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자 오리하라 이치의 ○○자 시리즈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선영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오리하라 이치를 처음 만난 건 <도착의 론도>였습니다. 자신의 작품인 <환상의 여인>을 누군가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한 주인공이 병적에 가까울 정도의 광기와  집착을 보이며 벌이는 복수극이 빠르고 치밀하게 진행되는 작품이었는데요. 잠들기 전에 잠깐 보려고 책장을 넘겼다가 밤새 끝까지 내달리고. 그러고 나서도 또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읽은 책은 <도착의 론도>가 처음이었습니다. 서술트릭이라 해서 소설 초반에 범인이 누구인지 미리 다 공개했는데도 불구하고 저자의 농간에 보기 좋게 휘둘린 셈이지요.




<실종자>를 만날 때는 단단히 각오를 했습니다. 이번엔 절대로! 내 뒤통수를 후려칠 생각은 아예 꿈도 꾸지 마! 날 만만하게 보지 말라구!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로 나를 유혹하려해도 결코 속아 넘어가지 않을 것이야!라고 다짐을 했지요. 이번엔 저자의 페이스에 휘말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책의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소설에 몰입하면서도 나름 저자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샌가 저자가 쳐놓은 덫에 제 몸이 점점 깊이 빠지고 있는 겁니다. 순간, 헉! 이게 뭐야!! 그런 줄도 모르고 넋을 잃고 있었다니. 다시 첨부터! 첨부터 다시 시작해 보자구!




도쿄 인근의 작은 도시에서 두 구의 시체가 발견됩니다. 구석진 창고 안에서는 한 달 전에 행방불명 된 여성의 시체가, 창고의 주변 숲에서 백골로 변한 시체가 발견되었는데요. 기이하게도 한 달 전의 시체에서는 ‘유다의 아들’, 백골이 된 시체에는 ‘유다’라고 적힌 쪽지가 있는 거예요. 조사 결과 백골의 시체가 15년 전에 실종됐던 소녀라는 것이 밝혀졌는데 그 뒤를 이어 두 구의 백골 시체가 더 발견되면서 도시는 발칵 뒤집어집니다. 뒤에 발견된 시체가 모두 15년 전에 실종된 여성인데다 ‘유다’라는 쪽지가 있었거든요. 15년 전 월요일에 사라진 여성들이 모두 백골의 시체로 발견되자 사건은 혼란에 빠지고 그 와중에 또다시 여성들이 실종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한편, 15년 전의 ‘유다’와 현재의 ‘유다의 아들’, 이 둘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논픽션 작가인 다카미네 류이치로와 간자키 유미코는 15년 전의 사건을 더듬어가기 시작합니다. 당시 용의자로 주목됐던 시모나야기와 다마무라를 만나고 유미코는 ‘소년A’를 추적해가는데...




15년이란 시간의 간격을 두고 벌어진 여성 연쇄실종 사건을 통해 소년범에 대한 문제를 파헤치는 <실종자>는 한마디로 까다롭고 어려운 소설입니다. 현재와 과거가 뒤섞여 있는데다 화자도 수시로 바뀌고 있어서 잠깐이라도 흐름을 놓치면 잔뜩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낭패를 보기 쉽습니다. 때문에 바짝 긴장해서 읽어야 하지요. 저자가 책의 곳곳에 설치해놓은 함정과 덫을 피해가면서 동시에 암시와 복선, 단서가 되는 것들을 찾아내어 실꿰기를 하듯 하나하나 순서대로 이어붙여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지막 순간, 여지없이 “딱!”하고 저자가 뒤통수를 후려치거든요.




15년 전에 벌어진 사건과 현재의 사건, 15년 전의 소년 A와 현대의 소년 A...이 둘의 관계를 제대로 꿰뚫어서 봐야 하기에 여느 추리소설처럼 속도를 낼 수가 없습니다. 무작정 앞으로 내달리기보다 속도를 늦춰서 주변을 샅샅이 훑어가며 더디게 책을 읽어야 하기에 갑갑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찌보면 그게 또 오리하라 이치의 작품을 읽는 재미가 아닌가 해요. 물론 이번 작품에선 결말이 어떠하리라는 걸 예상할 수 있었지만 그걸 서술트릭의 거장이라는 저자가 어떻게 풀어갈지 기대가 되더군요.




책의 후반 <실종자>가 오리하라 이치의 ‘@@자 시리즈’ 중에서 <원죄자>에 이은 두번째 이야기는 대목이 있더군요. 순서는 바뀌었지만 <원죄자>는 어떤 이야기일지, 또 앞으로 출간될 <도망자>도 궁금해요. 저자가 어떤 함정과 덫을 설치해놓고 날 기다리고 있을지 두근두근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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