고 했으니 어처구니가 없는 노릇이다.




2007년 겨울, 태안 앞바다에서 벌어진 원유유출사고와 관련한 사진도 인상적이었다. 개인전을 앞두고 막바지 작업에 바쁜 때였지만 저자는 개인전을 뒤로 하고 태안으로 향한다. 3일간 태안에 머물며 찍은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문제의 사건이 수면위에 떠올랐고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을 태안으로 이끌게 됐다는 대목에서 사진 한 장이 지닌 힘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 실감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내가 사는 동네, 송정해수욕장이나 미포, 7번 국도가 등장하는 사진은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다.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풍경이지만 왠지 더 낯설고 그러면서도 정감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 기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좋은 사진을 만들 수 있는 태도에 관한 문제를 다룬 책’이라고. 이 짧은 문장에 이 책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사실 사진을 찍는 기술이나 테크닉을 알려주는 책은 이제 너무나 흔하다. 하지만 기술이나 테크닉만으로는 절대로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없다. 렌즈가 어쩌고, 노출이 어쩌고 백날 떠들어봐야 그것을 직접 실감하고 체득하고 자기만의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것이다. 사진을 잘 찍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 책을 만나보라고 권하고 싶다. 한 권의 책으로 베레랑 사진작가와 함께 출사여행을 떠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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