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트런드 러셀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런던통신 1931-1935 - 젊은 지성을 깨우는 짧은 지혜의 편지들
버트런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 사회평론 / 2011년 4월

20세기 가장 뛰어난 철학자이자 수학자이고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평생을 반전 ▪ 반핵, 평화운동을 펼친 지성인 버트런드 러셀을 저는 지난달에 처음 만났습니다. 아니 만났다고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로지코믹스>라고 버트런드 러셀의 삶을 통해서 수학의 원리를 찾아보는 책이었는데요. 러셀이 평생토록 탐구했던 학문과 지적 유희, 삶의 태도에 대해 알 수 있었는데요. 제가 느낀 러셀은 조금 까칠하면서도 괴팍하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끝까지 파고드는 집념을 보이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학자타입이었습니다. 그래서 언제든 그의 책을 만나보리라 생각했는데요. 그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습니다.

‘젊은 지성을 깨우는 짧은 지혜의 편지들’이란 부제의 <런던통신 1931-1935>은 러셀이 1931년 4년간 미국의 한 신문에 고정적으로 실었던 칼럼을 모아서 그의 사후에 출간한, 러셀의 마지막 책입니다. 신문의 칼럼이기 때문에 본문의 구성도 단순합니다. 신문에 수록되었던 시기를 기준으로 1931년, 1932년, 1933년, 1934~35년 네 부분을 나누었는데요. 놀라운 것은 대략 80여 년 전에 발표된 글임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지금의 현실과 그다지 큰 차이를 느낄 수 없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간혹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에 여행을 가서 갖가지 추태를 부린다는 기사가 있는데 그런 것처럼 러셀도 사람들이 해외에 나가기가 무섭게 끔찍하게 변해버리는가 하면, 예전에 비해 현대에는 사람들이 여유롭지 못할 뿐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고 꼬집는데요. 러셀은 그 사례로 전화통화를 들고 있습니다. 일상 속에서 몇 번이고 이뤄지는 전화통화를 접고 잠깐 30분이라도 명상하고 침묵한다면 세상이 훨씬 달라질 수 있다는 거지요. 사실 이 점은 많은 사람들이 절실히 느끼는 대목이 아닌가 싶어요. 첨단 과학의 발달로 각종 전자기기가 대중화 되면서 우리는 기다림의 미학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바로, 즉시, 빨리빨리. 이 단어가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깐깐한 학자가 한마디 던지는 말이 시원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에 있어서 러셀은 ‘만약 국가가 현대의 아동심리학을 이해했더라면 모든 아이들이 두 살부터 유아원을 다니도록 했을 것’이란 대목이 있었는데요. 이 글이 발표된 시기가 1931년이고 또 그가 육아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지 않는 남자여서 그런지 그의 생각에 공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왜냐면 유아심리나 아동발달 측면에서 만3세까지는 되도록 부모가, 그것도 엄마가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 아이의 심리적 안정과 감성발달에 좋다고 들었거든요. 물론 저도 전문가가 아니어서 100% 확실하다고 장담할 순 없지만 말입니다.

처음엔 ‘짧은 편지들’이라고 해서 짧고 간략한 글이 수록되지 않았을까 했는데요. 본문이 550쪽이 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면서 놀란 가슴은 금방 진정이 됐습니다. 얼마전 읽었던 책에서 받았던 첫인상, 깐깐한 노인네일 것이라는 짐작과는 달리 간간이 유머가 섞인 무척 쉬운 문장으로 되어 있어서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알맹이가 없는 말랑말랑한 글도 아니었어요. 러셀의 삶의 철학과 지혜, 일상이 고스란히 녹아든 글이어서 언제든 몇 번이고 읽을수록 더 좋을거란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