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평전 - 외롭고孤 높고高 쓸쓸한寒
몽우 조셉킴(Joseph Kim) 지음 / 미다스북스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십여 년 전, 아이가 태어나던 날 저 역시 태어났습니다. 엄마로. 엄마가 되어 세상을 바라봤습니다. 신기한 것 투성이더군요. 지금까지 왜 이것도 모르고 살았을까 싶어 하나하나 새롭게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백석은 제 아이가 아니었다면, 엄마가 아니었다면 전 아마 평생 모르고 지냈을 겁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개구리네 한솥밥>이라는 그림책이었어요. 아이에게 읽어주려고 구입했는데 문장이 ‘닁큼’ ‘뿌구국’ 같은 옛말로 되어 있어서 낯설었어요. 하지만 똑같은 말이 반복되고 또 개구리가 어려움에 처한 여러 동물들을 만나 도와주고 마지막에 함께 한다는 따뜻한 내용이 좋아서 읽어주고 또 읽어주고 하다보니까 왠지 리듬이 느껴지는 듯,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군요. 그제야 봤지요. 글을 쓴 이가 누군지. ‘백석 동화시’라고 적힌 것을.




인상적인 첫 만남을 가져선지 이후부터는 백석의 시로 된 그림책이나 동화를 엮은 책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더군요. 가시 없는 물고기였던 준치가 가시를 갖고 싶어 다른 물고기들이 가시를 꽂아줘서 가시 많은 고기가 되었다는 <준치가시>나 화려한 껍질이 없는 집게로 태어난 것을 부끄러워하는 집게 형제들의 이야기 <집게네 네 형제>, 남들은 다 갖고 있는 뼈를 자신은 왜 없는지 자신의 뼈를 찾아다니는 오징어의 이야기 <오징어와 검복>. 하나하나가 제겐 보물이나 다름없답니다.




하지만 정작 백석에 대해 알고 있는 건 하나도 없었어요. 그가 태어난 건 언제 어디며 어떻게 성장했는지, 어떤 삶을 살았으며 얼마나 많은,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는지도 모르고 지냈습니다. 그저 오랫동안 금기시되어 왔던 작가라는 것 정도만 알았지요. 백석의 책을 몇 권 구입하기도 했지만 아직도 읽지 못했어요. 시는 왠지 어렵다는 느낌이 들어서 엄두가 안 났거든요. <백석평전>의 출간소식을 접했을 때 그래서 기뻤습니다. 어렵고 난해할 것 같은 백석의 시를 조금이나마 쉽게 다가서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했습니다.




이 책의 저자 김영진은 화가입니다. 문학평론가가 아닌 화가가 평론집을? 의외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에겐 그럴만한 사정, 이유가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몸이 허약했다는 것. 그래서 학업도 도중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지만 조각이나 미술 같은 예술과 문학, 언어 같은 다양한 분야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고 해요. 하지만 건강은 갈수록 악화되고 최후의 순간을 준비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 그는 백석의 시와 운명적인 만남을 합니다. 이후 그는 백석에 매료되어 백석의 시와 그의 삶에 깊이 빠져들기 시작하는데요. 문학전공자가 아닌 화가가 백석에 대한 연구, 평전을 쓰게 된 계기가 1부 ‘백석평전을 위한 서정적 서설’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2부 ‘화가가 쓴 시인 백석 평전’은 본격적으로 저자가 그동안 백석에 대해 연구한 결과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백석이 ‘모던보이 백석’이라 할 정도로 현대적인 용모를 지녔다는 것에서부터 당시 최고의 지성인이었다는 것, 그의 이름에 담긴 사연, 또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나타샤’가 누구인지 짚어주고 있는데요. 무엇보다 백석의 시가 우리의 가요계에 미친 영향도 컸다는 대목이 독특했습니다. 동화시를 통해 백석을 알게 된 저로선 5부 ‘백석이 사랑한 세계’에 눈길이 가더군요. 노루나 여우 같은 동식물을 비롯해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사랑했고 그들을 시로 노래하였던 백석. 당시 최고의 지식인으로서 외국어에도 능통했지만 그는 언제나 순수한 우리의 말을 사랑했다는 것. 그것은 곧 우리의 민족과 조국에 대한 사랑이 그만큼 컸다는 걸 보여준다는 대목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본문 중에는 저자가 문학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기에 그만큼 신빙성이 떨어지는 대목도 없잖아 있습니다. 제목을 ‘평전’이라 하기엔 무리가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하지만 저자가 감성이 예민하고 풍부한 화가이기에 누구보다 백석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감성을 잘 포착해서 표현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본문 곳곳에 수록되어 있는 저자의 그림도 왠지 백석을 닮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외롭고 높고 쓸쓸한 백석. 그를 화가 김영진을 통해 새롭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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