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 세계문학의 숲 3
토머스 드 퀸시 지음, 김석희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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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어둠 속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처음엔 하나의 가느다란 줄기였던 그것은 이내 그 공간을 가득 메워버리고. 마치 진공처럼 소리도 잠재우고 사람들의 시야마저 봉인해버린다. 고요하면서도 꿈을 꾸는 듯한, 짙은 안개 속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한 자리에 못 박힌 듯 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 그것은 바로 아편이다.




‘점잖은 독자들이여. 내가 여러분 앞에 바치는 것은...’으로 시작되는 책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은 제목 그대로 아편쟁이인 어느 영국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고백형식의 소설로 저자 토머스 드 퀸시의 삶이 녹아든 자전적 성격을 띠고 있다. 책은 크게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다시 ‘독자들에게’와 ‘예비고백’으로 이뤄져 있는데 저자는 서두 ‘독자들에게’에서 자신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이며 그것을 통해 독자들이 교훈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예비고백’에서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자신이 어떻게 해서든 꼭 찾고 싶었던 앤과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2부에서 저자는 본격적으로 아편에 대해 털어놓고 있다. 자신이 일상적으로 아편을 복용하게 된 데에는 오랫동안 지속된 너무나 끔찍한 고통 때문인데 친구가 권한 아편을 복용하고 나자 고통이 사라짐은 물론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고 한다. 그때의 느낌은 그야말로 ‘나락에서 하늘높이 올라’가고 ‘내 안에 세계가 계시’되는 듯 했다며 ‘그것은 만병통치약’이자 ‘인간의 모든 고통을 치료하는 진통제’라며 아편의 효용에 대해 찬탄을 늘어놓는다. 아편이 주는 천상의 쾌락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괴롭히던 고통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아편에 손을 대기 시작했지만 그 역시 아편의 고통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결국 그는 아편을 끊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어차피 죽어야 한다면 아편과 관계를 끊고 죽기로.




처음엔 아편 연기로 자욱한 표지 사진을 보고 왠지 모를 두려움에 움찔 뒤로 물러났다. 그러다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의 영감이 되었고 에드거 앨런 포, 보들레르, 고골...보르헤스와 같은 문인들이게 큰 영향을 끼친 작품’이라는 문구에 한걸음 앞으로 나아갔고 책과 나 사이를 가리개처럼 길게 드리워진 커튼을 열고 들어서게 했는데... 책은 내 예상대로였다. 아편쟁이가 들려주는 고백이었기에 아편에 대한 그야말로 모든 것이 담겨있었다. 때론 아편팅크 구입과정과 복용, 그로 인한 몸의 반응, 흥분과 쾌락, 고통스런 금단 증상과 아편을 줄여나가는 일련의 과정들을 너무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걸까 의아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일 뿐. 이 책이 출간된 당시에는 아편이 지금처럼 금지약물이 아니었다. 어느 약방에서나 판매하는 술보다 값이 싼 약물, 한마디로 가정상비약이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얼마후 상황이 달라지면서 아편을 금지하게 되었는데, 이 책이 주목을 받은 이유도 어쩜 그런 연유가 아니었을까. 아편으로 인한 쾌락과 고통을 지나온 이의 고백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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