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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작가에게 - 글쓰기 전략 77
제임스 스콧 벨 지음, 한유주 옮김 / 정은문고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평생에 단 한 권이라도. 나의 글을 쓰고 싶다. 내 이름 석 자가 표지의 어느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책을 낳고 싶다. 그래서 창작교실도 잠깐 기웃거렸지만 작은아이를 출산하면서 중단되었다. 이후로 지금까지 그곳에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꿈을 접고 싶진 않았다. 마치 그것이 내 삶을 증명해줄 무엇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쉬운 마음에 틈나는대로 글쓰기, 작법에 관한 책을 읽었다. 어떤 장면을 보고 마치 그림을 스케치할 때처럼 세밀하게 묘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책이 있는가하면 글을 쓸 때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포인트를 어떻게 잡느냐가 중요하다는 책이 있었고 제목에 혹해서 읽었던 책에서는 저자 자신이 글을 쓰는 과정에 중점을 둔 책이 있었다. 그런 책을 읽을 때마다 난 이번에야말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히려 이대로 영영 글을 쓸 수 없는 게 아닐까 불안했고 의문마저 들었다.
붉은 표지에 만년필과 칼이 힘겨루기 하듯 서로 맞대고 있는 책 <작가가 작가에게>를 손에 들면서 가슴속에선 또 한 차례 작은 기대감이 일렁였다. 그래, 펜에는 이 날카로운 칼을 대적할만한 힘이 있다는 말이지. 그걸 작가인 저자가 또 한 명의 작가, 미래의 작가, 작가지망생들에게 알려주고 싶다는 거겠지?
‘글쓰기 전략 77’이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책에는 글쓰기에 관한 방법이자 노하우 77가지를 알려준다. 그런데 그 서술방식이 독특하다. 중국 최고의 전략가인 손자의 [손자병법]에 나오는 것처럼 글쓰기 방법을 ‘정찰’, ‘기술’, ‘전략’ 세 단계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가장 먼저 “당신의 소설은 출판될 가치가 있는가?”며 질문을 던진다. 소설을 온전한 작품으로‘만’ 봐주면 좋겠지만 출판 역시 상업의 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니 ‘소설가가 되기를 원한다면, 출판업자에게 당신이 지니고 있는 현재와 미래의 가치를 보여주어야’한다고 짚어준다. 그리고 강조해서 말한다. 글쓰는 데 있어서 가장 두려운 것, 잘 쓰지 못할까봐, 혹평을 받을까봐, 독자들이 외면할까봐...불안해서 주저하지 말라고. 오히려 두려움을 글쓰기의 원동력으로 삼으라며 조언한다.
이후 저자는 글쓰기의 ‘기술’적 측면을 짚어준다. 소설을 구상하는 방법을 비롯해서 이야기의 세부 구성, 등장인물 설정 등 소설을 쓰는데 있어서 필요한 구체적인 방법들을 일러준다. 한마디로 어떤 이야기든 시작은 긴박감 넘치게, 독자가 빠져들 만한 등장인물을 창조한 다음 그들이 스스로 말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생동감을 불어넣으라는 게 아닐까. 마지막 ‘전략’에서 저자는 다시 한번 강조한다. 당신은 상품을 생산하는 사업가라는 걸 명심하라고. 목표 설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목표를 어떤 단계로 세우는지 조목조목 설명하는데 일주일 단위의 시간표를 만들어서 철저하게 시간 관리를 하라는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사실, 저자가 짚어주는 77가지 전략들은 하나하나 따져보면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다는 느낌이 든다. 말로는 누가 못해? 대꾸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저자의 이력을 보니 그런 마음도 이내 누그러든다. 미국의 유명한 장르문학 작가의 출발이 농구선수였다니. 대학에서 영화와 문학수업을 들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연기생활을 하고 그러다 생계를 위해 변호사가 되었지만 결국 전업 작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까지. 저자가 기울인 노력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는 분명 책에 전하는 77가지 이상의 전략을 죽기살기로 구사한 끝에 작가의 길에 들어선 게 아닐까. 그에 비하면 나의 노력은 너무나 보잘 것 없다.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77가지 전략 중에 내가 해낼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실천해보자고 마음먹는다. 속도는 분명 느릴지라도 그 길은 분명 작가의 길로 이어져 있으리라.
소설책의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왼쪽 페이지의 첫 번째 문장을 읽어라. 그 문장을 당신의 노트에 옮겨 적어라. 그리고 그 문장에서 첫 장면을 만들어내기 시작하라. 그 장면을 다 쓰고 나면 옮겨적은 첫 문장을 지우고 당신만의 첫 문장을 다시 써 넣어라. - 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