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키텐의 엘레오노르 - 중세 유럽을 지배한 매혹적인 여인
앨리슨 위어 지음, 곽재은 옮김 / 루비박스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역사는 이긴 자들에 의한, 남성들의 시각으로, 그들이 주인공이 된 커다란 사건 위주로 서술된 기록이다. 하지만 그것을 역사의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역사에는 전면으로 다뤄지지 않은, 그림자에 가려진 존재하는 사건,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분명 존재한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아울렀을 때 역사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국내에 출간되고 있는 역사 서적들을 보면 크고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보다 제대로 된 기록조차 남아있지 않은 사건이나 인물들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당시 여성들의 삶이나 업적에 주목한 책들을 곧잘 만날 수 있다.
얼마전 출간된 <아키텐의 엘레오노르>도 그러하다. ‘중세 유럽을 지배한 매혹적인 여인’이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아키텐의 엘레오노르는 중세의 역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중세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에 비해서 그녀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물론 내가 유럽의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한 탓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그녀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리기 때문이다. 지적이면서도 아름답고 영향력도 큰 여인이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에 사생활에 있어서 끊임없이 이런저런 스캔들을 달고 다녔다고 폄하하는 이들도 있다. 한 인물에 대한 너무나 다른 평가와 시선. 과연 무엇이 진실인가?
책은 1152년 5월 18일. 푸아티에에 위치한 성당에서 한 쌍의 남녀가 결혼식을 올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화려하지 않고 단촐한 결혼식이었기에 많은 이들의 시선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그 결혼식은 유럽의 역사와 판도를 뒤바꿀 엄청난 대사건이었다. 열아홉의 청년과 열한 살 연상의 신부, 그들은 바로 플랜태저넷 가의 헨리 백작이자 노르망디 공작으로 불리게 될 앙리와 중세 유럽의 가장 큰 영지 가운데 하나를 물려받은 상속녀 아키텐의 엘레오노르였다.
당시 중세 유럽은 봉건사회였다. 왕은 있으나 그 아래의 영주가 자신들의 영지를 소유하고 관리하고 있었고 백성들은 국가나 왕이 아닌 자신들을 통치하고 있는 이에게 충성을 바쳤다. 때문에 왕과 영주는 자신의 영지,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전쟁도 불사했다. 이런 상황은 중세를 남성중심 사회로, 여성은 철저히 종속적인 위치에 머물게 했는데 당시엔 결혼도 정치적인 측면이 강했다. 왕과 귀족은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 결혼을 했고 신부는 결혼과 동시에 자신의 재산과 권리를 절대적인 복종을 서약한 남편에게 종속되었다.
하지만 아키텐의 엘레오노르는 여러 가지로 당시의 여성들과 다른 면모를 보였다. 귀족가문에 태어났지만 엄격한 훈육보다 교육을 받았고 루이 7세와 결혼하여 화려한 궁정생활을 하면서 정치에도 관심을 보이며 십자군 원정에 동행하기도 했다. 앙주의 앙리를 두 번째 남편감으로 점찍어 둔 상태에서 루이 7세와의 이혼을 감행했다. 그런 다음 기다렸다는 듯이 앙주의 앙리와 결혼하기에 이르는데 그 후 잉글랜드의 스티븐 왕의 죽음으로 인해 앙리와 엘레오노르는 대관식을 치르고 왕과 왕비의 자리에 오른다. 플랜태저넷 왕가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후 잉글랜드의 여왕 엘레오노르는 아키텐, ‘강의 땅’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자신의 영향력은 더욱 넓혀나가게 된다. 앙리, 헨리 2세가 잉글랜드를 비울 때면 여왕인 그녀가 대신 섭정 업무를 수행했고 왕가의 일을 위해 수차례 먼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다만 국왕과의 사이가 원만하지 못해 셋째 아들인 리처드에게 ‘내 노년의 지팡이, 내 두 눈의 빛’이라며 각별한 애정을 쏟았는데 이는 결국 리처드(사자왕 리처드)가 아버지 헨리 2세를 몰아내고 왕관을 차지하는 과정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마찬가지로 막내 아들인 존의 왕위 계승에도.
출생연도에서 외모, 머리카락이나 눈동자 색깔 같은 구체적인 묘사를 비롯해 사망한 장소마저도 정확한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다는 아키텐의 엘레오노르. 그녀를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났다. 그녀의 삶을 통해 당시 사회의 모습과 역사, 문화를 바라볼 수 있었다. 물론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들이 모두 백 퍼센트 진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척 흥미로웠다. 사후 800년이 흐른 시점에서도 그녀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린다는 건 앞으로 언제든지 그녀에 대한 또 다른 주장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닐까. 중세 유럽을 지배한 아키텐의 엘레오노르, 그녀의 또다른 모습, 이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