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록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 3
혜경궁 홍씨 지음, 정병설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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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이었다. <한중록>을 읽으려 했다. 우리 역사에 있어 가장 충격적인 대사건이라 할 수 있는, 아버지가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인 사건에 대해 알고 싶었다. 하나뿐인 아들이자 자신의 대를 이을 세자에게 죽으라 명을 내린 아버지. 그 임금이 폭정을 일삼는 이였다면 굳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나라를 크게 부흥하게 했던 성군 영조이기에 왠지 궁금했다. 왜일까. 후대의 우리가 알지 못하는 뭔가가 존재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한중록>을 선택했다. 옛사람의 글이라 읽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쉽게 풀어 쓴 책을 골랐지만 이상하게도 몰입이 되지 않았다. 30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내게 닿은 글이어서 감흥이 더하리라는 예상을 깨고 겨우 100쪽도 채 넘기지 못하고 접어버렸다. 완독하지 못하고 남겨진 책은 아쉬움이 더해져 한동안 앙금이 되어 남았다. 그리고 잊혀졌다.




그러다 얼마전 드디어 <한중록>을 만났다. 출판사도, 옮겨 쓴 이도 달라서인지 <한중록>과의 만남은 두 번째이건만 느낌은 처음인 것마냥 새로웠다. 1735년(영조11) 6월 18일 풍산 홍씨 가문의 딸로 태어나 1815년(순조15) 12월 15일 생을 다한 여인. 사도세자의 아내이자 영조의 며느리,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부 ‘내 남편 사도세자’에서는 사도세자(경모궁)의 비범한 탄생과 더불어 얼마나 총명하고 뛰어난 자질을 가졌는지에 대해 서술한다. 하지만 어린 세자를 부모의 품에서 떨어뜨리고 경종 측의 내인들을 동궁으로 불러 세자를 보필하게 했던 영조와 생모인 선희궁에 대한 원망과 세자가 문文보다 무武를 좋아하게 된 것이 바로 그 때문이라며 갑갑함을 토로한다. 이로 인해 영조와 세자의 왕래는 자연히 줄어들었고 세자가 기이한 병에 걸리면서 부자의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말았다. 정조의 탄생으로 맞은 기쁨도 잠시, 세자의 기이한 행동으로 혜경궁의 마음고생은 더욱 깊어졌다. 깊어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었다. 급기야 세자가 뒤주에 갇히는 임오화변이 벌어지는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2부 ‘나의 일생’에서 혜경궁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명문가의 딸로 태어나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열 살 어린 나이에 궁에 들어오게 된 일, 시아버지인 영조와 생모인 선희궁, 세자에게 사랑을 받은 일을 비롯해 정조의 탄생과 지아비 세자의 죽음, 화완옹주와의 불편한 관계, 환갑을 맞아 수원 화성으로 원행 가던 날들의 이야기를 순서대로 전해주는데 혜경궁의 간택 당시 다홍색 호롱박 치마가 유행이었다는 것과 세자의 영조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3부 ‘친정을 위한 변명’에서는 혜경궁의 아들 정조에 대한 지극한 정을 볼 수 있다. 정조에게서 후사가 없어 걱정하다가 순조가 태어나자 안도하는 모습, 외가의 억울함, 죄를 풀어주고 왕위를 순조에게 양위하겠다던 일과 자신의 친정식구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데 화완옹주의 대목에서 예전에 다른 책을 통해 알게 된 정후겸에 대한 언급이 눈에 띄었다.




책의 모든 내용이 한번에 쓰여진 게 아니라 조카를 비롯한 다른 이의 요청과 필요에 의해 몇 번에 걸쳐 이뤄졌기에 중복되는 부분이 있었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한 대목이었기에 이를 통해 오히려 당시 실록에서 빠진 역사의 일면을 알 수 있을거란 생각도 들었다. 또 본문에 곳곳에 ‘한중록 깊이 읽기’를 두어 <한중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한중록>의 ‘한’자가 한가롭게 쓴 기록인 ‘한(閑)중록’인지, 임오화변과 친정이 정치적으로 견제를 받던 한이 담긴 기록이라는 ‘한(恨)중록’인지 정확하지 않다고 하는데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할까 싶다. 어린 나이에 세자빈이 되어 입궐하여 첫아들을 잃고 이어 남편까지 잃는 비운을 겪었으며 노/소론, 시/벽파의 당쟁에 휘말렸던 혜경궁의 삶. 그 자체가 바로 역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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