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걷는 길 담쟁이 문고
이순원 지음, 한수임 그림 / 실천문학사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전이었다. 휴일날 방바닥에서 뒹구는 남편을 일으켜 세웠다. 운동도 할 겸 큰아이와 산에 좀 다녀오라고. 평소 같으면 피곤하다느니, 귀찮다느니 이런저런 핑계를 댔을텐데, 그 날은 선뜻 아이를 데리고 나섰다. 간단한 차림으로 집을 나서는 두 사람의 등을 떠밀며 말했다. “맛난 점심 해놓을게,” 가끔 찾는 산이니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라고, 두어 시간이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하고 점심을 준비했다. 그런데 예상시간을 훨씬 넘겨서도 남편과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걱정이 되어 전화를 했더니 남편은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빙빙 둘러가게 됐다고 말했다. 한참 후에 돌아온 두 사람, 큰애는 내려오다 발을 삐었다며  투덜댔지만 그래도 보기 좋았다.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의 표지를 보며 지난번 남편과 아들의 산행이 떠올랐다. 내 가족인 남편과 아들이 책 속의 아버지와 아들과 같지 않다는 건 너무나 잘 알지만 그래도 궁금했다. 아들과 아버지. 두 사람은 산길을 거닐며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어떤 느낌을 공유하고 돌아오는 걸까.




소설은 저자인 이순원이 두 아들이 어렸을 때 대관령 고갯길을 함께 걸어서 넘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작품 속 화자 역시 소설가이자 두 아들을 둔 아버지인데 소설의 시작에서 ‘왜 이렇게 마음이 불편한 것일까’며 마음이 편치 않음을 털어놓는다. 그 이유는 바로 새로이 출간된 소설에 부모님이 불편하게 느낄 수 있는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사실 작가란 때로 자신의 경험이나 삶을 글로 녹여내는 사람이기에 자신의 드러내고 싶지 않은 숨기고 싶은, 과거를 글로 쓰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문제의 이야기를 해당 당사자가 읽는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책 속의 저자가 염려했던 것도 바로 그 점이었다. 그런데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부모님은 ‘나’에게 집에 잠깐 다니러 오라는 말씀을 남긴다. 더 이상 도망갈 곳은 없다는 걸 느낀 ‘나’는 아내에게 자신과 큰 아들은 대관령에서부터 걸어서 가겠노라고 말한다. 내리막길 50리를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고.




아버지의 마음, 심정이 전해진 걸까?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는 아들은 대관령 꼭대기에서부터 산 아래 할아버지 댁까지 걸어가자는 아버지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도리어 아빠와 함께 걸을 수 있는 게 자랑스럽다며 아버지의 불편한 마음을 감싸준다. 그렇게 아버지와 아들은 대관령의 아흔아홉 굽이를 걸어가기 시작하는데...




큰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라 ‘2011년 개정 초등5학년 교과서 수록’이란 띠지의 문구에 끌렸다. 학교에서 배우기 전에 미리 읽어보면 큰아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컸다. 한 구비, 또 한 구비 아버지와 아들이 걸어가는 길을 뒤따라가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자꾸만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마냥 아기일 것 같던 아들이 어느새 자라 자신과 함께 대관령 고갯길을 넘어가는 걸 바라보는 아버지의 뿌듯함, 대견함, 그러면서도 아들에게 좀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 그런 아버지의 심정을 알기에 위로해주고픈 아들의 마음... 한 굽이를 돌 때마다 아버지와 아들의 마음의 거리는 조금씩 가까워지는 걸 보면서 그래, 이런 게 바로 인생이지...란 말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부러웠다. 우리 집 아들과 아버지도 이럴까? 은근히 기대가 됐다. 봄햇살이 따사로운 날, 또 한 번 남편의 등을 떠밀어야겠다. 그리고 다음엔 내가 아들과 함께 나서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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