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큐피드의 동생을 쏘았는가
데이비드 헌트 지음, 김승욱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화려한 옷을 입은 마네킹도 빛이 사라진 깊은 밤엔 공포의 대상이 된다. 어두운 밤길을 걷다가 쇼윈도의 마네킹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누가 큐피드의 동생을 쏘았는가>를 처음 만났을 때 바로 그런 기분이 들었다. 생기 없는 공허한 눈빛, 민머리, 여기저기 칠이 벗겨진 몸체. 더욱 놀라운 건 마네킹의 몸이 마치 2차 성징이 나타나기 전,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사춘기 무렵의 아이들을 나타내는 것 같다는 점이다. 어떤 장식도 없는 단순한 표지. 이것이 상징하는 건 대체 무얼까...




책의 주인공은 케이 패로. 사진작가인 그녀는 상염색체 퇴행성 색맹, 즉 색맹이다. 색깔을 제대로 구분할 수 없는 그녀에게 세상은 무채색의 거대한 사물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들 때 카메라 렌즈를 통해 바라본 세상은 저마다 다른 형태와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걸 케이는 느끼게 된다. 그런 케이에게 있어 카메라와 사진은 그녀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이자 도구이며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수단이었다.




색맹이기에 하나의 대상이나 사물에서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이면을 꿰뚫는 감각을 키울 수 있었던 케이. 그녀는 자신만의 특별한 작품집을 만들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의 후미진 뒷골목을 찾는다. 그 곳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남창들은 케이를 ‘버그’라 부르며 어울리는데 케이는 그 중에서도 아름다운 청년 팀을 대상으로 작품을 구상한다. 어느 날 케이는 팀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을 받아 약속장소로 나가지만 팀은 오래도록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 누군가에게 살해되어 토막 난 그의 머리가 발견된다. 허나 이 사건을 경찰 측에서 단순히 남창을 살인한 사건으로 무마하려고 하자 케이는 분노하여 직접 사건을 조사하기에 이른다. 그러다가 팀의 사건이 케이의 아버지가 경찰이었던 때 T사건으로 알려진 연쇄살인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짐작한다.




이후 케이는 옛날 자신의 동료였던 기자 조얼과 명예욕이 강한 여형사 힐리와 함께 사건을 추적해나가기 시작한다. 팀의 사건이 정말 T 사건의 연장선에 있는지 아니면 단순한 모방범인지. 과거 T 사건과 관계된 경찰들을 한 명씩 만나 인터뷰하던 케이와 조얼은 당시 관계자들의 얘기에서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모두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있는데...그 속에 숨겨진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사건의 의문을 풀어나가는 인물이 색맹의 사진작가라는 점에서 지금까지 읽었던 여느 미스터리 소설과 달랐다. 주인공이 지닌 신체적 여건이 독특하다보니 사건을 풀어나가는 방식도 독특한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하지만 그로 인한 한계점도 있었다. 미스터리 소설을 읽을 때면 마지막 부분에 가까워질수록 지금까지 알려진 것들을 완전히 뒤집는 급반전이 있을거라 짐작하는데 이 책은 그 부분이 많이 아쉬웠다. 아니, 나름 반전이 있긴 했으나 기대했던 급반전보다 약한 나머지 서둘러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않았던 인간의 내면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본 듯하다. 마치 컬러 사진의 화려함과 강렬함은 없지만 흑백 사진 특유의 진중함이 묻어나는 것 같다고나 할까. 햇살이 뜨거운 요즘, 무더위를 식혀줄 독특한 미스터리를 찾는 이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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