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풍경 - 개정판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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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아직도 읽지 못한 작품들이 있는데요. 그 대표주자가 바로 조정래의 대하소설 3부작입니다. 대하소설이다 보니 분량이 총 32권으로 너무 방대하다는 것, 혹시나 어렵진 않을까 싶어서 매번 시도하지 못하지만 실제로는 <태백산맥>에서 시작해 <아리랑>, <한강>으로 이어지는 우리 민족의 파란만장한 근현대사, 그 거대하고 유구한 이야기를 온전히 몰입하고 가슴에 담아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계속 미루고 있었는데요. 얼마전부터 조정래의 작품들이 속속 개정판으로 출간되면서 <불놀이>를 시작으로 <대장경>을 만났고 이번엔 <상실의 풍경>까지, 새로운 마음으로 만날 수 있어 무척이나 즐겁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불놀이>와 <대장경>이 장편소설이었는데 비해 <상실의 풍경>은 조정래의 데뷔작인 [누명]을 비롯해 총 10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요. 발표 시기는 1970년부터 1973년까지로 조정래의 작품 중에서도 초기에 해당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왜냐면 1970년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새벽종이 울렸네~”란 노래로 대표되는 새마을운동이지요. 농촌의 현대화를 시작으로 우리나라를 대대적으로 개발하자는 운동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사회의 어둠이 깊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미국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갖기 시작하면서 권력이나 불합리, 폭력에 저항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마악 싹트고 있을 때였는데요. 바로 그런 때에 청년 조정래가 있었습니다. 불의를 보면 주먹을 불끈 쥐고 부당한 폭력 앞에 울분을 토하는 뜨거움을 간직한 청년 조정래는 작품을 통해 당시의 사회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삶이 어떠했는지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카투사로 복무하는 태준은 신병동기인 서점동이 어느 날 발에 심한 부상을 입자 그의 치료를 돕기 위해 약품을 챙겨오다가 물건을 절취하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만다는 [누명], 아버지가 여수사건에 가담했다는 것 때문에 가난에 허덕이다가 끝내 교도소에 갇히고 마는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북에 납치된 줄 알았던 아버지가 실제로는 자진 월북했다는 것 때문에 학군단 후보생에서 탈락하고 마는 [어떤 전설], 초등학교의 반장선거를 통해 당시의 비틀린 정치행태를 꼬집는 [이런 식(式)이더이다], 6.25와 베트남전이란 전쟁으로 인해 남편과 아들을 모두 잃는 비극을 겪는 어미의 한맺힌 삶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청산댁], 도시의 바쁜 업무에 매달려 살아가는 사이 신경과민으로 인한 신경쇠약이란 병을 얻어 17년 만에 고향을 찾았지만 고향 역시 그동안 많이 변해버렸다는 것을 깨닫고 상실감만 안고 다시 도시로 돌아간다는 표제작 [상실의 풍경] 등 각각의 단편은 모두 당시의 불안한 사회적 분위기가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습니다.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을 다시 읽으며 저자는 20년 후에는 우리가 통일을 이루게 될거라 기대했는데 그 두 곱, 40년이 다 되었는데도 아직 통일을 이루지 못했다...는 건데요. 처음 그 대목을 읽을 땐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글이 10개의 단편을 모두 읽고 나서 다시 보니 순간 커다란 안타까움이 밀려왔습니다. 40여 년 전 청년 조정래가 어떤 마음으로 소설을 썼을 거라는 것이 떠올라서 그랬고, 지금의 우리 모습이 40여  년 전의 모습과 그리 달라지지 않아서 그랬습니다. 모쪼록 20년, 아니 40년 후에는 이런 아픔, 억울함, 부당함, 커다란 상실감을 다시 겪지 않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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