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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왜 싸우는가?
김영미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뉴스와 신문 보기가 두려운 날이 이어지고 있다. 리비아에서는 카다피의 최장 장기독재에 반대하는 동맹군과 카다피의 절대권력을 옹호하는 정부군의 무력충돌에 미국의 다국적군이 개입하면서 리비아의 내전 사태가 세계전쟁으로 확대되는 건 아닌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국내의 상황도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이 검정통과 교과서에 독도를 자국의 영토라는 왜곡된 주장을 수록한데다가 천안함 침몰 1주기를 즈음해서 북한은 “대화를 해도 통이 큰 대화를 하고 전쟁을 해도 진짜 전쟁 맛이 나는 전쟁을 해보자”며 대화와 전쟁 중 양자택일을 하라며 협박하고 있다. 특별한 사건 없이 평범한 일상처럼 보이는 하루이지만 그 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살얼음판 위를 걷듯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바로 전쟁. 전쟁이 대체 무엇이길래 우리는 전쟁을 멈추지 않는 것일까.
<세계는 왜 싸우는가?>는 세계 분쟁 지역 전문PD로 알려진 저자가 자신의 아들에게 들려주는 분쟁에 관한 이야기다. 책은 분쟁의 유형에 따라 크게 ‘악순환을 거듭하는 증오의 굴레’ ‘독립의 꿈과 거듭된 좌절’ ‘탐욕과 욕망이 부른 재앙’ ‘가난과 내전 그리고 유예된 민주주의 꿈’ 네 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런 다음 각 장의 주제에 해당하는 분쟁지역을 선정, 그곳에서 분쟁이 일어나는 이유와 배경, 과정들을 설명하고 있다.
책은 레바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지중해 최고의 휴양지라 불릴만큼 아름답고 우리나라의 경기도 정도에 불과한 작은 나라 레바논. 그곳의 평화가 깨어지고 전 세계의 화약고가 되어버린 데엔 어떤 배경이 있었는지 알려주는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벌이는 싸움에 끼어 양쪽의 보복성 공격까지 받는 레바논은 그야말로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이었다. <연을 쫓는 아이>란 소설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의 굴곡진 역사를 어렴풋이 알게 됐는데, 저자가 전하는 얘기는 실로 놀라웠다. 9.11 테러로 인해 미국이 탈레반과 전쟁을 벌이면서 아프가니스탄의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거나 가족이 해체되는 아픔을 겪어야했다. 아시아에 위치한 아름다운 섬나라 티모르가 오랜 세월 유럽의 식민지였다가 동티모르와 서티모르로 갈라지고 이후 인도네시아에 의한 강제진압과 이주, 대학살이라는 참상을 겪은 끝에 간신히 국제연합의 도움으로 독립하게 된 동티모르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아들에게 들려주는 분쟁의 진실’이라는 부제에서처럼 나도 아들에게 분쟁과 전쟁을 어떻게 전해줘야 할지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읽었다. 그런데 표지를 넘겨 프롤로그를 보면서 당장 아이에게 전해주기 이전에 내가 먼저 알아야겠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저자가 게스트하우스에 모여든 젊은이들이 ‘듀랜드 라인’에 대해 열띤 토론을 펼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청소년들의 현주소를 알게 됐다는 대목에서 갑자기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나 역시도 ‘듀랜드 라인’이 뭔지 몰랐으니까. 그것이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선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걸 부랴부랴 검색해보고 나서야 알게 됐다.
전쟁이 왜, 어떻게 일어나는지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눈에 보이는 전쟁의 모습, 양상 그 이면에 숨은 배경이 무엇인지, 국가와 국가, 혹은 민족과 민족 간의 갈등이 어떻게 해서 무력충돌로 이어지는지 알 수 있었다.
오늘, 지금 이 순간, 세계 어딘가에선, 그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나라에선 총성이 울리고 있다. 그들이 손에 총을 들게 된 데에는 저마다의 명분과 복잡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인간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이기에 그 어떤 전쟁도 정의로울 수는 없다. 무엇으로 하여금 인간들을 전쟁과 분쟁, 싸움으로 내모는지 돌아봐야할 것이다. 한 치 앞도 못 보는 것이 우리 인간이라지만 이제부터라도 시야를 좀 멀리, 넓게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