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인문주의자의 과학책 읽기
최성일 지음 / 연암서가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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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당장 읽을 것도 아니면서 덜컥 구입하는 책이 있다. 대부분 인문학이나 과학 관련분야의 책인데 앞으로 좀 더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꼭 읽어야할 것 같은, 아니 읽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문제는 그런 책이 여간 마음을 다잡지 않고선 손에 잡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인류문명의 발달에 대해 알기 위해 구입한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는 개정증보판이 출간되도록 읽지 못했고 그래도 과학도인데 이 정도는 읽어야지 했던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만들어진 신> 역시 책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책탐은 끝도 없어서 어디 좋은 책 없나 수시로 물색하곤 있는데 그런 차에 발견한 <어느 인문주의자의 과학책 읽기>는 왠지 내게 좋은 해결책을 제시해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책의 구성은 단순하다. 과학책 애호가인 저자가 자신이 읽은 책의 서평을 썼는데 모두 39개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책의 초반 인문적 시각으로 과학책을 읽는다고 밝힌 저자는 자신이 어떤 과학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독자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제일 먼저 소개하는 것은 칼 세이건이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중간쯤 읽다가 덮어버린 나로선 눈이 번쩍 뜨이는 대목이었다. 저자는 먼저 칼 세이건의 평전 <칼세이건 코스모스를 향한 열정>을 통해 세이건이 천문학도가 되는데 계기가 됐던 어린시절의 일화를 비롯해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려준다. 이어서 저자는 자신이 중학생 때 몇 달에 걸쳐 <코스모스>를 읽었는데 매우 흥미롭고 새로운 독서였다고 한다. 다만 그 당시 초역 때문에 무척 애를 먹었다면서 ‘과학책은 거의 무조건 최신 번역판을 읽는 게 타당’하다고 덧붙인다.




그런가하면 과학이 우리 일상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저자는 장하나의 <속담으로 배우는 과학 교과서>와 다이우싼의 <고사성어 속 과학>, 김형자의 <과학에 둘러싸인 하루>를 인용해서 이야기한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칠 수 있는지 없는지, ‘웃음은 보약’이란 게 어디에서 근거가 있는 말인지 설명하는데 실제 우리의 몸에 웃음을 관장하는 ‘웃음보’가 있다고 해서 놀라웠다. 또 우리 일상이 첨단과학 기계로 무장하고 있지만 청소를 해주는 로봇이 개인용 컴퓨터처럼 보급되려면 10~20년이 훨씬 지나야한다고 하는데 청소에 자신없는 나로선 실망이 아닐 수 없다. 예전에 내가 읽었던 올리버 색스의 <뮤지코필리아>를 만나서 더없이 반가웠다. 음악적 심상 능력을 설명하기 위해 귀먹은 작곡가 베토벤를, 음악이 우리의 뇌측두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걸 밝히기 위해 음악 서번트를 통해 짚어주는 책이었는데 음악에 몰입한 올리버 색스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으로 기억된 책이었다.




평범한 사람에 비해 인문학자의 사고의 깊이가 달라서일까. 지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저자와 같은 책을 읽었음에도 해석하는 깊이와 받아들이는 내용에서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권의 책을 보다 자세히 꼼꼼하게 읽는 정독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몇 가지 아쉬운 점이 눈에 띄었다. 본문이 300쪽도 되지 않는 책에서 39개의 글이 수록되다 보니 하나의 글, 과학책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듯했다. 게다가 인용되는 문구가 어찌나 많은지 책을 읽다가 수시로 이것이 저자의 말인지 인용문인지 따옴표를 찾으며 체크해야 하니 흐름이 끊어지는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미처 알지 못했던 보석 같은 과학책들이 정말 많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는 것이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몇 달 전 이웃 블로그를 통해 이 책의 저자가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접했는데 책을 끔찍이도 아끼고 사랑한다는 저자의 빠른 쾌유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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