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재의 궁극의 문화기행 - 이색박물관 편 이용재의 궁극의 문화기행 시리즈 1
이용재 지음 / 도미노북스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국물을 우려낸 멸치는 얼른 건져내 버린다. 제 소임을 다하고도 국물에 둥둥 떠다니는 멸치는 왠지 시체(?) 같아서 보기가 그렇다. 갑자기 웬 멸치에 시체 타령이냐 할지 모르겠지만. 박물관은 내게 국물을 우려낸 멸치와 같았다. 아주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 그것들을 모아놓은 곳일 뿐이라고 여겼다. 이러니 박물관에 가더라도 재미를 느낄 수 없는 건 당연지사. 그러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면서부터 달라졌다. 박물관의 강좌가 시작이었다. 한동안 담 쌓고 지냈던 우리의 역사와 유물에 대한 강의를 듣기 위해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듯이 부지런히 박물관을 들락거리는 동안, 난 어느샌가 변해있었다. 박물관이 더 이상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밤만 되면 박물관의 전시물들이 살아서 돌아다니는 영화처럼 어디선가 옛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재미가 있었다. 그렇게 나의 박물관 사랑은 무르익었다.




<이용재의 궁극의 문화기행>이 그래서 더없이 반가웠다. ‘박물관을 통해 본 우리 문화사’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책은 박물관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전국의 박물관을 지역에 따라 서울.경기.강원권, 충청권, 전라권, 경상권, 제주권으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이름만 대면 척! 알 수 있는 그런 박물관이 아니다. 쇳대박물관, 허준박물관, 실학박물관, 양구전쟁기념관, 술박물관, 고인돌 박물관, 곤충박물관, 자전거 박물관 등 그 이름도 낯선 이색박물관이다.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흥미를 갖는 대상에 따라 애써 찾는 수고로움을 거쳐야 하는 박물관이다. 하지만 박물관을 방문하는 목적이 확실하고 뚜렷하기에 그 곳에서 머무는 시간은 그야말로 금쪽같으리라.




책장을 넘기며 부지런히 체크를 했다. 여고 졸업 후 형부가 군인이어서 양구의 언니 집에 잠시 머물렀는데 그곳이 일반시민보다 군인이 더 많다는 것, 2000년에 전쟁기념관이 들어섰다는 것, 낙동강 오리알이 무얼 뜻하는지 알게 됐다. 사천의 항공우주박물관에서는 우리의 항공우주산업의 발전상황과 더불어 한국전쟁 당시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지만 “공군 장교로서 우리 문화재를 지키지는 못할 망정, 해인사에 폭탄을 투하할 수는 없다. 차라리 죽여라.”며 항명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또 자동차를 좋아하는 두 아들을 둔 덕에 언젠가 꼭 한번은 가봐야 할 제주의 세계자동차박물관. 기아의 ‘브리사’가 스페인어로 ‘산들바람’이란 뜻이란 것과 현대자동차의 ‘포니’란 이름이 탄생하게 된 과정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박물관은 ‘쇳대박물관’을 ‘솟대박물관’이라고 착각해버린 나의 어처구니없는 오해와 무지에서 비롯됐다. 우리의 자물쇠에 눈길을 주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모은 자물쇠가 자그마치 4천여 점. 그런 가운데 저자는 우리 것이 소박하고 투박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깊은 맛을 지녔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나도 언젠가는 깨닫게 될까? 저자처럼.




저자의 독특한 이력 덕분일까? 서술어가 생략된 문장은 경쾌한 리듬이 살아있다. 마치 무전기로 의사소통하듯 짧게 짧게 이어지는 저자는 말재간에 쿡쿡 웃음을 터트리다가도 때로 쾅!하고 가슴을 내리친다. 우리의 박물관은 모두 4백여 개에 불과하지만 일본은 6천여 개에 이른다니. 충격적인 대목이었다. 역사와 문화를 알아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조금씩 한걸음씩 거리를 좁혀가면서 즐기고 탐구하면서 얻어내야 할 지난한 여정이다. 큰아이 학교가 놀토일 때마다 어딜 가지 고민했는데, 이 책 덕분에 그런 고민을 덜었다. 가까운 곳부터 하나씩 찾아가는 재미를 누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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