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엇 - 175년 동안 바다를 품고 살았던 갈라파고스 거북 이야기 보름달문고 45
한윤섭 지음, 서영아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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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해운대에선 유독 해무가 잦았습니다. 안개도 아닌 그것은 바다에서 육지로육지로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해변가를 순식간에 점령해버리는 그 모습이 마치 대형 쓰나미를 보는 듯했는데요. 발아래로 해무가 스쳐지나갈 때의 차갑고 서늘한 그 감촉이란, 뭐라 표현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순간 소름끼치면서도 이내 환상의 세계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거든요.




<해리엇>을 처음 봤을 때도 그랬어요. 동이 트기 전, 새벽 어스름이 내려앉은 길을 몇 마리의 동물이 줄 지어 가는 모습에서 왠지 서늘하면서도 애잔한 느낌이 밀려왔습니다. 이들이 거리로 나오게 된 이유는 뭘까, 궁금해졌습니다.




“삼 일이면 해리엇의 몸속에서 생명이 모두 빠져나갈 거야.”

동물원에 깊은 밤이 찾아들어 고요한 시각, 원숭이 찰리와 너구리 올드는 거북 해리엇을 찾아갑니다. 너구리 올드가 동물들의 생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볼 수 있는 눈을 가졌거든요. ‘해리엇의 생명이 삼 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찰리와 올드는 절박함과 슬픔에 휩싸이게 됩니다. 마치 인간에게서 볼 수 있는 숙연한 분위기에 궁금증은 더욱 부풀어 오릅니다. 서로 다른 동물인 찰리와 올드, 해리엇에게서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찰리는 처음부터 찰리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아기 자바 원숭이였는데요. 아주 어릴 때 사람들에게 잡혀 동물원으로 가게 됩니다. 거기서 동물원 주인의 아들이 찰리를 집으로 데려가면서 ‘찰리’란 이름이 붙여졌지요. 그렇게 찰리는 숲에서 살아가는 야생동물의 습성을 깨우치기 전에 사람에 의해 길러지면서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데 길이 들어버립니다. 하지만 그런 생활도 오래 지속되진 못했습니다. 아이가 학교 문제 때문에 집을 떠나게 되자 찰리는 다시 동물원으로 보내집니다.




원숭이지만 원숭이의 습성을 잃어버린 찰리는 스미스를 비롯한 개코 원숭이 무리에게 혹독한 괴롭힘을 당합니다. 동물을 배신하고 사람과 살았다는 거지요. 다행히 백 칠십 살이 넘은 거북이 해리엇이 그런 찰리를 개코 원숭이 무리로부터 지켜줍니다. 외로움과 두려움에 떠는 찰리에게 넌 이제 혼자가 아니라며 따스한 위로의 말을 건네지요. 결국 해리엇의 도움으로 찰리는 개코 원숭이의 우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겨지게 되는데요. 새로운 집에서 찰리는 해리엇을 비롯해 너구리 올드, 오소리, 여우, 코알라와 만나 모처럼 편안한 기분을 맛보게 됩니다.




하지만 찰리에게 슬픔의 순간이 닥칩니다. 175년이란 세월을 살았던 해리엇에게 죽음이 찾아오고 있다는 것이지요.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자 해리엇은 찰리에게 부탁합니다. 동물원의 친구들과 가까이에서 인사하고 싶다고. 자신의 우리 앞으로 모여든 동물들에게 해리엇은 이야기를 꺼냅니다. 자신이 지상낙원인 갈라파고스를 떠나 동물원으로 오게 된 사연을, 갈라파고스로 돌아가길 얼마나 염원했는지를... 그런 해리엇에게 찰리는 묻습니다. 바다가 해리엇을 갈라파고스로 데려다주는지를. 해리엇은 과연 동물원을 떠나 무사히 바다로, 갈라파고스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해리엇,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갈라파고스로 돌아가고 싶어요?”

찰리가 물었다.

“그래, 내가 살았던 땅으로 돌아가고 싶어. 어쩌면 그 전에 생명이 다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바다로 가고 싶어. 아니, 난 바다로 갈 수 있을 거야.” ㅡ 137쪽




<봉주르, 뚜르> 이후로 만난 저자의 작품 <해리엇>을 통해 또 한 번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의 부제이기도 한 ‘175년 동안 바다를 품고 살았던 갈라파고스 거북 해리엇 이야기’는 오래도록 제 가슴에 울림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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