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선 과학 - 생생한 판례들로 본 살아 있는 정의와 진리의 모험
실라 재서너프 지음, 박상준 옮김 / 동아시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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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할머니를 아시나요? 폐렴으로 입원했던 김할머니가 뇌사상태에 빠지자 가족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고 이듬해 대법원은 김할머니의 존엄사를 인정하여 산소호흡기를 제거하게 됩니다. 이후 의료계에서는 환자와 가족의 동의가 있을 경우엔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지침을 발표하기에 이르게 되지요. 뇌사상태였던 김할머니에게 대법원이 최초로 ‘죽을 권리’를 인정했다고 해서 당시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됐던 기억이 나는데요. 지난 5월 21일이 바로 그 김할머니의 존엄사를 대법원이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지 2년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 이후 우리 의료계의 존엄사에 대한 생각들은 어떻게 바뀌었을지....




‘생생한 판례들로 본 살아있는 정의와 진리의 모험’이라는 부제가 달린 <법정에 선 과학>은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법과 과학의 논란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법적인 원리나 과학적인 사실들이 사회에 문제가 되고 더 나아가 정치와 맞물릴 때 어떻게 되는지 보여줍니다. 그리고 하나의 판례가 이후 벌어지는 유사한 사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저자는 풍부한 판례를 통해 이야기합니다.




이를테면 녹내장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시력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삼십대 초반 여성의 자신의 안과의사를 고소합니다. 이에 대법원은 안과의사가 의료규범대로만 따랐을 뿐 환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으며 녹내장 검사에도 부주의했다는 판결을 내렸는데요. 당시엔 이 판결로 인해 의료인들에게 많은 어려움이 따를 거라 예상했지만 다른 지역의 의료과실법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았다면서 의료과실법의 모순을 짚어줍니다. 또 유독물질이나 불법행위의 책임 규정과 손해배상 청구에 있어서 사법적으로 중점적인 논의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김할머니의 사례처럼 존엄사에 관한 논쟁과정을 퀸란 사건과 사이케윅츠 사건을 예를 들어 설명해주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와 여성의 자유에 대한 논의를 다루면서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 [시녀이야기]를 예로 들어 설명한 것과 생식기술의 발달로 인공수정과 대리모를 통한 출산으로 인해 가족과 부모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의문이 남았습니다.




과학, 특히 생물학을 전공했기에 책의 내용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요. 처음 생각과는 달리 책장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낯선 법률 용어가 많아서인지 한 문장, 한 단락을 몇 번이고 읽어야했습니다. 게다가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소송이나 사례들이 미국법을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생소하게 다가왔는데요. 다행히 저자가 소개한 사례와 비슷한 사건들이 우리나라에도 있었기에 어떤 것이 논란의 쟁점이 됐었는지 기사를 검색하면서 읽기도 했습니다.




어떨 땐 사람의 옆얼굴로 보이다가 또 어떨 땐 컵으로 보이는 그림, ‘루빈의 잔’. 보신 적 있으실 거예요. 하나의 사물을 눈의 착각으로 전혀 다르게 사물로 보고 인식하는 걸 착시현상, 게슈탈트라고 하던데요. <법정에 선 과학>의 표지그림이 그런 것 같아요. 악어 몇 마리가 줄지어서 종이에서 책 위로 올라가 삼각자, 정오각형의 입체모양 서진(?), 컵(?)을 지나 다시 종이로 돌아갑니다. 재미있는 것은 악어가 종이에서는 평면적인 그림이었다가 종이를 벗어나면서 다시 입체적인 악어의 모습으로 변하는데요. 이 작은 그림 하나가 책에 담긴 내용을 상징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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