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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라장 사건
아유카와 데쓰야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10년 10월
평점 :
전 스릴러나 추리, 미스터리 소설을 즐겨 읽는 편입니다. 어려운 인문서적을 읽었거나 읽고 난 여운이 긴 작품 뒤에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읽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짙은 안개 속을 헤매고 다니는 것처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사건을 읽으면서 나름 추리를 해보는 재미가 쏠쏠하거든요. 특히 제가 짐작했던 것과 같은 결말이 나오면 그때의 느낌은 정말 짜릿합니다. 그 유명한 명탐정 포아로가 의문의 사건을 접하고서 깊은 사색에 빠지면서 진정한 단서는 모두 자신의 머리, ‘회색 뇌세포’에 있다고 했던 것처럼 저도 왠지 제 뇌세포의 능력을 십분 발휘한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만난 <리라장 사건>도 호기롭게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외딴 별장에서 벌어진 의문의 연쇄살인. 왠지 모를 공포심에 오소소 소름이 돋지만 그보다 호기심이 몇 배 더 커서 귀가 솔깃해지네요.
소설은 원래 소유자였던 사람이 라일락꽃을 좋아해서 라일락장이라 불렸던 곳이 주인이 자살한 이후 일본 예술대학의 사들여 레크레이션 숙소로 이용되면서 리라장으로 불리게 된다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왠지 모를 음산함이 가득한 리라장. 이곳으로 일곱 명의 예술학교 학생들이 찾아옵니다. 여름방학의 막바지에 이르러 조용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인데요. 리라장이 깊은 산 속 외딴 별장이라는 것과 일곱 명의 학생들이 개성이 너무 강한, 서로 절친한 사이도 아닌 인물들이라는 조건이 맞물리면서 불행한 사건의 씨앗이 움트게 됩니다.
학생들이 서로 사이가 안 좋았다 해도 처음엔 그나마 나았습니다. 리라장에서 일행(세 명의 여학생과 네 명의 남학생) 중에 한 쌍이 약혼발표를 합니다. 이에 학생들은 축하의 말을 건네고 건배를 제의하기도 하는데요. 그것을 계기로 아슬아슬하게나마 유지되던 살얼음판에 금이 가듯이 그들에게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우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날, 사건이 일어납니다. 리라장 근처에서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는데요. 죽은 사람과 일행 사이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문제는 그 시체 곁에서 일행 중 여학생이 잃어버린 카드의 ‘스페이드 A’가 발견된 겁니다. 형사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학생들의 알리바이를 조사하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이후로도 계속적으로 살인사건이 일어나게 되거든요. 그때마다 시체 곁에서 발견되는 스페이드 카드...과연 일행 중 누가, 왜 살인을 저지르는 걸까요? 범인의 살인행각은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외딴 별장이라는 한정된 공간. 그곳에 머물렀던 이들에게 벌어지는 의문의 살인사건. 사실 이런 유형의 이야기는 그동안 자주 접했습니다. 제가 즐겨봤던 [소년탐정 김전일]이란 만화에서 주로 써먹는 이야기도 바로 이거였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계속된다는 건 사건의 배경이나 등장인물들에 따라 그만큼 이야기가 다양하게, 풍성해질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해요.
게다가 이 책의 저자 아유카와 데쓰야가 또 누굽니까. 저자의 책이 국내에 출간된 게 현재로선 이 책이 유일무이하지만 그는 일본의 미스터리 문학계에서 거장이자 에도가와 란포, 요코미조 세이시와 함께 ‘본격 추리소설의 신(神)으로 통하는 인물이라고 하구요. 그의 작품은 현재 일본의 이름난 추리작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물론 현대의 수많은 추리, 미스터리 소설에 비해 다소나마 느슨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거장의 작품이기에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소설을 시작으로 저자의 작품이 국내에 좀 더 소개되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