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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의 천사
키스 도나휴 지음, 임옥희 옮김 / 레드박스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 달라진 것. 망가진 몸매? 물론 그것도 맞지만 그보다 더 큰 변화는 모든 아이가 내 아이처럼 보인다는 거다. 길에서 뛰다가 넘어졌거나 사람들로 복잡한 장소에서 엄마를 잃거나 해서 우는 아이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질 못한다. 마치 내 아이 같아서. 그때마다 아이 곁에 다가가서 말을 건네고 사탕을 건네고 다독여줘야 마음이 놓인다. 그런 내 모습이 어쩌면 다른 사람들의 오해를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서 이젠 신경 쓰지 말자고 다짐도 해보지만, 그 다짐은 오래가지 못한다. 마치 내 아이가 우는 것 같아서.
온 세상을 꽁꽁 얼려버릴 것 같은 추운 겨울밤. 똑 똑...어린 소녀가 문을 두드린다면, 굶주림과 추위에 떨고 있다면? 그 소녀가 어디서 온 누군지 알 수 없어도 난 아마 문을 열어 집 안으로 들일 것이다. 책 속의 그녀, 마거릿 퀸처럼.
오랫동안 기다린 끝에 기적처럼 임신하고 딸을 낳은 마거릿과 폴. 그들 부부에게 에리카는 축복이었고 삶의 희망이었으며 꿈이었다. 그런데 에리카가 어느 날 갑자기 남자친구를 따라가기 위해 집을 나가고 소식이 끊겨버리자 폴은 그 충격과 깊은 상실감에 빠져 몇 년 후 세상을 떠나버리고 만다. 사랑하던 딸과 남편을 잃은 마거릿은 이후 하루하루가 무덤덤한 황폐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몹시도 추운 겨울밤에 한 소녀가 마거릿의 집에 문을 두드린다. 소녀의 이름은 무언지, 어디서 왔는지조차 알 수 없었지만 마거릿은 소녀를 ‘노라’라고 부르며 함께 지내기로 마음먹게 된다. 그녀에게 있어 노라는 딸 에리카가 낳은 딸, 손녀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 하지만 낯선 이를 집에 들여서 함께 살아간다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거릿과 노라는 이웃사람들에게 서로가 외할머니와 손녀 사이라고 속이기 위해 말을 맞추기 시작한다.
노라의 등장은 또 다른 이에게 희망을 전해준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소년 숀. 아빠의 부재와 엄마의 무관심으로 인한 상처를 가슴에 안고 있던 숀은 등하교 때마다 마거릿의 집을 가로지르던 것이 계기가 되어 노라와 함께 학교를 다니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마거릿의 의심 많고 눈치 빠른 동생 다이앤의 방문을 앞두고 노라와 함께 에리카에 관한 일들을 함께 조사하기도 한다. 반면에 숀은 노라가 벌이는 신기한 일과 행동에 불안함을 느낀다. 한편,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가 나타나 노라와 마거릿의 주변을 맴돌며 그들을 쫓아다니기 시작하는데...
키스 도나휴의 작품은 <스톨른 차일드> 이후 두 번째다. 요정에게 납치되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게 된 소년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는데 전작의 환상적이고도 기이한 분위기는 <파괴의 천사>에서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다만 ‘파괴의 천사’라는 제목 때문일까. 책을 읽으면서 내심 조마조마했다. ‘파괴의 천사’가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했다. 그저 신기한 마법처럼 여겨지던 노라의 행동이 중반이후부터 또 다른 이야기를 불러오고 그로 인해 숨겨진 비밀들이 밝혀지게 된다. 그리고 끝끝내 남겨지는 단 하나의 의문. 노라는 과연 어떤 존재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